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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17:04 수정 : 2005.05.10 17:04

지난 7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열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에 많은 참가자들이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된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흙이 돌아왔다

자연이 돌아왔다

만물이 돌아온다

중장비로 깨트려 놓은 시멘트 포장 조각 틈으로 곡괭이 날이 들어갔다. 힘을 써서 들어 올리자 흙이 속살을 드러낸다. 10여년 동안 시멘트 포장의 감옥에 갇혀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흙이다. 푸석해 보인다. 그 위로 눈부신 5월의 햇살이 쏟아진다. 코 끝을 싸하게 하는 전나무숲 향기를 실은 바람이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지난 7일 오전 10시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바로 뒤 편 전나무숲길. 월정사가 사람에게 빼앗긴 자연의 권리를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는 오대산과 월정사를 동물과 나무와 풀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월정사 스님들의 약속 실현에 대한 의지를 내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해 월정사가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 지방도 겸 공원도로 비포장구간 7.4㎞의 포장을 거부한 것은 바로 오대산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이었던 까닭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02년부터 추진한 이 사업은 월정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 공원관리공단이 지난해 6월 사업비를 국고에 반납하면서 취소됐다.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월정사 주지 정념(49) 스님에게 이날의 감회를 물었다. “포장도로는 주변의 생태적 흐름에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도로 주변 전나무 상당수가 고사돼 가는 것은 그 탓입니다. 참 생명이 숨 쉴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생명관을 다시 돌이켜 보고, 오대산 천년 숲길을 잘 가꿔 나가야겠다는 원력이 다져지는 것 같습니다.”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에는 생명이 뿌리 내릴 수 없고, 그 아래 흙에서는 생명이 숨 쉴 수 없다. 따라서 포장을 벗겨내는 것은 숱한 생명의 원천인 흙을 살리는 일이다.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다니는 사람에게는 편리함의 희생이라는 댓가를 요구한다. 그처럼 불편을 자초하는 일을 벌이는 스님들과 그 현장에 동참한 신도, 관광객, 인근 주민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이날 열린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에 참석하러 전나무숲길을 찾은 월정사 인근 진부중학교 3학년 최선희(15)군은 숲길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가리키며 “저것들이 흙길 위에서 썩으면 다 거름인데 포장도로 위에 있으니까 쓰레기가 됩니다. 포장도로를 흙길로 바꾸는 일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어린 학생 답지 않게 말했다.

월정사는 이날 작업을 시작으로 우선 일주문에서 절 바로 앞 천왕문까지 약 1㎞에 이르는 전나무숲길을 덮고 있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을 모두 벗겨낼 계획이다. 그리고 벗겨낸 흙길을 그대로 내버려 둬 자연스레 물길이 잡히도록 한 뒤, 그 물길을 감안해 가장 생태적인 숲길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천년의 숲길 걷기에 앞서 월정사 일주문 뒤 전나무숲길에서 스님들과 신도 지역주민들이 숲길을 덮고 있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월정사는 이런 작업을 더욱 확대해 앞으로 일주문 안쪽의 도로는 물론 주차장 등 대지를 덮고 있는 모든 포장을 벗겨내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 도로 초입의 포장구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념 스님의 생각이다.

이런 계획에 걸림돌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와 국립공원 관리당국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부도밭 사이의 기존 포장구간 철거구상은 특히 그렇다. 강원도는 아직 이 구간 도로관리권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비포장 구간 포장사업은 포기했지만, 비포장 구간에서 발생하는 흙먼지와 흙탕물이 주변 식생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견해까지 바꾼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 주변의 젊은 주민들이 월정사쪽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월정사쪽에는 큰 힘이다. 이날 숲길 걷기대회에서 회원들과 함께 교통통제 자원봉사를 한 진부면 청송청년회 황봉구(35·진부면 하진부리) 부회장은 “상원사까지의 포장공사가 취소됐고, 앞으로도 포장을 안 할 것이라면 초입의 일부 포장구간도 걷어내 흙길로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대산/글 김정수 jsk21@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자연 그리고 사람 하나되자는 뜻”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

오대산과 월정사를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월정사의 노력의 중심에는 주지 정념 스님이 서있다. 12년 동안 상원사의 주지를 지낸 정념 스님은 지난해 2월 월정사의 주지직을 맡은 뒤로 ‘단기출가학교’ 운영, ‘산사영화제’와 ‘오대산 천년의 숲길 걷기대회’, ‘평창군 축구대회’ 개최 등 사회를 향해 산문을 더욱 활짝 여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불교계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전나무숲길의 도로포장을 깨내야 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습니까?

=작년에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곳에 인위적인 포장의 길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환경을 잘 보전해온 과거 스님들의 뜻을 받들고 계승하는 차원에서라도 좀더 자연스럽고, 또 자연과 우리 인간이 하나된 공간을 만들어나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월정사 일대를 ‘웰빙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웰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웰빙이란 용어는 참살이로 풀이하지요. 참살이의 가장 근본에는 정신적인 내면의 지혜 또 마음의 평온 이런걸 통해서 행복을 찾아가자, 또 삶의 가치를 그런 속에서 확립하자하는 이런 흐름이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전돼 있고, 역사 전통 문화가 공존하는 이 산중 전체를 생태환경적인 또 정신수행적인, 자기재충전적인 장소로 가꿔나가려는 것입니다.

-웰빙타운 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일주문 바깥 아래쪽은 문화, 명상, 선수련, 재충전할수 있는 이런 공간으로 설정하고, 일주문 안쪽은 평화롭게 참배도 하고 오대를 순례할 수 있는 그런 길로서 가꾸어가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올라가는 흙길을 비포장상태로 두고 지금처럼 차량이 많이 왕래하면 흙먼지에 의해 주변 식생의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우려가 높은데요.

=당장은 비포장구간의 노면관리를 철저히 하고, 물차로 물을 뿌려서라도 심한 먼지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결국 차량을 통제하든지, 일주문 아래쪽에 대형주차장을 만들고, 무공해 전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을 설치해 이용하게 하든가, 걸어 가는 길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념 스님은 “사물의 존재를 다 관계성의 원리 속에서 바라 보는 불교에서 보면 자연환경과 인간은 둘이 아니다”며 “세상 만물이 동체이고 한 근원이라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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