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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8:47 수정 : 2005.01.17 18:47



■ 의미·파장 어디까지
전승국 차원 아닌 ‘민사 채무방식’ 비판
“보상문제 매듭” 일본 주장 설득력 잃어

지난 40년 동안 베일에 싸였던 한-일 협정 문서의 공개는 개인청구권 문제를 비롯해 독도 영유권 논란,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실체 등 ‘역사적 거래’의 진실을 추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당장 일제에 강제로 끌려갔던 국내 피해자 및 유족들의 보상 요구가 쏟아지고, 이참에 협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관계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끼칠 ‘과거사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후폭풍을 예상하고서도 한-일 협정 문서 공개를 결정한 것은 2심 재판에서 공개하라는 판결이 예상되긴 하지만 정부 나름대로 한-일 과거사 문제를 주체적으로 정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일본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어두운 과거를 털지 않고서는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게 한-일 관계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일제 불법강점 피해자 및 유족들의 법적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각도 정부의 공개 방침을 거들었다. 일제 치하에서 기본적인 인권과 재산권을 박탈당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민주적인 정부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이다. 한-일 협정이 과거 군사정부 시절 맺어지고, 이후 군사정부의 접근불허 방침 속에서 의혹만 증폭시킨 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반성도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만큼 일제 강점 피해자 및 유족들의 보상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소지가 크다. 게다가 한-일 협상 당시 정부는 징병·징용 피해자 103만2684명에 대해 모두 3억6400만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으며, 정부에 대한 개인의 정당한 청구권을 인정했다는 게 이번에 공식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으로 무상 3억달러를 한꺼번에 받아, 1970년대 중반 징용 사망자 8522명에게 1인당 30만원씩을 지급하는 데 그쳤다. 피해자 및 유족들로선 정부에 대해 “중간에서 가로챈 내 돈을 내놓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공화당 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경제개발로 보충하기 위해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했고, 일본은 경제협력 대가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개인청구권 문제를 슬쩍 넘어갔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는 그런 개인청구권을 희생시킨 정치적 흑막의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이에 따라 사회 일각에서 한-일 협상을 다시 하자거나, 한-일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전승국 차원에서 배상을 받아도 부족한데, 민사적 채권채무를 청산하는 형식으로 청구권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극히 일부에 한해 생색내기용 개인보상을 했을 뿐 일본 쪽 주장대로 경제협력 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문서 공개는 한-일 협정으로 개인 보상에 대한 책임에서 일본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은 한-일 협정이 국가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완료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일본 스스로 한국의 청구권 자금 요구를 경제협력 대가라고 강변했으며, 이후 한국인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에 대해선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이중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정부 ‘개별보상보단 포괄지원’

문서공개기획단 설치, 지원법·기념관등 검토

정부는 17일 한-일 협정 문서 공개에 따라 국내 일제 강점 피해자 및 유족들의 보상 요구가 밀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무조정실에 ‘한-일 수교회담 문서공개 대책기획단’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외교통상부에는 ‘문서공개 실무기획단’을 설치해 문서 공개가 한-일 관계에 끼칠 영향 등을 분석하고 대책을 협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일본에서 받은 돈이 개별적인 청구권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 및 국민 전체에 대한 보상 성격의 자금이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개별 청구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원칙은 정하지 못한 채, 정부에 보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이미 내려진만큼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정도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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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있었던 피해자 개별 보상이 극소수에 한정된데다,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건네받아 사용한 내역을 보면 포항제철 설립, 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 개발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개별 보상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정부는 개별 보상보다는 포괄적인 지원 방식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현재 국회에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법안이 계류돼 있어 이에 대한 검토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군인, 군속, 노무자, 여성 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와 유족에 대한 생활지원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또 최종 단계에선 일제 강점 희생자들을 기리고 유족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기념관 등을 건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념관 건립을 통해 역사를 정리하고 유족들에게 일자리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상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지금은 막 논의를 시작하는 출발점에 있다”며 “피해자 범위 선정이나 입법 대책, 재원 조달 문제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소송 4종류’ 한·일정부 겨냥

태평양전쟁유족회 계획…기존 판례는 “개인청구권 소멸”

17일 한-일 협정 문서 공개를 계기로 태평양전쟁 피해자 단체들이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한국과 일본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 애초 기대했던 ‘개인 청구권’과 관련한 중요 정보들은 빠져 있다. 따라서 두 나라 정부의 보상 책임을 오히려 ‘부각’시킨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법원이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기존 판례를 고수할 경우 소송 결과를 낙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문서 공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4가지 종류의 소송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는 태평양전쟁에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송환 유해’ 유가족들의 정신적 피해 보상 청구소송, 미불임금·공탁금·후생연금 반환 청구소송 등 2가지다. 유족회 쪽은 군인·군속을 제외한 노무자에 대한 미불노임이 원금만 2억1천만엔에 이르며, 변호인단은 이 돈이 현재 가치로 원금의 7772배인 1조6321억2천만엔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 쪽에는 1975년 국가 보상금(30만원)을 받지 못한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과, 이때 지급한 보상금이 적절한 규모인지를 따져 묻는 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방침이다. 한국 정부는 한-일 협정 청구권으로 일본에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받았지만,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은 군인·군속의 직계가족 8552명에게만 돈 30만원을 건네주고 모든 배상을 끝냈다.

양순임 유족회 회장은 “소송과는 별도로 지난해 6월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 117명이 발의한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 통과를 위해서도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15대와 16대 국회 때도 제출됐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의회 회기를 넘겨 두번이나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날 공개된 문서는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고 보고 있다. 김창록 부산대 교수(법학)는 “이날 공개된 자료에는 일본 정부(또는 법원)의 입장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1급 정보들이 없다”며 “문서 공개가 앞으로의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만 “이번 문서 공개 소송의 배경이 된 2000년 5월 한국 노동자 6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피해보상 소송에는 다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과 12월 강제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유족 35명과 우키시마호 생존자들이 각각 낸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망자 1인당 30만원 지급

박정희 정권은 한-일 협정 체결로 확보한 ‘청구권 자금’ 중 무상 3억달러 가운데 극히 일부의 돈을 민간 보상에 사용했다. 정부는 70년대에 들어선 뒤 강제 징용·징병자 중 사망자와 재산권 소지자에 한해서 10개월 동안(71년 5월~72년 3월) 보상 신청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동안(75년 7월~77년 6월) 인명·재산 피해 등 8만3519건에 대해 모두 91억8769만3천원을 보상했다. 사망자 1인당 30만원 보상은 당시 군인 및 대간첩작전 지원 중 사망한 향토예비군에게 지급하는 일시급여금에 준하는 금액이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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