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9 19:49
수정 : 2019.12.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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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7일째였던 지난 2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 앞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릎을 꿇고 황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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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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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7일째였던 지난 2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 앞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릎을 꿇고 황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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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황교안이다.”
주어와 술어만으로 이뤄진 이 단순명료한 진술 형식(우리가 ○○○이다)에 매료된 건 스무살 무렵이다. ‘민중’을 들먹이며 후배들의 나약함을 질타하던 1년 선배에게 동기 하나가 작심하고 반기를 들었다. “그만 좀 해. 우리가 민중이야. 형이 말하는 그 민중이 바로 우리라니까.” 그 말이 호네커 정권에 맞서던 동독 반체제 시위대의 구호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에서 고스란히 가져온 것임을 알게 된 뒤 살짝 감동이 반감되긴 했어도, 어쨌든 만사에 진지한 잔소리꾼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인 그 친구가 당시로선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 없었다.
“우리가 인민이다”는 그 뒤 여러 형태의 구호로 변주되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주민·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우리도 난민이(었)다”가 그랬고, 위험에 노출된 산업현장 약자들에게 연대 의지를 드러내는 “우리가 김용균이다” 역시 그랬다. 이 구호들을 낳은 것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어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처지(운명)의 동일성(보편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선동가라도 불특정 다수의 집합행동을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같은 요구성 구호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을 해야 편을 들고, 이 ‘한편 의식’이 일정 수위에 이르러야 사람은 비로소 행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의 아픔에 공감하는지, 그 처지와 자신의 운명을 얼마나 동일시하는지에 따라 정치적 행동의 양상과 강도 또한 달라진다.
그러니 이 구호의 역사성을 알고 있는 이라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감정은 두어달 전 서초동 거리를 메운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손팻말 구호에서 느낀 그것과도 다르다. 서초동의 구호가 공유하고 싶었던 것은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조국처럼 탈탈 털릴 수 있다’는 위기감과 분노였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가 조국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고학력 리버럴 중산층의 계면쩍은 자기고백이기도 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어떤가? 확실한 건 권력을 비판하는 언어 유희(우리가 인민이다)도, 중산층의 자기풍자적 고백(우리가 조국이다)도, 약자에 대한 공감과 보편성에 대한 자각(우리가 김용균이다)도 “우리가 황교안이다”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2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황교안 대표의 단식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황교안이다. 오늘부터 우리 한국당에서 이 단식을 이어간다. 또다른 황교안이 나타날 것이다.” 나 원내대표의 이 말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서 그 어떤 설명이나 해석의 틈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주는 감동이 있든 없든, 자진해 고행하는 당대표의 행동에 용기를 불어넣는 구호로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용퇴론’을 제기하며 당 쇄신을 압박하던 이들도 “우리가 황교안”이라는 슬로건의 비장함에 압도되어 입을 닫았고,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간 그의 단식은 들끓던 리더십 논란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당이 또하나의 초강수를 두었다는 점이다. 한국당은 29일 본회의 개의 직전, 상정된 안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12월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결사저지’를 공언해온 패스트트랙 선거법안과 검찰개혁법안뿐 아니라 예산안과 비쟁점 민생법안까지 볼모로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에 고개를 끄덕일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나는 황교안인가? 당신은 황교안인가? 대체 누가 황교안인가?
이세영 정치팀 데스크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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