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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9 10:46 수정 : 2018.09.19 11:06

국제학술지에 보고된 포항의 장성베도라치 ’자프로라 코리아나(Zaprora koreana)’. 남기수 제공(아래 모든 사진)

[기고] 남기수 대전과학고 교사

2000만~1500만년 전 신생대 지층
화석 보존되는 이암 퇴적층 발달
바다-육지생물과 곤충 화석까지 다양
돌덩어리로 버려지는 현실 안타까워

국제학술지에 보고된 포항의 장성베도라치 ’자프로라 코리아나(Zaprora koreana)’. 남기수 제공(아래 모든 사진)
대전과학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나는 올해 ‘이열치열’을 몸소 체험하고자 포항 지역을 자주 다녀왔다. 섭씨 38도의 기온을 뙤약볕 아래 야외에서 경험했다. 너무 더워 망치질을 하다가 실제 현기증을 느낀 적도 많았다. 사실 나는 화석이 좋아 화석 있는 곳을 즐겨 찾아다니는 고생물학 연구자다. 여러 신종의 곤충과 거미 화석을 발굴해 해외 학술지에도 발표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화석 산지로서 포항 지역을 자주 답사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이곳이 세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화석 산지임을 느끼게 되었다.

포항은 누군가에게 동해안, 포스코, 호미곶, 과매기, 물회 또는 지진 등을 떠올리게 하겠지만, 내게 포항은 우리나라 최고의 신생대 퇴적층이 발달하여 매우 다양한 화석이 산출되는 곳이다. 게다가 바다에서 퇴적된 지층이라, 바다에 살던 생물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살다가 강물에 쓸려 바다로 흘러가 함께 퇴적된 육상 생물의 화석이 함께 발견되는 특이한 곳이다. 그런 이곳의 풍성한 화석 산지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더욱이 근래에는 화석이 담긴 암석 조각들이 마구 버려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이 글을 쓴다.

포항의 중대형 어류 화석(위)과 포항의 갯가재 화석.
‘이암’ 퇴적층 발달한 포항 지역 지층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겠지만 포함의 지층과 암석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곳의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포항 지역에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보는 암석과 다른 모습으로 지층이 쌓여 있다. 서울이나 경기도의 경우에 흙이나 풀 아래의 암석 또는 노출된 바위를 보면 마그마에 의해 형성된 화성암이 대부분이다. 서울은 오래전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굳은 뒤에 지표로 노출된 암반 위에 있다. 한편 제주나 경기 북부, 강원 철원 지역에서는 주로 어둡고 구멍이 많이 보이는 암석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포항 지역에서 흔히 보는 암석은 밝은 갈색이며 다른 지역에 비해 단단하지도 않다. 어떤 암석은 손으로 강한 힘을 주면 부서질 정도로 약하다. 포항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암’이다. 이암은 퇴적암의 일종으로 모래보다 작은 진흙이 굳어 형성되며 형성 과정에서 생물이 함께 퇴적되어 화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화석은 자연이 인간에게 공짜로 준 많은 선물 중 하나이다. 며칠 전 이탈리아 로마에 가서 수천 년 전 유적을 보았다.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건축물로 관광산업이 활성화 된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또한 지하철 공사를 하는데 고대 건축물이 발견되어 공사에 지장을 받고 있었으며 도로나 여러 가지 시설들이 불편하더라도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이 우리에게 잘 다스리라고 물려준 선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대 화석 산지’의 가치

나와 같은 고생물학자는 암석을 바라보는 데에 독특한 시선을 갖고 있다. 눈을 뜨고 주변을 보면 하늘도 있고 공기도 있고 나무도 있지만, 고생물학자는 그보다 돌에 더 관심을 갖고 돌 속에 숨어 있을 화석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대한다. 수 년 전부터 포항 지역에 관심을 갖고 답사 활동을 하면서 그런 설렘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내게 포항은 동해안, 포스코, 호미곶, 과매기, 물회보다도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신생대 화석 산지으로 먼저 연상된다.

포항의 바닷가 절벽 아래에서 망치로 화석을 발굴하다 보면 해안가 도로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잠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지나가거나 눈만 마주치고 바로 제 갈 길을 간다. 가끔 나에게 다가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설문조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포항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포항에서 화석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화석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모를 것이다.

포항의 지질에 대해서는 1920년대 일본학자 다데이와(立岩)가 처음으로 연구를 했으며 그후 일본과 우리나라 지질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포항에서 산출된 수많은 표본들은 누가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다른 문화재들처럼 포항지역에서 산출된 화석 표본은 1900년대 초기의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일본의 대학들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풍화로 인해 훼손되는 포항 해안가 화석 산지.
개발과 안전 위해 버려지는 신생대 돌덩어리들

흔히 랜드마크 건축물 하나가 해당 도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리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고 부른다. 홍천의 산천어 축제, 보령의 머드축제, 서울의 경복궁처럼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축제나 특별한 랜드마크는 지역을 알리고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포항에 우리나라 신생대 화석을 직접 찾고 관찰하고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이 지어진다면 포항은 유명한 지질명소가 될 것이다. 포항이 향수를 자아내어 삶에 영향을 주는 토포필리아(장소사랑)의 한 장소가 될 수 있다.

