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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3 09:18 수정 : 2019.07.14 10:13

[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20여년간 되풀이되는 내로남불
정치가 불신받는 가장 큰 원인
특히 젊은층은 ‘불공정함’에 분노
말 바꾸는 여야에 염증 느껴

주장은 시간 지나면 바꿀 수 있어
정책이나 인사도 상황 따라 변동
중요한 것은 그때 갖추어야 할 태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 구해야

최근 정치권에서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설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조 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왼쪽)과 대화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기본적으로 행정부 공무원의 인사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특히 우리 헌법상 장관은 독립적인 기관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지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역시 대통령을 돕는 역할을 하는 청와대 비서관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민정수석비서관이 바로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검찰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지 않으냐는 문제제기를 하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괜찮다. 반대로 검찰을 좌지우지하려고 든다면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사람이라도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고 답하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름의 히스토리가 있고, 입장이 바뀐 여야의 공방과 관련된 ‘내로남불’의 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왜 정치가 그토록 불신을 받느냐는 질문에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내로남불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가장 괴로운 순간도 내로남불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느낄 때다.

한국당도, 민주당도 말바꾸기

먼저 사실관계부터 살펴보자. 2011년 7월 개각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던 권재진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권 수석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며 “검찰과 법무부 내에서 따르는 후배가 많아 흐트러진 검찰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에 있다고 장관으로 못 나가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데 따르는 우려에 대해서도 “해마다 선거가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인사를) 항상 못 한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당장 격렬한 반대가 터져 나왔다. 당 대표는 “최측근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는 태도는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고,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측근 인사, 회전문 인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최악의 인사”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현직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것은 (이듬해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확신한다”며 “권재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쌓인 말이 무겁고 두텁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정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면 논리적으로 두 가지 가능한 방법이 있다.

우선, 전에 내세웠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때는 민정수석이 바로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다고 밝히면 된다. 견해의 수정이다. 체면이 손상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격렬하게 반대했던 만큼 사과해야 할 수도 있다. 특히 발언 당사자들은 더욱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될 뿐이지 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의견이 바뀔 수 있다. 전에 한번 어떤 입장을 취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하면 된다.

2011년 7월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던 권재진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현직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것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반대했다. 사진은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2013년 2월19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다음 방법은 “사람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거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은 검찰의 중립성을 해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민주당 정부에서 임명될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전에 했던 주장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전형적으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내가 하면 괜찮고 네가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공감을 얻는 일은 애초부터 포기하는 태도다. 상식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지점이 바로 이 순간이다. 정치인들이 낯이 두껍다고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해야 할 때만큼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사정은 자유한국당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하다. 권재진 장관 임명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강력히 옹호했다. 홍준표 대표는 “인사는 당론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며, 민정수석이 법무행정을 하는 자리인 법무부 장관에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아무런 설명 없이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다면 공감은커녕 조소만 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자유한국당의 경우에는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 내정설이 있던 문재인 민정수석의 임명에 반대했다가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뒤 말을 바꾼 전력도 있다.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정신적 테러다”라는 것이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의 발언이다. 민주당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에 반대한다면 두번째로 입장을 뒤집는 셈이다. ‘자기분열적’이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애써 새로 논평을 쓸 필요도 없이 과거 상대편 대변인이 했던 말을 가져다 쓰면 된다. 실제로도 그렇게 인용하면서 모순된 행태를 서로 비웃는 일이 잦다. 그 순간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양쪽 다 마찬가지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모양새라는 생각을 하면 서글픈 생각까지 든다. 왜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을 일삼는가.

개별 의원은 몰라도 정당은 손해

누구보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민감한 국회의원들이 언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한 행태를 보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열혈 지지자들의 눈에 들려는 것이다. 이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은 숫자로 증명이 된다. 지난 20대 총선의 투표율은 58%였다. 선거에 이기기 위한 득표율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투표자의 절반이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의 경우는 약 37%로 승리했다. 단순 계산으로 투표율과 득표율을 곱해보면 22% 정도다. 유권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표만 얻으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어렵게 중도층이나 혹은 다른 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소수의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하게 할 수 있다면 당선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개 의원들의 관점에서 보는 계산일 뿐이다. 당 전체로 보면 당연히 손해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한테 유리하게 말을 바꾸는 정당이 어떻게 유권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나. 내로남불의 행태는 당 지지율을 떨어뜨린다. 지지율이 낮은 정당이 선거에 이길 수는 없다. 설혹 운 좋게 소수 열혈 지지자들에 힘입어 집권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수 유권자가 경원하는 상황이라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갈등만 유발하는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정치 전체로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심지어 국회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을 안 해서? 그렇지 않다. 20대 국회 들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2만1000건에 이른다. 19대 국회 4년 동안 발의한 1만8700건을 훌쩍 뛰어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 불신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나는 그 이유가 자기편만 바라보는 내로남불과 같은 행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하다. 최근 민주당은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정치(인)의 불공정함’이다.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에도 20대는 등을 돌렸다. 여야가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집권만 해서 힘이 생기면 자기편 감싸기에 몰두하는 모습에 청년들이 염증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이라고 해서 항상 내로남불을 하지는 않는다. 주장이나 입장이 바뀔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결국 합의를 이루어낸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 전용기 구입 문제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청와대는 전용기 구매를 추진하면서 국회에 300억원의 예산(착수비)을 요청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전용기를 구입할 돈이 있으면 5만원 전기세를 못 내 촛불을 켜고 사는 수많은 빈곤층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정권이 바뀐 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가 전용기 구매를 추진했다. 당연히 민주당은 같은 논리로 강력히 반대했다. 반전이 이루어진 것은 이때다. 한나라당은 솔직하게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었다고 인정하면서 사과했다. 민주당이 이 사과를 대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비록 당시 보잉사와의 구매 협상 과정에서 가격 차이로 무산됐지만 이제 어느 쪽이 정권을 잡더라도 전용기 구매가 가능해졌다. 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한 것이다.

정치가 기능했던 ‘전용기 구매’ 논란

1996년 6월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의원 빼가기’와 관련한 야당의 공세에 대해 “자기가 부동산을 사면 부동산 투자고 남이 사면 투기다, 자기의 여자관계는 로맨스고 남의 여자관계는 스캔들이다, 이런 웃기는 주장이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한 이래 한국 정치는 20년이 넘도록 내로남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면 “야당일 때 필리버스터까지 하면서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더니 여당이 되고는 한마디도 안 하느냐”고 비판하지만 반대 사례도 차고 넘친다. 집권했을 때는 인사청문 보고서를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자유한국당이 야당이 되고 나자 조금만 트집거리가 있으면 아예 보고서 채택에 반대를 한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정치적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 정책이나 인사 문제도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전에 반대했던 일이라고 해도 필요하면 찬성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 갖추어야 할 태도다. 억지와 무리한 자기합리화를 고집하면 목적을 이루기도 어렵게 되고 결국 서로 트집을 잡고 싸움만 하는 원인이 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쌓아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 입장을 바꿀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내로남불의 불명예를 벗고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금태섭 :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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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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