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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4 09:52 수정 : 2005.01.14 09:52

한나라당 박근혜 새 대표가 2004년 3월 24일 오전 여의도 천막당사로 출근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현장]당사 이전에 얽힌 한나라당의 고민

“차를 타고 국회에서 당사까지 10분밖에 안 걸리지만 심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진 것 같아 이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계약조건과 기간 등의 문제들을 감안해 풀어나가겠다”(지난 11일 김무성 신임 사무총장 취임일성)


“여의도에 적당한 건물만 나오면 (당사를) 옮길 생각도 있다. 주차공간도 어느 정도 있고, 단독으로 한층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7일 김형오 전 사무총장)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한나라당 당사가 국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여의도 부근으로 옮겨야 한다는 한나라 고위당직자들의 발언이 잇따랐다. 당사 이전을 거론한 당사자들은 당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전·현직 사무총장들이었다. 그만큼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당사 이전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아무리 사무총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라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한나라당은 2003년 연말 불법대선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차떼기당’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번듯한 여의도 당사를 내놓고 쫓겨나다시피 길거리 천막당사로 나앉았다. 탄핵의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국민께 석고대죄하는 천막정신’으로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16일 “소금과 같은 정치를 하겠다”며 염창동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김덕룡 원내대표는 “부패와 비리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다해 집권시대로 가는 염창동 시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당의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6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사를 옮기겠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벌써부터 “(천막당사) 쇼한 것 공개적으로 인정하자는 거지요”(네이버 ‘soojin001’), “‘차떼기’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당사 옮기려고요. 슬슬 ‘차떼기 본색’을 다시 드러내려는 것인가”(‘trueman00’), “또 차떼기해서 돈 벌었나? 당사이전 운운하는거 보니”(‘o_ps’) 등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한나라당이 비난을 감수하면서 6개월 만에 당사이전을 추진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또 한나라당은 두 사무총장의 말대로 한국정치의 1번지 여의도에 다시 입성할 수 있을까?

썰렁한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낮 기온마저 영하로 떨어진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사 안은 바깥 날씨만큼 썰렁했다. 당사 오른쪽과 왼쪽 문을 지키고 선 검은 제복의 전경들을 빼고는 당사 안팎은 인적이 드물다. 차량 100여대가 주차할 수 있다는 넓직한 앞마당 주차장도 알맹이 빠진 옥수수마냥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띈다.

기자들로 북적거리던 지하1층 기자실도 찬기운이 돈다. 소형 텔레비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방송기자 두세명을 빼고 50여평 규모의 넓직한 기자실은 텅 빈 채 적막감이 감돈다. 지난 9월9일 박근혜 대표가 “몸을 던져 국가보안법을 막겠다”고 기자회견을 할 당시만해도 이곳은 2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런 사정은 당직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1층 사무처를 빼고 당대표실, 대변인실, 원내대표실도 비슷하다. 모든 방에 파란 문패만 선명할 뿐 문패의 주인은 찾아볼 수 없고, 잘 꾸며진 방안은 텅 빈채 먼지만 날린다. 전경들이 지켜주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사 안은 조용한 산속의 절간 같다. 이날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 850평 어디에서도 당사의 주인인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지난 12일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의 기자실. 방송기자 두세명을 빼고 넓직한 기자실은 텅 빈 채 적막감이 감돌았다. 박종찬 기자


“자가용으로 딱 7분, 업무의 효율성 떨어진다고?”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는 소외감이 커”

이런 썰렁한 당사 분위기는 국회로부터 멀어진 염창동에 와서 더 심해졌다고 당직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 사무처 당직자는 “당 간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의원들은 연말이나 신년행사를 제외하면 1년에 당사를 방문할 일이 거의 없다”며 “당선 뒤 아직까지 당사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의원들도 여러 명 있다”고 귀띔했다.

