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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2 16:50 수정 : 2005.03.22 16:50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어민들이 다음달부터 본격 채취에 들어갈 바지락 양식장을 둘러보고 있다. 주민들이 모두 나서 돌을 들어내고 모래를 뿌려준 덕분에 한때 황폐하던 양식장에는 어린 바지락들이 바글바글 돋아나 어민들의 짭짤한 벌이가 되고 있다.



태안군 파도리 사람들 ‘자율관리어업’

태안반도의 서해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어촌마을인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어촌계에는 이층에 널찍한 강당이 딸린 회관이 있다. 지난 16일 회관 들머리 게시판에는 거의 매주 결혼식장으로 강당을 쓰려는 예약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갈수록 황폐해지는 바다를 떠나 빈 집이 늘어나는 여느 어촌과 다른 모습이었다.

마을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김필문 어촌계장과 총무가 두툼한 각종 일지와 사진첩 등을 한 아름 내온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바다와 어민들을 함께 살려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마구잡이 어업에
양식장 황폐해지고 고기 씨말라
“안되겠다” 주민들 공동체꾸려
시큰둥한 이웃 설득
통발 줄이고 불가사리 수거…
바지락이며 체험개펄이며
몇년새 바다는 많은 걸 선물했다

태안국립해안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파도리는 오염원이 없고 삼면이 다양한 환경의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어촌이었다. 그러나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마구잡이 어업방식은 90년대 말 한계를 드러냈다. 밀식과 과잉채취는 양식장을 망가지게 했고 바다에선 고기의 씨가 말랐다.

위기를 실감한 어민들은 2001년부터 어장의 자율관리에 나섰다. 여기엔 120척의 어선과 390㏊의 바지막·전복·다시마 양식장을 꾸려가는 267명이 자율관리 공동체에 참여했다. 파도리 315 가구 대부분이 공동체에 나선 셈이다.

이들은 먼저 법에는 없지만 스스로 조업규제에 나섰다. 몸길이 15㎝ 이하인 모든 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했고, 주요 낚시어종인 노래미와 우럭에 대해서는 늦가을 알을 배는 한 달 동안 금어기를 두었다.


오랜 관행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고 저항이 이어졌다. 회원들은 참여하지 않는 계원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아예 금어기에 모든 어민이 참가하는 ‘어구 손질의 날’을 정해 운영하기도 했다.

종종 바다에 버려져 작은 물고기까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죽음의 덫’으로 바뀌는 통발의 폐혜를 줄이기 위해 어선당 쓸 수 있는 통발을 300개 이하로 정하고 폐통발 수거를 의무화했다. 통발어선에게는 매달 해적생물인 불가사리를 40㎏ 잡는 목표량이 주어졌다. 이런 규제와 꽃게 자원감소로 통발어선은 60척에서 12척으로 줄어들었다.

