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을 소개합니다” 고라니 너구리 토끼 꾸벅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성남시 분당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숲 속에서 삵이나 고라니,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에게 숲은 더욱 살아 있는 소중한 자연으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하물며 그것이 그냥 상상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면…? 분당 새도시 고층아파트 사이로
족제비 도룡뇽에 황조롱이까지
회색도시 초록 터줏대감들 보호
친환경 개발위해 3년작업 결과물
“생태도시 로드맵 주민참여 기대” 성남시가 최근 펴낸 <생태지도 성남>은 이런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고 일러준다. 64쪽짜리 지도책 형태로 된 <생태지도 성남>을 들여다 보면 분당 신도시 이매역에서 동쪽으로 채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에 족제비와 멧토끼는 물론 너구리, 고라니까지 출현한다. 그 아래쪽 저지대에는 산개구리와 청개구리, 두꺼비, 도롱뇽들이 산다. 구 시가지쪽을 들여다 봐도 ‘자연’은 의외로 사람들 가까이까지 와있다. 검단산 자락에 사는 고라니가 금광동의 주택가 근처까지 내려오는가 하면, 상대원동 공단 지역까지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가 날아오기도 한다. 검고 흰 깃에 빨간 머리를 한 오색딱따구리는 성남에서 아파트촌을 조금만 벗어나면 주변 야산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생태지도 성남>은 성남시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4억여원을 들여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와 ㈜이장에 의뢰해 만든 도시생태현황도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비오톱(Biotop) 지도라고도 불리는 도시생태현황도를 만든 것은 국내에서는 서울시에 이어 성남시가 두번째다. 하지만 생태현황도를 구성하는 주제도에 이처럼 야생동물 서식현황까지 넣은 것은 성남시가 처음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분당 신도시의 율동공원 동쪽 산자락을 찾았다. <생태지도 성남>에 고라니, 너구리, 멧토끼 등이 나타나는 곳으로 표시된 지역이었다. 분당저수지쪽을 향해 뻗어내린 작은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는 곳곳에 억새가 우거지고 물웅덩이가 있어 야생동물이 깃들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야생동물들의 모습이나, 이들이 서식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능선 사이 여기저기 만들어진 채소밭들에 모두 1m 남짓한 높이로 그물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물 울타리 안 채소밭에서 퇴비를 뿌리고 있던 주민에게 까닭을 물었다. 강원도 산골의 농민한테서나 들을 법한 푸념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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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면 고라니만 좋은 일 시키고, 남아나는 것이 없어요. 어떤 놈들은 이렇게 담을 쳤는데도 넘어 들어와 채소 싹을 모조리 잘라먹는다니까요.” 서울시청 공무원을 퇴직하고 소일거리로 밭에 나오기 시작한 지 4년째라는 조동준(68·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씨는 “고라니, 멧돼지 같은 놈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꿩과 까치 같은 놈들은 아예 심어 놓은 씨까지 파내 먹어 이제는 밭 위에 그물을 씌우려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라니 서식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증언이었다. 서현동 국군통합병원 아래 쪽에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는 습지로 내려설 때는 풀 숲에서 장지뱀 한마리가 서둘러 꼬리를 감추었다. 부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웅덩이들은 크고 작은 올챙이들의 세상이었다. 탄천과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 분당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 길이 40㎝쯤 돼 보이는 잉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란 듯 아래쪽으로 달아났고, 잉어가 내려간 서현교 바로 위 물가에는 쇠백로 한마리가 꼼짝도 않고 서서 물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구 시가지 상대원동에 있는 화성사 왼쪽을 돌아 100여m 쯤 올라간 산자락에서도 채소밭 곳곳에 둘러 쳐진 그물 울타리들이 야생동물의 출몰을 증언하고 있었다. 성남시 도시생태현황도 작성 용역을 총괄한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구체적인 생태정보가 주어진다면 일상에 바쁜 시민들도 자기 집 옆에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점점 흥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태지도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생태도시를 향한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대화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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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정병준 분당환경시민의모임 운영위원장은 “생태현황도 작업이 주민과 환경단체를 참여시키지 않고 전문가들만의 작업으로 이뤄져 아쉽다”면서도 “주민을 참여시켜 보완해 나가고, 성남시의 생태환경이 처해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보호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런 지적에 백운엽 성남시청 환경보호팀장은 “생태지도를 만든 목적이 바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의 훼손을 막을 근거를 마련하고, 개발하더라도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비껴가게 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시민들이 관찰한 내용들을 전달 받아 생태지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주민이 고치고 발전시켜야” ‘생태지도’ 책임 이응경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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