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9 16:34
수정 : 2005.04.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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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상류의 한 계곡 주변에 중장비와 빈 윤활유통 등 수질오염 우려가 높은 폐기물들이 어지럽게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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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잣대’ 싸움 왕피천이 멍든다
전국에서 가장 맑은 하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울진 왕피천이 점차 오염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으나 보전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왕피천과 그 유역에 대한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이 환경부와 산림청의 이견으로 2년째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계·야생동물 동선 고려
환경부 “1만8000㏊ 지정율”
하천주변·동물 출몰지역
산림청 “3000㏊” 면 충분
녹색연합 “동강꼴 되풀이 해서야”
생태축 절단 도로개설 공사도
주민 생태보호 노력에 흙탕물
환경부가 2003년부터 추진한 왕피천 유역의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에는 이례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도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개발이 제한되고 각종 규제가 따르는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에 지자체와 주민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청정지역 이미지를 지역의 상표로 삼으려는 생각과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생태계보전지역에 포함될 지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국유림을 관리하는 산림청의 비협조가 문제였다.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국유림에 대한 관리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용관 산림청 산지정책과 담당 서기관은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환경부가 잡은 면적 1만8000㏊는 과도하다”며 “휴양림과 주요 국유림 지역은 빼고 하천 주변과 산양 등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 중심으로 3000㏊ 정도만 지정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생태계 보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기 위해서는 왕피천으로 물이 흘러드는 수계와 야생동물의 활동반경을 감안해 넓은 면적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회석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산림청은 수달이나 산양이 발견된 지점 위주로 보호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들이 이동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산림경영차원의 국유림 관리와 생태계 보전은 접근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왕피천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둘러싼 환경부와 산림청의 공방은 결국 국무조정실의 조정에 의해 결론이 날 전망이다. 지난 2001년 왕피천 유역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생태조사를 벌여 왕피천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녹색연합은 이 공방에서 환경부쪽을 거들고 있다.
녹색연합은 “산림청이 ‘국유림은 산림청이 관리해도 충분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왕피천의 핵심 생태축을 절단하는 불필요한 도로개설을 허용하고, 무분별한 임도공사로 산사태를 일으키고, 폐광을 방치해 왕피천을 멍들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산림청의 반대 때문에 유역 전체를 보전지역으로 지정하지 못하고 하천 주변만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영월 동강의 사례가 왕피천에서 되풀이돼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이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왕피천은 갈수록 오염의 위협 앞에 노출되고 있다. 가장 큰 위협은 왕피천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이 점차 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왕피천 중류 지역인 울진군 서면 왕피리 마을로 들어가는 유일한 도로인 서면 삼근리에서 박달재를 넘어가는 비포장도로는 점차 포장이 진행중이다. 아직은 일반 승용차들은 지나다니기 어렵지만 얼마 안가 이들도 손쉽게 왕피천 생태계의 핵심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왕피리의 12개 자연마을에는 생태농업을 통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생활공동체인 한농복구회 회원 660여가구 15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왕피천의 오염을 막기 위해 자갈과 모래, 숯, 미나리밭 등을 이용한 자연정화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오염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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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피천 상류인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지역 장수포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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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애 녹색연합 간사는 “2001년과 2004년에 녹색연합이 왕피리에서 청년생태학교를 열었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물의 수질이 3년 사이에 나빠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왕피천은 중하류의 인적이 없는 곳을 흘러내리면서 자연정화가 이뤄져 하류에서는 1급수의 수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왕피리로 진입하는 도로가 모두 포장돼 승용차의 진입이 쉬워질 경우 왕피천의 자연정화능력을 초과하는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북도청이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에서 수비면 오산마을까지 왕피천 상류인 장수포천변을 따라 개설 예정인 도로도 잠재적 위협 요소다. 이 도로가 개설될 경우 차량과 사람들이 왕피천 최상류 깊숙한 곳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 도로는 건설교통부가 왕피리 속사마을을 댐건설 후보지로 발표하면서 현재 4.2㎞ 구간 가운데 1.3㎞ 구간을 남겨 놓고 중단된 상태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속사댐 건설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은 내년 6월께 내려질 것으로 안다”며 “댐이 지어지지 않는 것으로 결론나면 공사가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왕피천이 자정능력을 넘는 오염원에 노출될 것에 대비해 왕피천의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보전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이신애 녹색연합 간사는 “왕피천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왕피리 주민들의 생태적인 삶을 격려하고 구체적으로 높은 기준의 배출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오폐수 처리시설 설치 등을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도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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