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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16:08 수정 : 2005.01.25 16:08

남편 흉 좀 봐야지. 늘 입에 뭔가 달고 다니는 이 아저씨는 책상 서랍에도 나 몰래 과자를 숨겨 놓고 먹었다. 위가 안 좋아서 늘 ‘끄윽-극’ 거리면서도 과자나 빵을 먹는 게 좀 못마땅하지만 좋아하니까 할 수 없이 슈퍼과자를 끊으라고 생협 과자와 빵을 사줬다. 그런데 우리밀이라서 믿을 만하긴 하지만 겹겹이 들어있는 비닐 포장지가 너무 거슬렸다. 그러다가 찾아 낸 게 현미 뻥튀기다. 맛좋고 영양 많고, 소화도 잘되고 살찔 염려도 없고 무엇보다도 포장지 없는 겨울철 최고의 간식 현미 뻥!

읍내 장날 현미를 튀기러 갔던 남편이 투덜대며 들어온다. 내내 삼천원씩 받던 삯이 한 장 만에 사천 원으로 올랐다고. 뻥 자루 옆에 뭔가 있다. 들추어 봤더니 곶감봉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건데.

애들이 여섯이나 됐던 울 엄마는 겨울만 되면 제비새끼마냥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우리들 등쌀에 겨울이 어서 지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단지에 넣어 놓은 홍시도 다 먹고, 감 껍질 말린 것은 벌써 다 꾸들꾸들해지기도 전에 먹었다. 엄마가 많이 먹으면 똥이 막혀서 꼬챙이로 똥구멍을 파내야 한다고 그렇게 으름장을 놨는데도 언니랑 나는 팥 바구니 쥐 드나들 듯 곶감을 훔쳐 먹었다. 드디어 몇 꼬치 안남은 곶감은 엄마가 설날 수정과를 담근다고 벽장 저 깊이 숨겨 두셨는데, 숨긴 물건 찾기에 명수인 울 언니는 귀신같이 찾아서 몰래몰래 한 꼬치에 한 개씩 빼먹고는 간격을 늘려서 넣어놓았다. 뒤늦게 찾은 나는 빼먹으면 표시가 날까봐 더는 못 건들고, 입은 궁금해 죽겠고, 동치미 무를 건져다 먹어보지만 좀 마른 것이 먹고 싶었다. 참 무엇이든지 맛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뻥튀기 장수 할아버지가 동구 밖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고 할머니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튀밥 튀기요” 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뻥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하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집집마다 개들은 짓고 애들은 엄마를 볶아대기 시작하고 엄마들은 튀어 먹을 쌀이 어딨냐고 화를 냈다. 그래도 한 참, 발을 동동 구르고 목소리를 징징거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다 보면, 못이기는 척 하시며 어디 들어 있었는지 자루에 담긴 강냉이 한 되를 꺼냈다. 그리고 장작개비 두개와 20원을 주며 언니와 내게 들려주며 덧붙여 하시는 말씀 “안 바뀌게 조심해라”였다.

또 가끔씩 쌀을 튀기기도 했는데 난 껄끄러운 강냉이보다 부드러운 쌀 튀밥이 좋았다. 오래 먹으려고 실에 줄줄이 꿰어서 목에 걸고 다니며 먹기도 했다. 이젠 도시에서는 이런 무공해 먹을거리를 내손으로 손쉽게 구해먹는 것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스 불에 트럭에 앉은 젊은 아저씨가 하는 뻥튀기지만 우리 집 쌀을 들고 장날마다 만들 수 있으니 시골 사는 기쁨이 아닌가?

글 오진희/동화작가, 삽화/신영식 환경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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