사무총장들이 비난여론을 무릎쓰고 당사를 옮기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의원들과 가장 자주 접촉하는 사무총장들이 이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의원들 사이에서 국회와 당사가 떨어져 있다보니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회 상황에 당직자들이 재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의원과 당직자 사이에 일체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여러 의원들이 당사 이전 의견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부대변인은 “국회와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상주하는 기자도 부쩍 줄어 홍보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의원들에게 염창동에 있는 당사는 시간적 거리와 업무의 효율성으로만 따질 문제가 아니다. 실제 한나라당 사무처가 계산한 국회와 염창동 당사까지의 거리는 차로 딱 7분이다. 지하철과 버스로 1시간 이상을 출퇴근하는 서민들에게 불과 7분거리가 멀다고 하는 의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의원들이 당사에 발길을 멈춘 이유는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에서 멀어졌다는 심리적 거리감이 오히려 큰 것인지 모른다. 같은 서울하늘에서 강북과 강남에 사는 것의 차이를 따지는 우리 사회에서 의원들에게 여의도와 염창동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70분, 아니 7시간의 거리일 수도 있다.

한 중앙일간지 출입기자는 “의원들이 천막당사에 비해 지금 염창동 당사에 대한 공간적인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원내정당 가운데 한국정치의 중심인 여의도에서 한나라당 당사가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은 의원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이나 정치적 소외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의원들이 당사에 발길이 뜸한 이유로 17대국회 들어 각 정당들이 원내정당화를 강조하면서 정책에 대한 회의와 언론접촉이 국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당사에 발길을 멀리 한다면 우리 정치가 원내 정당을 중심으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직자들 “차떼기당, 귀족정치 소리 다시 듣고싶나?”
“당사 옮기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 반발

의원들의 당사이전 요구와는 달리 당직자들은 “지금 당사 이전은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현재 한나라당의 자금사정이나 여의도의 사무실 임대조건 등을 감안할 때 당사이전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고민이다. 이런 이유로 언론을 통해 당사이전 보도가 나간 뒤 염창동 당사는 술렁이고 있다.

사무처 고위 당직자는 “의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을 뿐 당의 공식기구를 통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이전의 명분이나 현실적인 요건을 모두 고려했을 때 지금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무엇보다 염창동으로 당사를 옮길 때 국민들에게 “깨끗하고 돈 안드는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 사무처 직원은 “‘차떼기당’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호화로운 여의도 당사를 버린 것 아니냐”며 “다시 여의도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국민들과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고 여의도와 멀어 옮긴다는 것도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사를 옮기는 것은 죽으러 가자는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이 귀족정치로 몰아세울 것이 뻔하고, 또 다시 지방선거와 대선이 ‘서민정치 대 귀족정치’라는 구도로 치뤄지면 재집권은 영구히 물건너간다”고 덧붙였다.

염창동 당사로 옮겨올 때 실무진과 이것저것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박근혜 대표도 의원들의 옮기자는 주장보다 명분을 잃을 수 있다는 당직자들의 의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최근 한 측근에게 “계약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라며 당사 이전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 민주당 입주 건물주 “노숙자에 공짜로 주더라도 정당당사는 안돼”

당사를 옮길 수 있는 현실적인 요건인 재정과 100여명 당직자를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여의도에 구하는 것도 쉽지않은 문제다. 현재 염창동 당사는 보증금 20억원, 월세 5천500만원의 조건으로 임대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건물주인이 김무성 사무총장의 친형인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이어서 시세보다 싼값에 입주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이후 당사는 물론 연수원까지 매각에 나선 한나라당의 자금사정을 감안하면 염창동 당사의 임대금액을 넘는 여윳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당직자들이 염창동보다 사무실 임대료가 비싼 여의도나 마포 일대로 이사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당직자는 물론 민원인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는 정당 당사의 사정상, 건물 전체를 빌리지 않는다면 100여대 주차공간을 지닌 건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사무처 고위 당직자는 “이미 염창동으로 이사를 올 때 공항 주변, 마포, 여의도 등 주변을 샅샅이 뒤졌고, 최근 당사 이전 이야기가 나오자 실무선에서 장소를 물색해봤다”며 “지금 당사 정도의 조건을 갖춘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 등으로 옮기면 주차공간은 물론 정당사상 처음으로 만든 보육시설 등이 1차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요구일 뿐 당직자들 대부분은 현 당사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언론 등에서 유력하게 거론된 구 민주당사에 입주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어림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다른 당이 사용하던 곳에 들어간다는 것이 모양새도 그럴뿐만 아니라, 알아보니 건물 주인이 민주당 당사시절에 얼마나 데었던지 ‘노숙자들에게 공짜로 건물을 내주더라도 당사로 임대는 안된다’며 치를 떨더라”며 “여의도 건물 주인들 분위기가 그렇다”고 귀띔했다.

