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8.14 05:00 수정 : 2019.08.15 09:53

정영환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가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한일관계와 역사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정영환 일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인터뷰
재일 조선인 3세 조선적 역사학자
일 정부 역사적 책임 직시 요구해와
“한국 대법 판결 세계사적 큰 의미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규범 권유
패전국 지위 해소하려는 아베
경제보복으로 한국 정부 외교방향을
박근혜 정권 시절로 회귀시키려는 의도
일본 사회와 대화 계속해야 하지만
일 요구대로 서둘러 봉합해선 안돼

정영환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가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한일관계와 역사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아베 총리는 한국 정부의 방향을 2015년 박근혜 정권 시기의 외교 노선으로 되돌리려는 목표가 있다고 본다. 일본 사회와 대화를 계속해야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의 요구에 굴복해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것은 위험하다.”

조선근현대사·재일조선인사 등을 연구해온 역사학자인 정영환 일본 메이지학원대학 교수는 한국이한일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고 ‘타협적 화해’에 나설 경우 아베 정부와 일본 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일본 식민지배의 극복되지 않은 과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직시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정한 <제국의 위안부>(박유하)를 정면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펴내기도 했다.

재일조선인 3세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정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조선적’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일본’ 국적이 박탈된 뒤 ‘조선’ 국적으로 등록(무국적 취급)된 동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과제를 토론하는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정 교수를 13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선 핵심적인 의도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포함해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전후 청산 프로젝트가 있다. 패전국 지위를 해소해 국제적인 지위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어느 정도는 성공했는데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 큰 장벽에 부딪혔다고 봤을 것이다. 이번 경제보복을 통해 한국 정부의 방향을 다시 한번 2015년의 박근혜 정권 시기의 외교 노선으로 되돌리려는 목표가 있었다고 본다.

지난 30년 동안 1965년 체제 자체가 항상 동요했다. 한국 시민들, 진보적 정치권에서는 협정 재협상 문제도 제기했지만, 일본은 65년 체제를 수정하면서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65년 체제의 모순이 너무 크고 깊어 봉합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고, 2010년대 들어서서 모순은 더 깊어졌다. 더 이상 이 체제를 봉합하는 게 아니고 다른 큰 틀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한국에서 나오고 일본은 이에 대해 외교적으로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일본 입장에서는 2015년에 (한일 위안부 합의로) 겨우 봉합을 했는데 한국이 다시 되돌리렸다고 보고, 아베 정부뿐 아니라 야권, 언론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렴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전략에는 한국을 굴복시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제(65년 체제)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을까?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큰 틀이고 65년 체제는 하위 체제다. 한일청구권협정체제를 깨거나 수정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 체제 자체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동시에 65년 체제에는 청구권협정뿐 아니라 한일기본조약 체제가 있다. 한일 간 역사 갈등은 식민지배 청산을 봉쇄했던 청구권협정 체제의 동요다. 동시에 지난해부터 남북 화해와 북미 대화가 진전하면서 미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고, 한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해 동아시아 냉전 구조에서 한·미·일이 소련·중국·북한과 대치하던 또 하나의 65년 체제도 동요하고 있다. 일본은 청구권협정 체제의 동요뿐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기 위해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베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일본 정부와 사법부도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조약이나 일소평화조약에서 청구권을 포기했지만, 일본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남아 있으니 미국이나 러시아에 가서 소송하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에 나서자 개인청구권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고, 재판에서 구제받을 권리는 아니라고 했다. 한국 피해자들은 다시 한국에서 재판을 시작했고, 한국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분을 인정하고 손해 배상을 판결했다. 이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아베 총리의 비판은 근거 없는 비난이다. 두번째는 그 아래에 깔린 역사인식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 식민지배는 불법이었고, 강제동원도 불법적 식민지배 아래서 일어난 불법적 행위였다고 판결했다. 이 자체는 일본 실정법상에서는 도출을 못하는 부분이고, 한국 헌법체제가 가진 법 이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일본 우익들이 많이 공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이 다루지 못한 문제다. 식민지를 지배했던 국가들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취해왔다.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노예무역과 식민지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회의가 열렸는데, 일본과 유럽의 옛 식민지배 국가들은 도덕적으로는 잘못됐지만 법적 배상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나치에도 적용되었던 ‘인도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적용해 식민지배에 대한 형사처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대립전이 되고 있는데, 한국 정부나 사법부가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이 차원으로 들어가 논의할 수 있는지, 갈림길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재일 조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동경재판에서 연합국이 일본 전쟁지도자들을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기소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했고,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죄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인도에 반한 범죄’ 개념을 적용해 식민지배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곧 있었고,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식민지배 자체를 불법화하려는 노력이 21세기에 규범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가 세계사적으로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번 한국 대법원 판결은 세계사적으로 식민지배는 불법임을 규범으로 만들어가자고 권유하는 부분이 있다. 어렵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 한국의 사과 요구에 대한 피로 증상이 높아졌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에서도 진보세력이 강했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살아 있었다. 한편으로 냉전 체제 아래서 일본은 과거 청산을 회피할 수 있는 수혜자로서 국제관계를 향유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상황이 변해나갔다.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이 일본을 대신해 한국 민중의 입을 막아주던 체제가 깨졌다. 이 시기에 일본 시민들은 한국 민중에 호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에서 넘어야할 벽이 너무 많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됐다. 90년대에 일본 진보세력은 부분적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미일 안보체제에 대한 저항 등의 이념을 버렸다. 진보세력이 한국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답하기 위한 대안을 잃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진보 정치세력과 지식인들이 65년 체제를 극복하지 않고 수정해서 만든 제안이 아시아여성기금이었는데, 피해자들이 원한 것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깨졌다. 2000년대 들어와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시위가 이어지자, 일본에서는 이것을 과거 청산 문제로 보지 않고, ‘한·중이 반일 내셔널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한국 민주화 이후 시민들이 국가주의에 빠져서 일본을 비판하고 정치인들도 역사문제를 카드로 쓴다’는 편향된 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의 이런 인식 틀이 굳건해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서 일본의 경기 침체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도 어려워지고 있다. 동시에 아베 정권이 권위주의적인 정권 운영을 하면서, 인권이나 민주주의 자체가 침해되고 헌법 체제 자체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파괴되고 있다고 인식하는 시민이 많다. 사학비리 등 정권의 문제가 폭로될 때마다 아베 정권은 대외적 모순, 한일 갈등, 한반도 위기를 이용해서 정권을 유지해 왔다. 일본 시민들이 일본의 자유민주주의, 헌법 문제와 한반도에서 전쟁 종결, 역사 청산 문제가 상반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간은 걸릴 거 같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보수 정치세력의 과점 체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아왔고, 일본의 전후사를 다시 생각해보려는 맹아는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특히 원전 문제 등을 보면서 ‘옛날처럼 살수는 없다’는 감각은 느끼고 있다.”

