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열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에 많은 참가자들이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된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
흙이 돌아왔다 자연이 돌아왔다 만물이 돌아온다 중장비로 깨트려 놓은 시멘트 포장 조각 틈으로 곡괭이 날이 들어갔다. 힘을 써서 들어 올리자 흙이 속살을 드러낸다. 10여년 동안 시멘트 포장의 감옥에 갇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흙이다. 푸석해 보인다. 그 위로 눈부신 5월의 햇살이 쏟아진다. 코 끝을 싸하게 하는 전나무숲 향기를 실은 바람이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지난 7일 오전 10시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바로 뒤 편 전나무숲길. 월정사가 사람에게 빼앗긴 자연의 권리를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는 오대산과 월정사를 동물과 나무와 풀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월정사 스님들의 약속 실현에 대한 의지를 내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해 월정사가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 지방도 겸 공원도로 비포장구간 7.4㎞의 포장을 거부한 것은 바로 오대산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이었던 까닭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02년부터 추진한 이 사업은 월정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6월 사업비를 국고에 반납하면서 취소됐다.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월정사 주지 정념(49) 스님에게 이날의 감회를 물었다. “포장도로는 주변의 생태적 흐름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도로 주변 전나무 상당수가 고사돼 가는 것은 그 탓입니다. 참 생명이 숨 쉴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생명관을 다시 돌이켜 보고, 오대산 천년 숲길을 잘 가꿔 나가야겠다는 원력이 다져지는 것 같습니다.”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에는 생명이 뿌리 내릴 수 없고, 그 아래 흙에서는 생명이 숨 쉴 수 없다. 따라서 포장을 벗겨내는 것은 숱한 생명의 원천인 흙을 살리는 일이다.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다니는 사람에게는 편리함의 희생이라는 댓가를 요구한다. 그처럼 불편을 자초하는 일을 벌이는 스님들과 그 현장에 동참한 신도, 관광객, 인근 주민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이날 열린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에 참석하러 전나무숲길을 찾은 월정사 인근 진부중학교 3학년 최선희(15)군은 숲길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가리키며 “저것들이 흙길 위에서 썩으면 다 거름인데 포장도로 위에 있으니까 쓰레기가 됩니다. 포장도로를 흙길로 바꾸는 일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어린 학생 답지 않게 말했다. 월정사는 이날 작업을 시작으로 우선 일주문에서 절 바로 앞 천왕문까지 약 1㎞에 이르는 전나무숲길을 덮고 있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을 모두 벗겨낼 계획이다. 그리고 벗겨낸 흙길을 그대로 내버려 둬 자연스레 물길이 잡히도록 한 뒤, 그 물길을 감안해 가장 생태적인 숲길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월정사는 이런 작업을 더욱 확대해 앞으로 일주문 안쪽의 도로는 물론 주차장 등 대지를 덮고 있는 모든 포장을 벗겨내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 도로 초입의 포장구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념 스님의 생각이다. 이런 계획에 걸림돌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와 국립공원 관리당국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부도밭 사이의 기존 포장구간 철거구상은 특히 그렇다. 강원도는 아직 이 구간 도로관리권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비포장 구간 포장사업은 포기했지만, 비포장 구간에서 발생하는 흙먼지와 흙탕물이 주변 식생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견해까지 바꾼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 주변의 젊은 주민들이 월정사쪽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월정사쪽에는 큰 힘이다. 이날 숲길 걷기대회에서 회원들과 함께 교통통제 자원봉사를 한 진부면 청송청년회 황봉구(35·진부면 하진부리) 부회장은 “상원사까지의 포장공사가 취소됐고, 앞으로도 포장을 안 할 것이라면 초입의 일부 포장구간도 걷어내 흙길로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대산/글 김정수 jsk21@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자연 그리고 사람 하나되자는 뜻”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