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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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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치적 이념 없다”날선 비판
‘행정의 달인’에서 ‘여론조사 부동의 1위’로
고건 국무총리를 수식하는 말이 시나브로 달라졌다.
‘정치인 선호도 1위 고건, 2007 대통령선거는 떼논 당상인가?’, ‘고건현상을 읽으면, 2007 대선이 보인다’
2007년 다음 대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6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뒤 별다른 외부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언론은 유력한 차기대권 후보로 ‘고건’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른바 ‘고건 대망론’은 2007년 대선을 읽는 핵심 열쇳말이 되고 있다.
이런 ‘고건현상’의 배경은 혼란스러운 정국상황이다. 지난해 정치권에서는 탄핵, 행정수도 위헌판결,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치열했다. 정치권의 분열과 갈등에 환멸을 국민적 정서가 ‘안정과 경륜을 갖춘 온화한 조정자’ 고건의 가치를 어느 때보다 높였다.
고 전 총리는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자신이 고문을 맡고 있는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 전 의원, 5.18기념재단이사장)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정치적 행보를 펼쳐왔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24일 다산연구소를 통해 자신의 호를 ‘우민(又民,于民)’으로 정했다는 사실을 통해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한편 다산연구소는 연구소가 고 전 총리의 싱크탱크 구실을 하는 것 아니냐는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 13일 회원들에게 "고건 대권행보-억측과 허구사이"라는 메일을 보내 “우리는 고 전 총리의 씽크탱크도 아니고 대권전략팀도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안정과 경륜을 갖춘 고건’은 이미지, 정치컨텐츠는?
대선 후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안정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외에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서 고건의 정치철학이나 사회관 등 이른바 ‘고건의 정치 컨텐츠’에 대한 본격 검증이나 분석은 전무한 상태다. 물론 대권에 대한 뜻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고건의 정치 컨텐츠’에 대한 검증은 섣부른 측면이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17일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동국대 강정구 교수(사회학)가 인터넷신문인 <데일리서프라이즈>(www.dailyseop.com) 칼럼을 통해 ‘고건 대망론’과 ‘고건의 정치 컨텐츠’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강 교수는 “때 이른 차기 대권주자와 관련된 이름이 자주 거명되고 있는데 전직 최고위 관료를 역임했고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한 인사에 대한 자의반타의반 거론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다”며 “그 인사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작업이 진행되기도 전에 막연한 인기가 일반인 사이에 고착화 될 것 같은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정구 “대통령은 아무나 꿈꿀 수있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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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고건씨의 사회역사관과 관련해 신년사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이 ‘분열상’은 해방공간의 혼란한 사회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한 것을 놓고 “갈등론보다는 균형론과 통합론에 경도돼 있다”고 규정했다.
강 교수는 “일부의 이탈, 갈등, 혼란 등은 비정상적이고 사회병리적인 것이기에 치유로 해결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고 정상적인 것은 사회가 잘 통합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고 이 방향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견해”라며 “근본적으로 기존지배체제 지향적인 보수성을 띤다”고 비판했다.
‘고뇌없는 역사관’…“민족사의 미래를 맡길 수 없어”
강 교수는 고건씨가 참여정부를 해방공간의 분열과 혼란상으로 비유한 것과 관련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뇌도 없이 섣부른 역사관을 함부로 피력하는 대권주자들이 집권했을 때 어떻게 민족의 장기적 구도를 가늠하고 민족사의 행로를 제시하고 이끌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해방공간은 조선사람이 원하는 사회와 역사를 만들려는 민족사의 요구를 배반하고 이를 무력으로 짓밟았던 미국에 대해 조선인이 벌릴 수밖에 없었던 민족자주-해방의 실천투쟁이었다”며 “해방공간은 일부 대선주자의 인식과 같이 조선인 사이의 극단적인 분열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고건씨의 역사의식을 의회적으로 꼬집었다.