한국 시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No Japan’이 아닌 ‘No 아베’에 초점을 맞춘 비판을 어떻게 보는지?

“많은 일본 시민들은 노 아베, 노 재팬을 마찬가지로 본다. 다만, 한국 시민들이 ‘왜 노 재팬이 아니라 노 아베’를 주장하는지는 공유할 수 있는 있는 부분이고, 한일관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동시에 한국 분들이 너무 아베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부분은 우려하게 된다. 아베와 극우 보수세력이 한국을 다시 침략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아베는 2차대전 이전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동아시아 냉전체제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에 90년대까지 한일이 공유한 역사 자체가 한국의 시민들과 피해자들에 의해서 깨져가고 있는데, 일본은 90년대까지 한일이 공유한 토대 위에서 새 입지를 만들려고 한다. 일본 야당도 아베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고, 아베가 물러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후에도 평화가 아니었던 일본, 그 연장선 상에서 일본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인들은 일본 우익들의 한반도에 대한 야욕, 정한론의 부활을 우려한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 정한론적인 사고가 우려할만한 실체로서, 일본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나?

“영속과 단절의 부분이 있다. 한국이 일본을 지키는 완충지대가 되면 좋겠다는 건 일본 보수파의 지속적인 인식이다. 일본 우익들은 ‘중국이나 북한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게 한국이 살길인데, 한국이 어리석게도 포퓰리즘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못하고 북쪽과 감정적 민족주의, 동포의식으로 협력하려고 한다’고 보고 ‘이성적으로 한국이 다시 잘 살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직접 침략한다기보다는 전후체제에서 한국의 역할을 계속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한국을 직접 지배하는 게 아니라 대리인을 세우는 이미지다. 어느 의미에서는 더 무섭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 정치권이 가진 선택지가 상당히 좁다는 점을 신중히 봐야 한다.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의 영향 속에서 아베를 보고 있다. 일본의 대안 세력은 전후체제가 만들어온 평화민주주의 국가를 아베가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아베와 싸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베는 전전 가치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미일 안보체제와 한국과의 관계 등 전후 가치도 대변하고 있다. 그 질서가 그대로 가면 새로운 가치를 회복하기가 어렵다. 80년대 이전에 일본 진보세력은 어느 정도 대안적 가치를 가지고 일본에 가해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일본의 언론, 정치권 학술, 관료, 재계 등 눈에 보이는 담론도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종합적인 일본 인식을 다시 가져야 할 시기다.”

