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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8 08:33 수정 : 2007.01.08 08:33

서울대병원 ‘기념우표’ 등 사업 추진에 일부선 “일제 잔재 기념” 반발
세브란스병원 ‘제중원’ 명칭 사용 말라 내용증명
서울대병원 “법정으로 갈 수도 있다”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건물 꼭대기에 큼지막한 시계가 걸려 있어 `함춘 시계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서울대병원의 전신으로 1907년 3월에 설립된 `대한의원'이 자리하던 곳이다. 사적 248호로 지정된 이 대한의원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사업추진단을 별도로 구성하고, 각종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기념사업의 공식 명칭은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광혜원) 122주년 기념사업'.

기념사업으로는 `서양근대의학의 도입과 국가의 역할' 이라는 국제 심포지엄과 기념식, 한마음행사(올림픽공원 제2체육관), 기념화보집 발간, `근대 국가의료체계의 형성' 책자 발간사업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서도 기념우표 발행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2005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 온 이 기념사업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일제 치하 식민 지배를 위해 세워진 대한의원 100주년을 기념하려 한다'는 주장이 연세대의대측에 의해 제기되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해 6월 연세대의대 여인석 교수가 교수신문에 기고한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할만한 일인가?"라는 글에서 시작됐다.

여 교수는 이 글에서 "대한의원이 설립된 1907년은 조선이 을사늑약으로 실질적 주권을 상실하고 통감부의 지배를 받던 때였다. 당시의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는 이완용, 이지용 등 매국에 앞장섰던 고위 관료들과 협의회를 구성해 조선 통치의 현안을 논의했다. 대한의원 설립이 논의된 것은 바로 이 자리로, 이토오 히로부미가 병원 설립을 제안했다"면서 대한의원의 역사가 일제치하에서 시작됐음을 지적했다.

즉 이미 실권을 상실한 조선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제 통감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립된 게 대한의원인데도 서울대학병원측이 이 대한의원을 국가중앙의료기관의 효시로 내세우며 기념하려 한다는 게 여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서울대병원의 이 같은 기념사업이 대한민국정부가 통감부나 총독부 설립 100주년을 근대국가 100주년으로 기념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면서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정부가 설립한 서울대학병원이, 일제가 식민지배를 목적으로 세운 대한의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 교수의 이런 입장은 연세대의대 내 대다수 교수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대한의원에 대한 역사적 인식부터 기념사업의 취지에 이르기까지 세브란스병원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게 서울대병원측의 입장이다.

서울대병원은 기념사업 취지문을 통해 "대한의원이 식민지 중앙병원으로서 식민통치에 일조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 병원을 한국 근대사의 내적 변화과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면서 "대한의원의 설립은 1885년 통리아문 산하에 제중원이 설치된 이래 자주적으로 서양의학을 수용하고자 했던 국가적 노력의 산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병원측의 이 같은 입장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인 제중원과 대한의원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제중원과 광제원, 적십자병원 등의 초기 의료기관들이 대한의원의 경험적 자산이었던 만큼 서울대병원의 기념사업은 대한의원의 일제치하 설립여부를 떠나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의미를 갖는다는 입장이다.

결국 어찌보면 이번 논란은 `대한의원 기념사업'이 발단이지만 제중원이 서로의 효시라는 기존의 다툼을 재연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은 이미 지난 25여간에 걸쳐 제중원을 두고 싸워왔다.

박형우 연세대의대 동은의학박물관장(해부학과)은 "서울대병원이 일제하에서 설립된 대한의원을 기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왜 기념사업 명칭에 (서울대병원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제중원을 거론하고, 일제하의 대한의원과 연결짓느냐"면서 "국가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의원 설립을 기념해 기념우표를 발행하고, 대규모 자축행사를 벌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불쾌해 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세브란스병원장은 서울대병원장에게 제중원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의원에 대해서는 서울대병원 교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교수는 "기념 심포지엄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대한의원 100주년에 맞춰 기념우표까지 발행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또 다른 교수는 "대한의원이야 일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국가중앙병원으로 제중원과 서울대병원은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제중원과 관련한 서울대병원의 공식 입장은 오히려 강경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이렇게 나오면 법적으로 가릴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홍보담당 김수웅 교수(비뇨기과)는 "서울대병원이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밖으로 크게 내비친 적이 없는데도 세브란스가 괜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사실 이번 기념사업은 서울대병원이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당시 국가중앙의료기관이었던 제중원의 맥을 잇는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길원 기자 bio@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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