파도리의 주 수입원은 바지락이다. 양식장 면적만도 200㏊에 이른다. 한창 때는 주민 대부분과 경운기 130대가 동원돼 양식장에서 캔 바지락을 실어나른다. 지난해 17억원의 소득을 올려 가구당 7백여만원씩 배당금이 돌아갔다. 공동관리를 하기 전인 2000년 바지락 소득은 4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003년 겨울 주민들은 한 달 동안 모두 나서 황폐해진 양식장에서 돌과 폐목재를 걷어냈다. 개펄을 살리기 위해 황토와 모래 가운데 무엇이 좋을지 논란을 벌인 끝에 모래와 종패를 뿌렸다. 어촌계장 김씨는 “첫 해에 모래에 짓눌렸는지 종패가 떼죽음했지만 신기하게도 이듬해부터 수확량이 3배로 뛰어올라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바지락 양식장은 철저히 관리된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쉰다. 4월부터는 매달 두번씩 어촌계 대표들이 모여 채취량과 방법, 작업인원, 단가까지 결정한다. 지난 1일 계원들이 새로 도장 찍은 서약서에는 무려 8가지 규제가 벌금액수와 함께 적혀있다. 방송이 없는 한 양식장에 들어가지 말 것, 양식장 주변에서 개펄을 파헤치며 낙지를 잡지 말 것, 종패가 잡히지 않도록 호미만을 쓸 것…. 이런 약속을 어기면 각각 벌금이 10만원이고 계원에게 지급될 바지락 대금에서 공제한다. 또 이런 위반을 신고하는 주민에게 신고비로 10만원을 지급하고 신고자의 모든 비밀은 보장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조업을 앞 둔 양식장에는 바지락의 숨구멍이 모래펄 위로 숭숭 뚫려 있었다. “야, 조개반 모래반이네!” 양식장 관리인 정부국(56)씨는 “개펄을 넷으로 나눠 나흘마다 채취해 쉬도록 하고 호미로 펄을 갈아엎어 ‘숨을 쉬도록’ 해야 바지락이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 양식장의 바지락은 ‘금어기’이지만 마을 공동의 개펄에서는 주민들이 언제든 바지락을 캘 수 있다. “용돈이나 벌려고 개펄에 나왔다”는 주민 문옥희(65)씨는 “마을 사람들의 ‘단결심’이 세다”고 자랑했다.



바지락 양식장 일부는 체험어장으로도 쓰인다. 안내자의 설명과 안내로 정해진 양의 바지락을 채취할 수 있는 체험어장은 지난해 처음 문을 열었지만 무려 2천여명이 몰려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리잡았다.

주민들이 자유롭게 채취할 수 있는 공동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던 주민 조윤선(63)씨는 “벌어먹을 게 있어 젊은이가 많으니 동네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태안/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 스스로 바다 살리자”

자율관리어업 ‘밀물’
올 303곳…어민 공감 확산

▲ 파도리 주민들은 매달 9일을 ’바다 청소의 날’로 정해 폐 통발 등 쓰레기를 걷는다. 어민들은 어장과 양식장의 실태와 관리를 자세히 기록해 일지와 각종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어민들 스스로 바다자원과 환경을 지켜 소득향상으로 이끌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의 정부 주도 어업관리로는 남획과 과잉투자에 의한 경쟁조업을 막을 수 없고, 결국 자원 고갈과 연근해 어업의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자각에 따른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해양수산부가 2001년 시작한 자율관리어업에 참여하는 공동체 수는 2001년 63곳에서 2003년 122곳, 올해에는 303곳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어민들이 자율관리공동체에 참여하려면 자율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규약을 제정한 뒤 지역 특성에 맞는 어업관리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여 추진하면 된다. 정부는 행정적,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할 뿐 어업인들이 어업자원을 관리할 권한 책임을 가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해마다 자율관리어업 공동체 50~60곳에게 약 100억원(자비 20%) 규모의 지원을 해 오고 있다. 올해에는 300개 공동체 가운데 57곳을 뽑아 총 94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원규모는 최우수 공동체 1곳에 10억원, 우수 2곳에 각 5억원을, 나머지 공동체에는 1억~2억원 규모이다.

▲ 바지락을 캐고 있는 주민들.
자율관리 공동체들은 주로 종묘 방류, 잡은 어린 치어 방류, 어장 휴식년제 시행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또 공동 바다청소, 폐어구 수거사업 등 어장환경개선과 공동 생산과 판매, 적정 생산과 관리로 소득향상을 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 제도가 어업인의 능동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장기적으로 전국의 모든 공동체에 자율관리 어업을 정착시켜 지속가능한 어업생산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자율관리 공동체에 등급을 주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지도자 육성을 위한 전문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본격적인 대책에 나서기로 했다.

김태기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연근해 어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 말고는 길이 없다는 데 공감이 이뤄지고 있다”며 “어촌판 새마을 운동이 되지 않도록 관 주도 아닌 주민참여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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