“겨우 당조직 안착하고 있는데, 또 이사라고”
“풍수적으로 정치인이 주인되면 성공할 터”

한나라당도 지난해 심각한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았다. 당사를 여의도에서 천막으로, 다시 염창동으로 옮겼고 당직자도 70%를 줄였다.

사무처 관계자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이제 겨우 당 조직이 안착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또 이사를 하게 되면 당 조직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기적으로 올해 4월, 11월 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당사를 옮길 겨를도 없고 혼란만 자초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무처 고위 당직자는 염창동 청사와 관련해 이름난 풍수지리가의 말을 전하며 당사 이전이 불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풍수적으로 보면 염창동 당사 터가 기가 세, 정치인이 주인이 되면 땅 기운을 다스리고 번창할 것이라고 했다”며 “물론 이것 때문에 당사를 이전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고 은근히 강조했다. “이 건물에서 장사했던 회사들이 대부분 망해서 나가고, 식당도 들어서면 파리날렸다. 사람도 죽어 나갔다. 그래서 1년 동안 비어 있었다. 풍수적으로 보면 이 땅이 기가 센 땅이라고 하는데 정치인들이 워낙 팔자와 기가 세지 않나? 그래서 풍수적으로 정치인이 이 땅의 주인이 되면 땅 기운을 다스리고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쪽으로 옮겨와서 한나라당이나 박 대표나 별탈없이 잘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때 ‘영구집권 상징’이 ‘불임정당 표상’으로
여의도가 한나라당에 작용하는 두 힘, 구심력과 원심력

한나라당이 올해 당장 당사를 이전하기는 여러가지 이유로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이 가까워지고 ‘차떼기당’이라는 기억이 희미해질 때도, 한나라당이 ‘염창동 당사’를 지킬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지금 두 가지 충돌하는 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여의도’라는 강한 중심을 향한 구심력과 서울 변두리 ‘염창동’이 표상하는 원심력이 한나라당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작용하는 구심력은 본능적인 것이고, 원심력은 너무 강한 구심력에 의한 반동으로 일시적으로 밀려난 힘에 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여의도 옛 당사에도 충돌하는 두가지 표상이 담겨 있다. ‘차떼기트럭당’의 뼈아픈 기억이 서린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는 신축 당시만 해도 ‘한나라당 장기집권’의 상징이었다.

한나라당이 97년 신한국당 시절, 230억원을 들여 신축한 여의도 당사는 지상10층 지하6층 규모로, 정당 당사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매머드급’이었다. 7층 총재 집무실에 샤워시설까지 갖춘 호화로운 이 당사는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영구집권’의 꿈을 꾸게 했던 곳이다. 그 영구집권의 꿈을 배태한 당사는 한번도 집권을 안겨주지 못하고, ‘차떼기당’의 낙인을 찍었다.

한때 ‘영구집권’을 꿈꾸던 한나라당은 두번의 대선 패배에 이어 다수당에서도 밀려났다. 당 안팎에서 대권 승리 가능성이 없는 “불임정당”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한나라당 당사는 “무릇 살려고 하는 자 죽임을 당하고, 죽으려 하는 자 반드시 살 것”(필생즉사 필사즉생)이라는 무인들의 계구를 떠오르게 한다. ‘여의도’를 향한 한나라당 사람들의 꿈은 간절하다. 그것은 물리적인 구심력으로 작용해 그들을 여의도로 당길 것인가? 아니면 원심력으로 작용해 여의도로부터 밀어낼 것인가? 한나라당 당사는 그 힘의 충돌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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