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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6 17:17 수정 : 2005.04.26 17:17

국내 가로수를 대표하는 충북 청주 가로수 터널을 차량들이 25일 줄지어 달리고 있다. 청주시는 새 행정중심 도시 건설과 연계해 현재의 왕복 4차로를 오는 2008년까지 중앙분리대에 자전거 길 등 휴식공간을 갖춘 50m 너비의 8차선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청주/김경호 기자



연봉 6000원에도 아낌없이 주는 너

하루 4명 마시는 산소량
한그루가 선물하고
가로수 길 온도 2.6∼6.8도 낮고
습도 또한 무려 9∼23% 높아

늘 곁에 있어 고마움 몰랐던 거야
산림청·시민·자치단체 보답나서

‘가로수가 당당하면 사람도 건강합니다.’

지난 18일 대전정부청사 동쪽 길 가로수들은 훤칠한 키에 연분홍꽃이 화사한 왕벚나무 50여 그루를 새 식구로 맞았다.

이 왕벚나무들은 가로수의 날(4월 20일)을 맞아 산림청이 연 ‘가로수 생육환경개선 시범사업’ 행사에 참석한 정부청사 공무원 등 300여명이 심은 것이다.

가로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지나는 이 누구하나 쳐다보지 않는다. 이른 봄이면 몸통 하나에 짧은 가지 두어개 정도만을 남기는 초라한 모습으로 단장된다. 가로수가 고마울 때를 굳이 찾는다면 깊은 밤 만취해 속 비울 때나 용변이 급할 때 해우소 역할 정도일 터이다.

도로변 가게 주인들은 간판가린다고 불평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가로수에서 ‘번지점프’한 송충이에 놀란 기억 때문에 오히려 미움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로수 1그루의 가치를 안다면 ‘미움과 눈총’은 ‘고마움’으로 금세 달라진다. 가로수가 있는 도로는 평균 2.6~6.8℃ 낮은 온도를 나타낸다. 습도 또한 평균 9~23%가 높다. 가로수 한그루는 15평형 에어컨 7대를 10시간동안 가동하고 하루 4명이 마실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한다.



가로수의 역사는 약 140년전인 조선 고종 2년(1866년) ‘도로 양 옆에 나무를 심으라’는 왕명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긴 역사에 비해 ‘대우’는 보잘 것이 없다. 정부의 가로수 관리 예산을 국내 가로수 전체 개체수로 나눠 추산한 그루당 관리비인 ‘연봉’은 고작 6000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로수 길은 2만7675㎞에 달한다. 서울~부산을 32번 왕복한 거리다.

산림청의 생육환경개선 사업은 가로수를 당당하게 기르는 사업이다.

많은 도시 가로수는 차량 배기가스 속에서 좁고 병든 흙에 뿌리박고 자라는 등 생육 여건이 좋지 않다. 또 낙엽이 일찍 지고 기형, 고사 증세를 앓는 등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은 전국의 가로수 살리기에 나선다. 도심 가로수 길 가운데 배수가 안돼 땅이 썩는 곳, 영양함량이 낮은 척박한 알칼리성 흙이 주된 대상이다. 이런 곳은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거나 죽게된다.

▲ 지난 18일 열린 대전정부청사 가로수 생육환경개선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이 맹암거와 유공관을 설치하고 영양많은 흙 등으로 토양 체질을 바꾼 가로수 식재 시범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산림청은 이런 곳에 유공관과 우수관, 맹암거를 설치해 배수 체계를 바꾼다. 영양분이 많은 흙과 복합비료를 써서 땅 성질을 개선하게 된다.

또 기후 특성에 맞춰 지역 별로 소나무와 왕벚나무 등 상록교목과 낙엽교목 및 상록· 낙엽관목 등 83종 12만4천여 그루를 새로 심을 계획이다. 이렇게 가꾼 가로수는 도심의 ‘녹색댐’ 구실 뿐 만 아니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 벚나무처럼 관광 상품으로서 가치 또한 높다.

가로수 가꾸기에 나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환경단체들도 크게 늘었다.

서울 청계천의 사과나무 심기, 아름다운 여수21의 ‘100만그루 나무심기’, 푸른광주가꾸기시민운동본부의 천만그루 나무심기, 부안 석정로 마로니에거리 꾸미기, 산청군의 자투리땅 나무심기, 부산 광복로 시범가로 추진, 경기녹지재단과 대구시의 도심숲가꾸기, 고흥군의 사계절 꽃거리 조성사업 등 곳곳에 걸쳐있다.

