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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3 18:12 수정 : 2005.05.03 18:12



“우리 이웃을 소개합니다” 고라니 너구리 토끼 꾸벅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성남시 분당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숲 속에서 삵이나 고라니,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에게 숲은 더욱 살아 있는 소중한 자연으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하물며 그것이 그냥 상상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면…?

분당 새도시 고층아파트 사이로
족제비 도룡뇽에 황조롱이까지
회색도시 초록 터줏대감들 보호
친환경 개발위해 3년작업 결과물
“생태도시 로드맵 주민참여 기대”

성남시가 최근 펴낸 <생태지도 성남>은 이런 상황이 실제 상황이라고 일러준다. 64쪽짜리 지도책 형태로 된 <생태지도 성남>을 들여다 보면 분당 신도시 이매역에서 동쪽으로 채 500m도 떨어지지 않은 산자락에 족제비와 멧토끼는 물론 너구리, 고라니까지 출현한다. 그 아래쪽 저지대에는 산개구리와 청개구리, 두꺼비, 도롱뇽들이 산다.

구 시가지쪽을 들여다 봐도 ‘자연’은 의외로 사람들 가까이까지 와있다. 검단산 자락에 사는 고라니가 금광동의 주택가 근처까지 내려오는가 하면, 상대원동 공단 지역까지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가 날아오기도 한다. 검고 흰 깃에 빨간 머리를 한 오색딱따구리는 성남에서 아파트촌을 조금만 벗어나면 주변 야산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생태지도 성남>은 성남시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4억여원을 들여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와 ㈜이장에 의뢰해 만든 도시생태현황도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비오톱(Biotop) 지도라고도 불리는 도시생태현황도를 만든 것은 국내에서는 서울시에 이어 성남시가 두번째다. 하지만 생태현황도를 구성하는 주제도에 이처럼 야생동물 서식현황까지 넣은 것은 성남시가 처음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분당 신도시의 율동공원 동쪽 산자락을 찾았다. <생태지도 성남>에 고라니, 너구리, 멧토끼 등이 나타나는 곳으로 표시된 지역이었다. 분당저수지쪽을 향해 뻗어내린 작은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는 곳곳에 억새가 우거지고 물웅덩이가 있어 야생동물이 깃들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야생동물들의 모습이나, 이들이 서식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능선 사이 여기저기 만들어진 채소밭들에 모두 1m 남짓한 높이로 그물 울타리가 둘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물 울타리 안 채소밭에서 퇴비를 뿌리고 있던 주민에게 까닭을 물었다. 강원도 산골의 농민한테서나 들을 법한 푸념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 서현교 위 탄천과 분당천의 합류지점. 쇠백로 한 마리가 물가에 서서 분당천에서 내려온 잉어 한 마리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냥 두면 고라니만 좋은 일 시키고, 남아나는 것이 없어요. 어떤 놈들은 이렇게 담을 쳤는데도 넘어 들어와 채소 싹을 모조리 잘라먹는다니까요.” 서울시청 공무원을 퇴직하고 소일거리로 밭에 나오기 시작한 지 4년째라는 조동준(68·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씨는 “고라니, 멧돼지 같은 놈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꿩과 까치 같은 놈들은 아예 심어 놓은 씨까지 파내 먹어 이제는 밭 위에 그물을 씌우려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라니 서식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증언이었다.

서현동 국군통합병원 아래 쪽에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는 습지로 내려설 때는 풀 숲에서 장지뱀 한마리가 서둘러 꼬리를 감추었다. 부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웅덩이들은 크고 작은 올챙이들의 세상이었다. 탄천과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 분당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 길이 40㎝쯤 돼 보이는 잉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란 듯 아래쪽으로 달아났고, 잉어가 내려간 서현교 바로 위 물가에는 쇠백로 한마리가 꼼짝도 않고 서서 물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구 시가지 상대원동에 있는 화성사 왼쪽을 돌아 100여m 쯤 올라간 산자락에서도 채소밭 곳곳에 둘러 쳐진 그물 울타리들이 야생동물의 출몰을 증언하고 있었다.

성남시 도시생태현황도 작성 용역을 총괄한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구체적인 생태정보가 주어진다면 일상에 바쁜 시민들도 자기 집 옆에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점점 흥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태지도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생태도시를 향한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대화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정병준 분당환경시민의모임 운영위원장은 “생태현황도 작업이 주민과 환경단체를 참여시키지 않고 전문가들만의 작업으로 이뤄져 아쉽다”면서도 “주민을 참여시켜 보완해 나가고, 성남시의 생태환경이 처해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보호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런 지적에 백운엽 성남시청 환경보호팀장은 “생태지도를 만든 목적이 바로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의 훼손을 막을 근거를 마련하고, 개발하더라도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비껴가게 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시민들이 관찰한 내용들을 전달 받아 생태지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주민이 고치고 발전시켜야”

‘생태지도’ 책임 이응경 소장

“생태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와 행정, 주민과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이뤄져야 하는데, 생태지도가 이런 의사소통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성남시 도시생태현황도 작성작업의 진행 책임을 맡았던 이응경 ㈜이장 부설연구소 소장은 생태지도에 대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화의 장을 제공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생태지도는 한 번 만드는 것보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전문가들이 참여해 고치고 발전시켜나가는 이후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전문가는 종합적인 해석과 평가에 집중하고, 생태지도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자료의 수집은 주민이 맡는 것이 좋다”며 주민 참여를 강조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료구축 과정에 참여할수록 자료의 신뢰성과 활용도가 높아지고, 중요한 생태적 자산에 대한 인식이 공유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남시 도시생태현황도 작성작업은 토지 이용과 토지피복을 중심으로 인간활동을, 현장 기초자료와 환경모형을 통해서 물질환경을 먼저 각각 도면화했다. 이런 자료의 기반 위에서 식물·식생을 도면화한 다음 동물상 조사를 통해 서식처 분석을 수행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서울시가 2000년에 만든 도시생태현황도가 토지이용현황도, 현존식생도, 비오톱유형도 등 모두 6개의 주제도로 이뤄진데 비해, 성남시의 도시생태현황도는 이런 과정에서 빛, 물, 바람 등 3개 환경 주제도와 포유류, 양서·파충류, 조류, 어류, 곤충 5개 주제의 동물서식지도가 추가돼 모두 14개의 주제도를 갖게 됐다.

그는 “물을 비롯한 일부 주제도를 토양습윤도, 수문특성도, 유출특성도 등 소주제도로 세분한 것까지 감안하면 전체 주제도는 30개가 넘지만, 70개가 넘는 주제도로 구성된 독일 베를린의 도시생태현황도 등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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