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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3 21:55 수정 : 2005.02.03 21:55

한 집회 참가자가 초에 불을 붙여 ‘초록의 공명’이란 촛불 글귀를 완성하고 있다. 김남일 기자 \

[현장] 지율스님 단식 100일 광화문 등 전국 곳곳 촛불집회 열려

촛불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명징하게 타올랐다. ‘산지기’를 자처하고 나선 수백명의 맑은 정신들이 차가운 입김으로 부서져 내렸다.

3일 저녁 6시35분께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은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막으려 100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을 위한 촛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교보빌딩 앞에 마련된 무대에는 ‘초록의 공명’이라는 글귀가 촛불로 타올랐고, 무대 한 켠에는 손바닥만한 헝겊 수십개에 도롱뇽을 기워 넣은 조각보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접어온 종이 도롱뇽들이 수북하게 쌓인 채 살이 돋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촛불집회의 시작은 ‘묵언 공연’으로 시작됐다. 말이 없기에 시작하는지도 몰랐다. 입을 닫은 채 100일 동안 스러져가는 몸으로만 말을 해 온 지율 스님이 비껴갔다.

스피커에선 고속철도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와 새소리가 번갈아 흘러나왔다. 쇳소리가 불꽃을 튀기는 기계음과 피가 도는 살의 소리는 달랐다. 새들은 떠나고, 한 여자 수도자가 맑은 계곡물을 떠 뭍에서 말라가고 있는 종이 도롱뇽을 적셨다. 생명의 기운이 물을 타고 흘렀다.

이날 참가자들이 접어온 종이 도롱뇽은 모두 13만여마리. 백만마리를 채우기에는 아직도 멀어 보였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쇼핑백에, 비닐봉지에 담아온 종이 도롱뇽들은 계속해서 쌓여 갔다. 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종이 도롱뇽들은 저마다 천성산이 담고 있는 수억의 풍요로운 생명들을 대신했다.


‘도롱뇽의 친구’라고 자신을 밝힌 한 참가자는 “종이 도롱뇽을 접는다는 것은 천성산과 지율 스님을 살리기 위한 우리의 신념과 믿음”이라고 했다.

까칠한 종이결을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지는 것일까. 종이 도롱뇽 100여마리를 쇼핑백에 담아온 박진희(39·서울 노량진)씨는 주최 쪽이 준비한 커다란 비닐봉투에 도롱뇽들을 ‘방생’하고 있었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신문을 통해 종종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보니 백일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그 오랜 기간 단식을 했다는 데 놀랐고, 제 무심함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대학 때 ‘3일간’ 굶고 쓰러졌던 박씨는 밤새 종이 도롱뇽을 접었다. “접다보니 점점 익숙해져서 2~3분에 한 마리씩 접을 수 있더라구요.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도 부산 할머니집에서 접고 있어요. 그것도 보태야죠.”

생명에는 늙고 젊음의 구별이 없지만, 어린이는 생명의 색깔을 닮았다. 이날 촛불집회에도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 생명들이 또다른 생명을 노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서울 미양초등학교 4학년 박지민군은 같은 학교 여학생 3명과 함께 ‘좋겠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크면 흙이 돼주자. 꽃을 심을 수 있게, 동물들이 흙을 밟을 수 있게.”

사람들은 천성산에 미안해 했다. 내 친구 지율 스님을 살려달라고 했다. 빠름의 미덕이 두 줄 날선 레일 위를 타고 달려갈 때, 참가자들은 ‘고속이 좋다는 편견을 버려’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3개월 공사하면 200미터 ?b는다는데, 16.2㎞ 터널공사에 200미터가 그렇게 급한가. 5년 공사기간에 3개월이 그렇게 불가능한가”라며 속도와 효율을 신봉하는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촛불은 촛불 든 이의 얼굴 만큼 사위의 어둠을 물리쳤지만, 이들의 함성은 천성산으로 메아리쳐 갔다.

이날 촛불집회는 부산의 서면 롯데백화점, 광주우체국, 대전 으능정이거리, 대구백화점,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양산터미널, 영광 핵발전소 앞 등 전국 17곳에서 함께 열렸다. 다음은 호소문 전문이다.

<한겨레> 사회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노무현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지율 스님을 살려주세요!

노무현 대통령님.
지율 스님을 살려 주세요.
자신의 몸을 한알의 밀알로 심어
보이고 보이지 않는 천성산의 뭇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지율 스님을 살려 주세요.
지율 스님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지율 스님은 죽고 싶지 않아요. 천성산의 뭇 생명들과 더불어 살고 싶어요.

천성산은 활성단층지대라 터널을 뚫었을 때 붕괴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
지하수와 계곡수가 누출될 위험도 있다는데,
그래서 공사하기 전에
부족하지만 3개월만이라도 환경에 대한 전문가 공동조사를 한번 제대로 해달라는데,
공사 중 붕괴위험이 있다니까, 조사기간만이라도 발파공사만 중지해 달라는데,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입니까?

지율 스님이 주장하지 않더라도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보는 것은
당연히 철도공단이, 당연히 정부가 해야할 일은 아닌지요!
3개월 공사하면 200미터 ?b는다는데, 16.2㎞ 터널공사에 200미터가 그렇게 급한가요?
5년 공사기간에 3개월이 그렇게 불가능한가요?

눈물을 흘리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 저곳에 빌고 다녔지만
모두들 “정말 안타깝네요. 그러나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대답입니다.

아무도 들어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지율 스님은 죽는 길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노무현 대통령님!
이것이 이 시대의 한계인가요?
지율 스님의 여윈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는 맥박을 잡고 있으면
자꾸 눈물만 납니다.
지율 스님이 살아난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지금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분은
노무현 대통령님, 오직 당신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십시오.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눈물로 호소 드립니다.

2005년 2월 1일
지율 스님과 생명평화를 위한 종교인 참회기도 추진위원회
전교조, 도롱뇽의 친구들,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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