이수화 산림청 차장은 “생육환경개선을 한 가로수는 가지와 잎, 엽록소 함량, 활력소 등 모든 면에서 일반 가로수보다 평균 1.5배의 생육 증대 효과가 나타났다”며 “당당해진 가로수는 가진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돌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청주의 자랑 ‘가로수 길’



충북 청주 가로수 길은 지역의 상징이자 자랑이다. 청주를 찾은 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정도다.

경부고속도로 청주 나들목부터 흥덕구 복대동 죽천교까지 4.53㎞의 가로수 길에는 왕복 4차로에 60~70년된 플라타너스 1천여그루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다른 맛을 낸다. 1982년 영화 <만추>, 94년 드라마 <모래시계> 등을 타면서 전국의 명소로 자리 굳혔다. 2001년 열린 제2회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에서는 거리 숲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1952년 녹화계획으로 심었으나 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한때 뽑혀 나갈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청주의 상징이요, 도시 환경 오염 정화제 역할을 한다”고 맞서 오늘까지 이어졌다.

2002년부터는 5천여만원을 들여 뿌리 수술을 했다. 또 10여차례에 걸쳐 방패 나비, 흰불 나방 방제 등 생명 연장에 공들이고 있다. 특히 주변에 조성된 오송·오창 산업단지와 10여㎞ 밖 연기·공주에 들어 설 새 행정중심 도시 건설과 연계해 8차로의 쌍터널로 변신할 계획이다.

시는 2008년까지 507억여원을 들여 왕복 4차로(22m)를 8차로(50m)로 늘릴 계획이다.

3m폭인 지금의 중앙분리대를 11m정도로 늘려 사진촬영, 휴식과 자전거 타기 등 놀이가 가능한 긴 가로수 공원이 들어선다. 중앙분리대 옆은 시속 20~30㎞의 저속 차로를 만들어 차안에서 가로수 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저속차로 양쪽 바깥으로는 3차로씩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고 길 양옆에는 2.25m폭의 걷는 길을 둔다.

시는 이곳에서 자전거·인라인 스케이트·마라톤 대회와 민속·문화 행사 등을 수시로 열 계획이다.

반기민 충북 생명의 숲 국장은 “가로수길은 운전자, 시민들에게 안정을 주는 심리적 효과와 자동차 매연을 정화하는 환경적 효과까지 지니고 있는 생명의 보고”라며 “가로수를 다치지 않고 청주의 명물을 보존하는데 힘을 쏟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국립산림과학원 변재경 실장

땅에 맞는 나무·나무에 맞는 땅
장기적 지역별 체계적 관리해야

가로수 생육환경개선사업 실무책임자인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변재경(51) 산림토양분석실장은 25일 “가로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식재와 가지치기, 병충해 방제 등 현 수준에서 벗어나 나무의 영양상태와 토양환경 등을 조사해야 가로수를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심기에 앞서 흙을 분석해 토양 체질을 바꾸고 가장 잘 자랄만한 나무를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생육환경개선사업은 응급 조처로서 가로수에게 ‘사후약방문’격이 될 수도 있다.

토양비료 전문가인 그가 가로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서해안공단과 새 도시에 심은 가로수가 자주 말라죽는 원인을 찾는 업무가 맡겨진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로수를 조경이나 관상용 정도로 여기다 보니 토양성분에 관심을 두지 않아 빚어진 일이었다. 죽어가는 나무들은 약산성(pH 5.5~6.5) 땅 대신 ‘오염되고, 척박하고, 흙이 너무 다져진’ 알칼리성(pH 7.5) 땅에 심어져있었다. 흙을 바꾸고 배수시설을 갖추자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지난해 과천정부청사 주변 가로수가 되살아난 것도 그의 맞춤식 처방에 따른 것이다.

그는 “가로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 내용처럼 도시민에게 끝없는 혜택을 주는 소중한 자원”이라며 가로수 관리 체계를 제시했다. 다름아닌 △토양조사팀을 운영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부족한 인력보충과 분석 장비 구비 △정기적인 지역별 가로수 모니터링제 실시 등이다.

그는 “최근들어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로수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져 다행”이라며 “전국의 가로수길을 청주 진입로의 플라타너스길이나 서울 압구정동의 회나무 가로수길처럼 가꾸는게 꿈”이라고 밝혔다.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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