강 교수는 고건씨가 신년사에서 언급한 “실용주의보다는 이념과 명분의 허상을 쫓느라 분주했다”고 일갈한 것을 놓고 그의 이념적 지향을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라크파병, 4대입법, 국가보안법 등을 놓고) 그의 갑신년 진단이 이념과 명분의 허상을 쫓는 것이었는지 의문”이라며 “이를 허상으로 매도하고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관료밖에 내세울 게 없는 그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원천적 문제일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건의 실용주의는 관료의 태생적 한계”
“관료는 전문적 수단이 본업, 정치지도자는 역사의 목표의식이 기본”
강 교수는 “본래 관료란 그 속성상 주어진 목표를 단순히 수행하는 수단의 합리성만 염두에 두지 이 목표 자체가 과연 사회와 역사가 요구하는 정합성을 가진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며 “이런 관료기질이 체질화 되다보니 이념과 명분에 관련된 문제는 모두 구체적 삶과 직결되지 않은 허상으로 보는 근시안이 고착되어 있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또 “전문적 수단을 본업으로 하는 관료와 사회와 역사의 목표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지도자와는 속성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는 베버의 혜안을 그를 비롯한 많은 대선주자는 놓치고 있다”며 “여론조사 응답자들도 이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해 마치 훌륭한 관료가 훌륭한 정치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비약적 추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정치지도자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져야”…고건에게 그것이 있나?
강 교수는 “정치지도자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져야 한다”며 “역사적 정통성은 정권을 구성하는 핵심주체가 정권창출 이전에 당시대에서 민족사적으로 요구되는 핵심과제들에 대한 실천행위를 얼마나 했고, 또 정권창출 후 그것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신조나 정책적 지향이 구비되었는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고건씨가 유신과 5·6공 군사정권 아래에서 대과없이 고위 공직생활을 해온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연초에 갑자기 주목을 받는 관료출신의 인사가 자신을 성찰하고 무엇을 더 연마해야 할지에 고뇌해보기를 촉구한다. 또한 일반인들도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깊게 짚어 보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강 교수의 이같은 고건씨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인 ‘고건의 정치 컨텐츠’에 대한 검증을 촉발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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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다산연구소 고문의 1월1일자 메일] 선진화의 미래를 기약하며 을유년(乙酉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5년 새해를 맞아 다산연구소 회원 여러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지난 갑신년은 정치 사회적 갈등과 대립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던 한해였습니다. 해묵은 지역 빈부 노사 계층 갈등에다 이념 세대갈등까지 겹쳐 사회적 대립과 분열은 해방공간의 혼란한 사회상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속에 서민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공동체적 규범과 공공선에의 관심을 이끌어 낼 기제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제(諸) 세력들은 21세기 미래전략을 모색하려는 노력보다는 ‘기(氣) 싸움’ ‘힘겨루기’ ‘제몫 챙기기’에만 더욱 골몰했습니다. 실용주의보다는 이념과 명분의 허상을 좇느라 분주했습니다. 이래서는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분단의 역경을 딛고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리더십 쪽에서 미래비전과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고 국민통합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민주화 이후의 선진화된 미래를 이루어 내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저력은 위대합니다.
이런 현실인식과 판단에서 저는 다산연구소가 벌이는 다산운동에 공감하면서 고문직의 소임을 수락했습니다.
우리가 다산을 주목한 것은 다산연구소 설립 취지문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민중을 역사발전의 주체로 파악했고 그의 사상이 백성사랑의 인도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용주의 철학과 과학기술을 통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발전, 그리고 제도개혁과 의식개혁의 병행을 통한 부패척결을 사회발전의 요체’ 라고 역설했기 때문입니다.
다산연구소는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오늘에 되살려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제도개혁의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고 국민의 의식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설립됐다는 것은 회원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다산연구소는 “다산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전념해 왔으며 새해부터는 범국민적인 다산운동을 보다 구체화 한다”는 것이 연구소 측의 계획입니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경세가인 다산을 평소 존경해 왔고 그의 철학과 개혁정신에서 미래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 지향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 저로서는 다산운동의 활성화와 성공적인 결실을 위해 미력이나마 보태려 합니다.
“한 사회의 성패여부는 시민정신의 함양에 있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캠의 말과 “사람은 의지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경구를 음미하면서 많은 뜻있는 분들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 봅니다. 을유년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새로운 해’로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합시다. 2005년1월1일 다산연구소 고문 우민(又民) 고 건(高 建)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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