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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1 17:31 수정 : 2005.01.11 17:31

겨울이 안 춥다고 궁시렁댔더니 그 매서운 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런 날은 그저, 매운맛으로 속을 덥히는 게 최고지. 단단한 무를 골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매운 고춧가루 좌-악 풀어 동태탕을 끓여 먹으면, 콧잔등에 땀이 좌르르 나면서 칼바람에 맹맹했던 코가 ‘훌쩍 훌쩍’, 코끝이 벌렁벌렁 하도록 팽하니 한번 풀고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하면 이번엔 추위로 움츠렸던 어깨가 좌악 펴진다. 아, 여기에 반주로 딱 한잔만 곁들이면 세상 시름이 다 날아가 버린다.

어릴 때 산골짜기 우리 동네에서 먹는 생선은 간 갈치나 겨울철 동태가 전부였다. 얼음처럼 꽝꽝 언 동태 한 마리를 부대종이에 말아서 지푸라기로 묶어 들고 오신 엄마는 닭 잡을 때 쓰는 큰 칼을 내리쳐서 동태를 토막냈다. 저녁 밥상에 동태찌게가 오르면 언니랑 나는 눈알을 서로 먹겠다고 찌게를 뒤집고 소란을 피웠다. 동태 눈을 먹으면 눈이 좋아 진다나, 엄마의 꾸중에도 아랑곳없이 아무 맛없는 동태눈을 먹어야 동태찌개를 먹은 것 같았다. 겨울 동태는 언제나 알이 가득 찼는데, 아빠는 엄마가 따로 떠드린 알을 나눠서 “아이구 동태 백 마리다, 이놈 먹고 건강해라”하며 밥숟갈에 얹어 주셨다.

철물점에 톱날을 바꾸러 가는 남편에게 동태 한 마리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매운 동태찌개가 먹고 싶었다. 동태 눈알도 씹어보고 싶고. 동태 대신 생태 두 마리를 사온 남편이 하는 말 “여보 이 생태가 일본산이래, 일본산. 아니 어물전에 생선들이 왜 그래? 꽁치도 일본산, 생태도 일본산, 홍어는 칠레산, 조기는 중국산,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뭐가 나와?” “우리 바다에선 쌀이 나오지 새만금 막아서 쌀농사 짓는다잖아.”

서로 바라보고 씁쓸히 웃다가 둘 다 하는 말 “밥이나 먹자.” 그래도 바다를 지척에 둔 섬에 사는데 어째 수입 생선을 먹으려니 참 이상하다. 다음엔 아직도 강화 갯벌에서 잡힌다는 망둥어나 먹을까? 내게 생태를 건네준 남편이 이건 진짜 국산이라며 내일은 무 넣고 졸여 달라며 도루묵 한 봉지를 냉장고에 넣는다. ‘아니 이런, 저 아저씨 생선은 일주일에 한번만 먹기로 했는데….’

일본산 생태와 아무래도 중국산 같아 뵈는 미더덕으로 한·중·일 합작 생태찌게를 끓였다. 에잇, 그래도 매운맛은 확실히 보여 주겠다. 마늘도 듬뿍 넣고 청량고추 두개를 송송 썰어 알싸한 맛을 내고, 양파에 미나리에 고춧가루 확 풀어서 이 연합찌게를 확실한 한국 맛으로 바꾸어 버렸다.

“으흐 시원하다.” 뜨겁고 매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속을 확 풀어 준다. 그런데 어릴 때 먹던 동태보다 훨씬 싱싱하고 살도 보드라운 생태탕인데 그 맛이 없다. 그만큼 귀하지 않아서인지 동해안 명태가 아니라서 그런지 나도 잘 모르겠다. 글 오진희/동화작가, 삽화 신영식/환경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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