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4 18:10
수정 : 2005.02.14 18:10
‘꽃섬’이라 불리던 이름난 신혼여행지가
1978년 ‘날벼락’…9700만t 쓰레기산으로
1992년 문닫고 생태공원으로 복원 몸부림
[3판]“샛강에 물이 들면 단 한 척뿐인 큰 나룻배를 타고 난지도로 건너갔지. 뱃삯도 참 공평하게 받았어. 난지도 안에서 농사를 많이 짓는 순서대로 5가마, 3가마, 2가마, 1가마….” 난지도 샛강 건너 모로리에서 3대를 살았던 최선행(61)씨는 쓰레기가 쌓이기 전인 1977년까지 난지도는 ‘난초(蘭)와 영지(芝)가 자라던 섬’이었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김포 신곡수중보가 생기기 전까지 물이 들고 났던 난지 샛강은 난지도 형성의 근원이었다. 망원정 근처에서 한강과 갈라진 난지 샛강은 행주산성께에서 다시 한강과 합쳐지며 100여만평의 모래섬을 빚었다. 조선 때는 꽃과 풀이 많다고 해서 ‘중초도’(中草島),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오리섬’(압도)이라 불렸고, ‘꽃섬’이란 이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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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에 물이 적은 때면, 귀리·모로리 마을사람들은 배 대신 소달구지를 타거나 지게를 지고 난지도 밭으로 일하러 다녔다. 서울시지하철공사 홍보실 원종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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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는 조선 때부터 양반들의 놀잇배가 뜨고 대는 곳이었고, 해방 뒤까지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최씨는 “60~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시민들의 이름난 신혼여행지였다”며 “포플러나무가 늘어선 길은 아베크족의 단골 데이트코스였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최근 이미지와는 달리 예전에는 기름진 땅 덕분에 주민들이 풍족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난지도에서 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샛강 건너편 모로리와 귀리 마을에 살았던 250여가구였다. 이들은 낮이면 난지도로 건너와 땅콩·수수 농사를 짓고 소를 놓아 풀을 먹였으며, 저녁이면 다시 소와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 수수 빗자루의 7할, 땅콩의 3할이 난지도에서 난다던 시절이었다. 아름답고 풍족했던 난지도는 77년 정부가 한강변을 따라 난지도에 둑을 쌓고 78년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하면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박정희 정부는 잠실과 상계동, 구의동 등 소규모 쓰레기매립지였던 곳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자,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서울 외곽이던 난지도에 눈을 돌렸다. 수도권 중심 산업화 정책으로 55년 156만명이던 서울시 인구가 78년 782만명으로 5배 이상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난지도 땅은 서울시에 의해 1평당 6천~8천원에 강제 수용됐고 모로리·귀리 마을 토박이도, 뜨내기도 모두 농토를 잃고 이웃 상암동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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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중반, 쓰레기산이 돼 버린 난지도에서 불도저가 쓰레기 더미를 평평하게 해 다음번 들어올 쓰레기 버릴 자리를 만들고 있다. 월드컵공원 관리사업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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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변화에 따라 난지도의 주인도 농사꾼에서 쓰레기를 줍는 넝마주이로 바뀌었다. 많을 때 950여명에 이른 난지도 넝마주이들은 주민등록 신고도 없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갑자기 모인데다 분리수거 과정에 이권도 적지 않아 이른바 ‘양아치’들이 판을 쳤다.
92년 10월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폐쇄됐다. 꽃과 풀이 많았다던 아름다운 섬은 9200만t의 쓰레기가 쌓인 높이 90m의 밋밋한 산 두 개로 바뀌었다.
서울시는 93년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생태 복원을 시작했다. 2002년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이 문을 열었고, 상암 경기장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서 난지도는 ‘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연의 놀라운 치유력은 쓰레기산에 다시 맹꽁이, 족제비, 황조롱이가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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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모래섬이었던 난지도는 쓰레기산을 거쳐 이제 자연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왼쪽 봉우리는 노을공원, 오른쪽 봉우리는 하늘공원이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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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매립지에서는 아직까지 쓰레기에서 오염된 물과 유독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이를 정화하고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는 쓰레기매립지가 안정돼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는 시기를 2020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곳 토박이들은 난지도의 격변이 별로 달갑지 않은 듯했다. “30년 동안 두 번 천지가 개벽했지. 남들은 주변이 개발되고 공원이 생겨서 좋다고 하지만, 뭐가 좋아졌는지 모르겠어.”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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