한국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해 아베 총리는 상당한 반감을 보였는데, 이제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내세우며, 한국을 건너뛰어 북일 수교를 추진하겠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북일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일본 정치권의 시각에서 보면 북일 수교가 가능한 건 아베 총리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 세력이 야당으로 돌아가면 다시 북일 수교를 비판하면서 정치적 동원 도구로 쓸 것이고 그걸 견딜 수 있는 야당 정권이 만들어질지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다. 다만 북쪽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문제다. 북쪽은 2002년 평양선언에 기반하면서도 동시에 인적 피해에 대한 배상·보상을 요구하는 투트랙 방식이다. 북쪽이 어느 의미에서 한국보다 더 현실정치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북일 수교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새로운 동아시아 체제나 역사 청산의 관점에서 볼 때는 우려가 된다. 북쪽은 식민지배 청산을 전면으로 요구할 수 있는, 21세기에 외교 루트를 통해서 일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 인식의 틀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그런데 북쪽이 체제 보장과 평화 문제를 우선시 하면서 역사, 인권 문제를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 1970년대 김일성 주석은 역사문제에 대해서 양보할 거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에도 북쪽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인권 침해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얘기는 했지만, 2002년 평양선언의 내용을 보면 한일 협정+김대중-오부치 선언 정도를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쪽은 한일관계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일본에 어느 정도 요구할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일본은 가해의 역사를 인식하고 국내 역사 인권 교육을 해야하는 과제가 있는데 자율적으로 이뤄질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남북한과 일본이 대화하면서 이런 부분이 일본 국내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안보와 긴장 우려가 낮아질 수록 그런 조건이 마련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남북·북미 대화가 좀 더 잘 이뤄진 뒤에 조일(북일)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계속되고 특히 일본 젊은층들을 대상으로 역사에 대한 무관심, 중국, 한국 등 주변국가에 대한 반감이 높다. 한일 시민들이 거리를 좁히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최근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었다.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들 목표는 일본의 가해 책임을 상징하거나 가르치는 내용을 공공영역에서 폐지하는 것이었다. 90년대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내용이 들어간 데 대한 강력한 반발에서 역사수정주의가 등장했다. 이제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내용을 완전히 삭제했고, 박물관 역사시설 등의 교육 표지판에서 강제동원 가해 책임 표현하는 글에 대해 우익들이 공격해서 모두 수정시켜왔다. 관동대지진에 대해서도 일본이 학살한 사실에 대해서 주목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일본인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쓰고 있는 책도 있다’는 식으로 바꿔왔다. 소녀상 전시 중단은 지난 20년간 계속된 이런 흐름의 종착점이다. 일본 국내에서 가해 문제에 대해 착실한 역사 연구에 기반한, 일본 시민들의 당사자 의식과 결부된 역사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러러면 지난 20년간 일본 공공영역에서 사라진 것을 다시 재건해야 하는데 그 길은 어렵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과 전쟁할 수 있는 소위 ‘정상국가화’는 결국 이뤄질까?

“개헌 문제는 안보 문제뿐 아니라 인권 문제 등과도 관련된 종합적인 국가 개조 구상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서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국가화는 이미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안보법제는 이미 통과됐다. 이미 자위대의 해외 활동은 가능해졌고, 동아프리카에는 자위대 기지가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안보법제를 폐지할까? 안 할 것이다. 그런데 강제동원 판결이 시발점이 된 한일 갈등은 일본이 거의 완성한 정상국가화에 혼란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어서 일본이 이렇게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은 다 끝났고, 한국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1+1+알파’ 해법을 비롯해, 한일 갈등을 신속하게 봉합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해자 의식에 기반한 평화의식이기는 했지만, 헌법 9조에 의한 평화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흐름이 1980년대까지는 있었다. 그런 가치나 이념 상실하면서서, 현실주의가 자민당을 이기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보고 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런 선택 자체가 지금의 아베 일당 체제로 귀결됐다. 일본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상실한 진보적 가치를 회복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한국이 정치적, 외교적 타협의 손을 내밀면, 그런 진통 과정을 오히려 한국이 빼앗아 가는 측면도 있다. 아베 정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시 원칙을 확인하고 기다리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청구권 협정이 왜 동요할 수밖에 없는지, 청구권협정이 피해자들의 인권, 생명을 지키기 위한 체제였는지 아니었는지를 돌아보고, 피해자들의 정의를 세우는 제안을 일본한테 계속해야 한다. 아베 정권은 무시하겠지만, 시민들은 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메시지가 일본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측면이 있다. 단기적인 정치적 봉합을 하기보다는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을 같이 걸어가야 한다.”

현재 한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떤 교훈에 주목해야 할까?

“2015년 교훈을 어떻게 공유하는지가 중요하다. 한일 정부가 당사자를 배제하면서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는 게 본질적 문제다. 당사자들은 일본 정부의 불가역적인 사죄를 원했다. 일본이 사죄를 시작으로 계속 역사를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를, 이에 대한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법적 책임을 명시해달라고 할머니들이 원하셨다. 한국 외교당국은 일본 정부가 이것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당사자를 배제하고 약속을 맺었다. 그러나 당사자를 배제한 약속은 억압적이고 시민들도 반발하게 돼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을 둘러싼 한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일본 정부는 2015년의 반복 또는 그 이상의 양보를 원할 것이다. 한국이 정치적, 외교적 타협의 손을 내밀어 강제동원을 둘러싼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 하면, ‘수출규제를 강력하게 하니 한국을 2015년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 ‘한국에는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성공 경험’을 일본에 주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베로서는 정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총리가 되고, ‘정상국가’를 완성하게 된다. 일본 시민사회도 국제사회와 한국 시민들이 역사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 대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했는지 공유하면서 배워갈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저는 외교적으로 신속한 봉합에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원칙적인 메시지는 보내고 일본 사회와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박민희 노지원 기자 minggu@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