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오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마치고 부산 누리마루 아펙하우스 서원에서 각국 정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상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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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경제부문 결산 ‘DDA 특별성명’ 내 12월 WTO협상에 날개 ‘IT코리아’ 과시… 국가·기업 브랜드 가치 높여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 진전’을 외쳤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회의가 끝났다. 21개국 정상 및 대표들은 부산 누리마루에서 발표한 정상선언을 통해 무역 자유화를 통한 공동번영을 약속했지만, 자유화의 속도와 방식에 대한 이견은 만만치 않다. 정상선언에 담긴 ‘부산 로드맵’은 무역 자유화의 시한을 설정한 ‘보고르 목표’를 중간 점검하고, 나아갈 길을 구체화하려는 작업이다. 또 ‘부산 선언’과 별도로 낸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에 관한 아펙 정상 특별성명문’은 12월 세계무역기구 홍콩 각료회의에 정치적 추진력을 보탰다. 그러나 무역 자유화의 이런 ‘총론’에 대한 합의들이 농업개방 등 ‘각론’의 해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선진국-개도국, 농산물 수출국-수입국 등 각국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처럼 ‘전면적 시장개방’이 수치상 득이 된다고 해도, ‘생존’의 문제가 걸린 시장개방의 희생자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의 정치적 갈등을 폭발시킬 불씨를 항상 안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일본 등이 농업 협상에서 신축적이지 못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타이의 탁신 친나왓 총리가 ‘세계화의 위험’에 대한 우려를 적극 표명하고, 노무현 대통령 또한 시장개방에 대한 지지를 전제로 ‘양극화 해결’에 관심을 보인 것은 적절한 분배 없이는 무역 자유화의 지속적 발전이 보장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펙 공식 행사장 밖에서 ‘반아펙’ 시위대의 구호가 메아리친 것도 마찬가지다. 아펙에 참여한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이번 아펙의 특별성명에도 불구하고 홍콩 각료회의의 성공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17일 아펙 최고경영자 회의(시이오 서밋)에서 지엠대우의 닉 라일리 사장은 “홍콩 각료회의의 성공에 돈을 베팅하라면 한푼도 걸지 않겠다”며 “프랑스가 농민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까 싶고, 다른 국가들도 정치적인 위험을 추가로 떠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또 아펙 회원국은 아니지만 도하 협상의 주요 축인 브라질 쪽은 아펙 정상회의 기간인 18일 홍콩 각료회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지역무역협정(RTA)은 무역 자유화의 또다른 한 축이다. 아펙은 이를 논의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그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등 양자 체제가 복잡하게 얽히면 무역비용만 높아지는 ‘스파게티 볼’ 현상이 일어나고, 최빈국들은 다자 체제보다 양자 체제에서 더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아펙을 통해 ‘정보통신 강국’으로서의 이미지 홍보와 외자 유치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이재훈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20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아펙 경제부문 주요 성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면서 “아펙 의장국으로서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에서 선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국가와 기업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실제 부산엔 외국 기업 최고경영자 1천여명 등 6천여명의 유력 인사가 방문했으며, 아펙을 계기로 6억달러를 웃도는 외자유치가 이뤄졌다. 또 투자환경 설명회에선 개성공단 투자에 대한 홍보도 있었다. 부산/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부산로드맵과 DDA협상 향후 일정.
"무역자유화" 총론 합창 각론은 불협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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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덤덤
한-일 싸늘 아펙은 양자 정상회담의 장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의장 구실 외에 11개 나라 정상과 양자 회담을 했다. 6자회담 참가국인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 정상과 모두 회담을 했고, 다른 아펙 회원국 정상들과도 경제협력 등을 주제로 밀도 높은 협의를 벌였다. ‘초고밀도 정상외교’다. 4강 중심의 양자 정상외교는 △한반도 전략 지형의 재조정 모색 △북핵 문제 해결 등 남북관계 발전에 필요한 국제 협력 촉진에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경제협력 등 크게 세 축으로 진행됐다. 또 아펙 정상회의 의장 자격으로 북핵 6자회담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아펙 정상들의 의지를 ‘구두성명’ 형태로 모아냈고,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짬짬이 홍보하기도 했다. 4강 외교는 한-중, 한-러 관계의 강화 추세가 부각되며, 기대에 못미친 한-미 정상회담 및 찬바람 부는 한-일 관계와 크게 대비됐다. 노 대통령은 중·러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해 두 나라와 교역 확대의 길을 텄다. 특히 중국과는 수교 20돌인 2012년 2천억달러 교역 목표를 설정하고 차관급 정례대화를 창설하는 등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심화·발전 비전을 담은 ‘한-중 공동성명’을 채택해, 양국 관계를 경협 외에도 외교·안보 등 전방위로 넓혔다. 러시아와도 ‘한-러 경제·통상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현안인 김치 파동(중국)과 명태잡이 쿼터(러시아) 문제도 원만한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미 간에는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해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에서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고, 대북 협력에서의 속도조절 문제 등에선 진전을 이루지 못해 내년 1월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의 전기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6자지지 견인·개성공단 홍보
중·러에 ‘시장경제지위’ 부여
미국과 ‘북핵’ 진전은 못이뤄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 쪽의 이견을 부추기는 듯한 브리핑으로 ‘냉랭한’ 양국관계를 더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은 미·중·러 정상들과는 아펙과 별개로 4시간 안팎을 각각 함께했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는 30분간 ‘회담’만 했다. 애초 계획은 ‘20분짜리’였는데, 역사인식 문제에서 한-일 정상의 접근이 평행선을 긋는 바람에 10분이 더 걸렸다. 노 대통령이 방문할 차례인 12월 셔틀 정상회담은 언급이 없었다. 페루·브루나이·베트남·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캐나다·칠레 등과의 양자 정상회담은 대체로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축으로 에너지·정보기술·인프라 협력 등 경제협력 문제를 협의했다. 말레이시아·타이·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게걸음을 걸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 아펙은 한국 외교가 미·일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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