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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8 13:28 수정 : 2005.11.18 14:11

불국사 방문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17일 경주 경주 불국사 백운교에 올라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오늘 미국의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했습니다. ‘천년고도’라 세계에 자랑하는 경주에서요. 쌀쌀한 날씨지만 서울과 다른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맑은 하늘을 보고 갔으니 그 미국 대통령도 적잖은 ‘감흥’을 받았으리라 생각 합니다. 그런데 저녁 TV뉴스를 보니 양 국가의 대표가 나란히 ‘청운교’·‘백운교’를 오르고 있더군요. 그 광경을 보니 문득 학창시절 때의 수학여행이 생각났습니다.

청운교·백운교는 석가탑, 다보탑과 함께 불국사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요즘 교과서에 나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만해도 교과서에서부터 그 아름다움을 익히 배워왔습니다.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만해도 수학여행 때 불국사에 가면 ‘꼭 그곳을 밟아보리라’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불국사에 도착했을 때 청운교·백운교 앞에 마주친 것은 ‘출입금지'라는 푯말과 주변 문화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철제 팬스였습니다. 청운교·백운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었습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일반인들은 밟아보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관상용 ‘계단’이었습니다.(참고로 청운교·백운교는 국보 23호입니다.) 일반인들의 출입구는 따로 있었습니다. '아~'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백운교를 오르는 순간 눈앞에 펼쳐질 석가탑과 다보탑의 '장관'은 절 왼쪽의 관광객 출입구로 들어가서 보자 '십원'짜리에서나 보는 그런 '심심'한것으로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뒤로 가끔 외국의 대표나 유명인사들이 불국사에 들르면 그 청운교·백운교를 통해 오르는 장면이 TV에서 종종 보이는 겁니다. 전 그 화면을 볼 때마다 거기로 달려가 “여기는 관상용 계단이니 오르면 안 됩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화재라 보호를 해야 한다면 일국의 대통령이라도 그곳을 밟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결국 '권력의 불평등'을 몸소 체험하고 내가 나중에 잘되서 '저곳을 밟아보겠다.'라는 '마초'적인 생각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불국사 방문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17일 경주 경주 불국사를 방문, 다보탑 앞에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시간이 꽤 흐른 오늘, 떳떳하게 그 계단을 오르는 양국의 대통령을 보니 다시 씁쓸해 졌습니다. 마치 청운교·백운교를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전시용 의전을 하는 행태를 보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여전히 저는 그곳을 밟을 수 없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행태에서 모두가 보호해야하는 문화재라도 국가의 ‘손님접대’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묘한 ‘국가주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문화재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국가의 이름으로 ‘마음대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창경궁에서 ‘세계 신문협회’와 ‘세계 철강협회’의 만찬이 열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문화재 관리의 수장인 유홍준 문화재청장까지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니 문제가 없다’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유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감동받았던 저에게는 적잖은 실망이었습니다. 제가 곡해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유청장의 생각은 '국가'가 '다 좋자고'하는 것이니 양해를 해달라'라는 기존의 '구태'와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힘 있는 자들을 위해선 ‘만찬장소’로도 대여할 수 있고 일반인에게는 출입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 문화재관리 행태에 대해 심히 유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방법 말고도 문화재를 해외에 홍보 할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을텐데 말입니다. 구차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갑자기 남산타워 밀실에서 서울시내 야경을 내려다 보며 '시바스 리갈'을 즐겨 마셨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가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이런 시각이라면 언젠가 불국사 앞마당이 ‘뷔페식당’으로 변할런지도 모릅니다.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라는 명분하에 말이죠. 사찰의 특성상 메뉴를 전부 '채식'으로 한다는 국가의 특별한 배려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불국사 방문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가 17일 경주 경주 불국사를 방문, 청운교에 오르면서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저는 노대통령이 청운교·백운교 앞에서 “이곳은 국보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이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말하며 부시 대통령을 일반인 출입문으로 안내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원래는 출입이 안 되는 곳인데 부시 대통령께서 오셨으니 특별히 출입을 허락합니다.’라는 것과 어떠한 것이 진정한 외교적 ‘접대’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노릇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청운교·백운교를 오르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냐고요? 아니요,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서 그곳에 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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