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 지역 인공조림지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 아래 쪽으로 보이는 불 탄 나무가지들이 10년 전의 참화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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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림보다 자연복원적 ‘건강’
하지만 맨살 드러낸 불모지 여전
10년이 더 흘러야 숲으로 성장 1996년 4월23일 낮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군부대 사격장에 발생한 산불은 25일까지 사흘간 1개 읍 2개 면 16개 마을의 산림 3762㏊를 휩쓸며 큰 피해를 남겼다. 당시까지 공식 집계된 산불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이 ‘고성산불’로 불탄 산림면적은 최근의 ‘양양산불’ 피해면적의 15배가 넘었다. 지난주 찾아간 고성군 죽왕면 구성·인정리 일대의 야산과 구릉에서는 고성산불의 잔불이 사그라든지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옛 참화의 상흔들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풀과 새 잎이 돋아나기 전이어서 황량한 느낌은 더했다. 2000년 봄 또다시 화마에 휩싸였던 산등성이 가운데는 맨살을 드러낸 채 흙먼지를 날려보내고 있는 곳이 많았다. 밑동만 일부 그을려 군데군데 껍질이 떨어져 나간채 살아남은 산 아래 쪽 소나무들은 아직도 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투명한 송진액을 밀어내고 있었다. 산불 이듬해 서둘러 조림한 송지호 주변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의 소나무들은 아직 높이가 평균 3m를 넘지 않았다. 1.6m 남짓한 묘목으로 심은 자작나무들도 이제 겨우 평균 3.6m 정도의 높이로 자랐을 뿐이다. 그래도 봄을 맞은 산 등성이에서는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제법 연한 빛을 띄어가는 소나무의 푸른 잎과 연분홍 진달래꽃을 통해서 전해졌다. 진달래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어느 골짜기 어느 산등성이든 마치 일부러 심어놓기라도 한 듯 골고루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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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임주훈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복원연구실 박사는 “진달래는 척박한 땅에서 잘자랄 뿐 아니라 다른 어느 나무보다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며 “산불로 잿더미가 된 검은 숲에서 생명이 살아있음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연분홍빛 진달래와 앞다퉈 솟아나는 고사리들”이라고 말했다. 죽왕면 인정리와 구성리 지역 국유림 두 곳에 마련된 100㏊ 규모의 산림청 영구조사지에서는 인간이 손을 대지 않고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자연복원 실험이 10년째 진행중이다. 자연복원지와 조림이 이뤄진 인공복원지를 돌아본 바로는 자연복원이 인공복원에 비해 훨씬 다양한 식생과 빠른 복원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복원연구실의 모니터링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지난해 자연복원지와 인공조림지에서 각 1㎡를 덮고 있는 교목을 뺀 식물의 무게를 조사한 것을 보면 자연복원지가 2235g으로 인공조림지의 1440g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는 불에 탄 참나무류에서 나오는 움싹들이 조림목에 비해 밀도가 높고, 초기 생장속도도 빠르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비교적 토양이 비옥하고 수분이 많은 영구조사지 계곡 아래 쪽에는 이렇게 움싹으로 자란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이 지난 번 산불에서 타버린 줄기를 에워싼 채 8m 이상의 높이로 비쭉비쭉 솟아 있었다. 그밖에 떡갈나무, 싸리나무류, 물오리나무, 쇠물푸레, 아까시나무, 물박달나무, 생강나무 등이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5, 6월에 접어들어 새 잎만 나오면 제법 빽빽한 숲의 모습을 갖출 듯 싶었다. 이처럼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마련돼서인지 계곡 아래 개울가의 젖은 모래바닥에는 고라니와 멧돼지의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발자국들도 눈에 띄었다. 양 옆으로 억새가 잔뜩 우거져 있는 소로에서는 오소리의 것으로 보이는 야생동물의 똥이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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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연복원지는 가운데서도 토양이 건조하고 척박한 정상부의 서쪽 사면과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부 지역은 표토가 그대로 드러나고 식생도 빈약해 불모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임 박사는 “산불지역을 복구하는 데 있어서 자연복원과 인공복원 가운데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복구할 지역의 여건을 고려해 두 가지를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산불 전에 소나무 숲이었던 자연복원지에서 소나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참나무류와 같은 활엽수에 비해 산불의 화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지표면을 훑고 지나가는 산불에 밑동의 한쪽 면만 불에 타는 피해를 입어 첫 해에는 살아있던 소나무들도 2년차에 40%, 3년차에 66%까지 고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역에 소나무가 다시 나타나기 위해서는 땅속에 파묻혀서 살아남은 솔씨가 발아하거나, 산불 피해를 입지 않는 주변의 다른 소나무들에서 우연히 씨앗이 흘러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반면 참나무류 등은 설사 줄기가 모두 불에 타버리더라도 아래쪽 그루터기는 물론 뿌리에서까지 활발하게 움싹을 내어 소나무가 사라진 지역을 장악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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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숙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는 “숲이 산불 나기 전의 생태계 수준으로 복원되는데는 애초의 숲이 만들어지는 데 걸린 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키가 8m가 넘는 나무들이 60, 70%를 넘을 경우 숲으로 보는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96년 고성산불지역은 10년 정도 더 있으면 숲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임주훈 산림과학원 박사 환경따라 숲복원형태 다를 것
해안지대 참나무림 일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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