포항은 이미 수천 년 전 자연이 공짜로 인류에게 물려준 지층과 화석을 품고 있다. 이를 모른 체하거나 개발과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없애버리는 행위는 제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은 박물관을 짓고 그 지역의 표본을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의 박물관들은 진품을 전시하지 못하고 레플리카(복제물)를 전시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산출된 화석이 아닌 외국의 화석을 구매해서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포항의 경우 지층에 다양하고 풍부한 화석이 보존되어 있어 표본 확보가 매우 용이하고 해안가를 접하고 있어 화석 발굴도 용이하고 지속적으로 표본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포항에서 산출되는 화석은 지질시대 중 비교적 최근인 신생대층에서 산출되기 때문에 현생과 매우 유사한 화석들이 발견된다. 특히 포항이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포항에서 산출되는 화석과 현생의 해양 생물을 함께 전시할 수 있어 전시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포항의 지층과 암석은 생성 시기가 다른 암석에 비해 젊은 퇴적암이라서 비바람과 파도 등에 의한 풍화에 잘 부서진다. 따라서 암석 속에 있는 화석이 훼손될 가능성도 높지만 화석을 발굴하기가 용이하다. 해안가의 낙석, 공사로 인한 부산물 등을 바다에 매몰하지 않고 모으기만 하면 화석을 발굴하고 학생들의 화석 발굴 체험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돌은 사용 여부에 따라 쓸모없는 폐기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포항 해안가 지질 답사.
포항 금광리에서 진기한 나무, 곤충 화석들 나와

포항 지역은 우리나라 신생대 마이오세지층이 퇴적되어 있으며 그 나이는 학자마다 연구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2000만 년에서 1500만 년 정도 된다. 이 때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가 동해가 형성된 시기이다. 실제로 포항 지역과 붙어 있었던 일본은 지질이 유사해 발견되는 화석도 유사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포항의 화석은 남부의 금광리 지역에서 육지의 생물이 화석화되어 발견된다. 육성층으로 알려진 금광동층에서 다양한 식물 화석이 발견돼 당시에 어떤 식물들이 우리나라에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 울릉도에만 자생한다고 알려진 너도밤나무가 이곳에서 화석으로 발견되어 당시에 포항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담양의 가로수길로 유명한 메타세콰이어는 우리나라에서 멸종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던 메타세콰이어 화석이 포항의 금광리 지역에서 발견되며, 이를 통해 지금과 다른 포항의 신생대 마이오세 숲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나뭇잎 화석 이외에도 나무 줄기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규화목이나 탄화목도 발견되며, 희귀하지만 곤충이나 어류 화석도 발견된다.

포항의 열매 화석.
포항의 나뭇잎 화석.
육해공 생물 함께 발견되는 특이 화석산지

금광리 지역과 달리 포항의 북부 지역은 신생대 당시에 바다에 잠겨 있던 지층이 육지에 드러난 곳으로서, 다양한 바다 생물 화석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지층은 두호층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다에 살던 조개, 게, 갯가재, 성게, 거미불가사리, 어류, 고래 같은 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또한 육지에 살던 생물이 강물에 쓸려 바다로 떠내려간 다음에 퇴적돼, 바다 생물과 육지 생물이 이곳에서 함께 발견된다.

이런 신생대의 바닷가 환경 덕분에 포항의 지층에는 바다에 살던 생물, 육지에 살던 식물, 그리고 하늘을 날던 곤충과 새 등의 화석이 함께 발견된다. 대부분의 지층에서는 육지에 살던 생물만 발견되거나 바다에 살던 생물만 발견된다. 포항의 화석군은 육, 해, 공에서 서식하던 생물이 함께 발견되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포항의 곤충 화석.
최근에는 포항에서 다양한 어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필자는 올해 전국과학전람회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포항 지역에서는 크기가 10센티미터 이하의 작은 물고기가 종종 발견되었지만 표본이 많지 않고 이를 연구할 어류 화석 전문가가 부족하여 거의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 현재까지는 눈이 한쪽으로 쏠린 가자미 화석을 이용하여 두 편의 논문이 국내 학회지에 실린 것이 전부이며 2018년에는 필자와 러시아 동물연구소 소속 과학자(Nazarkin)가 공동으로 포항의 장성베도라치화석을 연구하여 ‘자프로라 코리아나(Zaprora koreana)’라고 신종으로 명명하여 국제학술지 <척추고생물학회지(Journal of Vertebrate Paleontology)>에 발표했다. 포항의 어류 화석은 국제적인 가치가 충분하여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더 많은 화석들이 이름을 부여받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화석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노래한 것처럼, 대가없이 우리에게 준 자연의 선물인 화석에 다가가서 그 이름을 불러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자연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우리 인간의 작은 몸짓이라 생각한다.

남기수 대전과학고등학교 교사, 고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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