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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2 19:01 수정 : 2019.06.13 11:44

【짬】 청주 한살림 청년농부 나기창씨

나기창 농부가 자신이 키운 상추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아는 조합원이 한살림 매장에서 제 물건을 보고 ‘마지막 남은 기창씨 것 내가 사 간다’고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너무 기분이 좋았죠.”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해 서른 생일을 맞은 ‘한살림’은 조합원이 66만 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생활협동조합이다. 한살림에 물품을 공급하는 생산자단체인 한살림생산자연합회(이하 연합회) 회원도 2200세대가 넘는다. 올해 초 연합회의 청년위원회에 ‘2030분과’가 생겼다. 20대 30대 젊은 유기농부 70여명이 가입했다. 초대 분과장을 맡은 나기창 농부를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내수면 비중리 마을회관에서 만났다.

지난해 말 기준 한살림 생산자 평균 연령은 62.4살이다. 한살림도 농촌 고령화라는 현실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위 활동은 60살까지 할 수 있어요. 청년위 활동을 하며 세대간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2030이 당사자가 되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분과를 만들었죠.”

그는 올해 만 40살이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30대란다. 3월 초 분과를 만든 뒤 회원 45명이 제주에 모여 활동 방향 논의도 했고 지역별 책임자도 뽑았다. “회원 사정이 다 달라요.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는 후계농도 있고 기반 없이 시작하는 이들도 있죠. 생태주의 가치를 좇는 분들도 있고요. 하나로 활동 방향을 잡기 어렵더군요.” 2030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생계 불안”이란다. “농사 수익성이 크지 않거든요. 애들을 키우는 농가는 더욱 힘들죠.”

올해 초 제주에서 열린 한살림생산자연합회 2030 분과 모임 참석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나기창씨 제공

그는 8월까지는 활동 계획을 세우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살림의 가치 안에서 서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해요. 당장은 힘들지만 안정을 찾을 때까지 (유기농법) 전문성을 키우고 한살림이라는 문화적 힘으로 연대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가면 좋겠어요.”

지난 1일에는 회원 10여 명과 함께 서울 제기동 ‘한살림 농산’을 찾았다. 이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친환경 농산물 축제 ‘유기데이 행사’에 참여한 뒤였다. “한살림 농산은 고 박재일 선생이 1986년 처음으로 한살림 가게를 연 곳이죠. 생명 존중과 같은 기본 정신을 담은 ‘한살림 선언문’(1989)을 같이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그는 “한살림을 만나지 않았으면 절대 농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05년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와 동네에서 열린 한살림 조합원 단합대회를 봤어요. 청주 조합원들이 내려왔고 돼지도 잡더군요. 좋아 보였어요. 그해 우리집 참외 농사가 좋지 않았는데도 어머니 표정이 밝았어요. 한살림 약정 출하라 괜찮을 것 같다고요.”

그는 2009년부터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비중리에서 농부로 살고 있다. “농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이삼년간은 왜 저러나 하셨죠.” 후계농이지만 농사는 부모와 따로 짓는단다. 부모는 2004년, 아들은 2010년부터 한살림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하우스 천 평, 노지 천 평에서 방울토마토와 상추를 키웁니다. 땅은 다 임대이죠. (재배 작물의) 70~80%는 한살림, 나머지는 지역 매장에 보내거나 직거래를 하죠.”

지금의 일이 만족스럽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구실하며 살고 있죠.” 이유를 묻자 “농사만 짓는 게 아니어서”란다.

생산자연합회 청년위 2030분과 꾸려
20~30대 70명 모아 초대 분과장 맡아

“젊은 열정들 연대해 포기하지 않게”

제대 뒤 부모 반대에도 귀농 10년째
내수면 일대 농부 23명 초정공동체
“도농 교류하며 사람 구실하며 살죠”

그는 ‘한살림 농부’의 가장 큰 매력으로 공동체성을 꼽았다. 그는 비중리와 주변 농부 23명이 속한 초정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올해 30대 농부 한 명이 새로 가입해 막내를 면했단다. “도시와 농촌 교류가 활발한 공동체이죠. 그간 교류 행사를 서른 번은 한 것 같아요. 토마토 따기 행사도 했고, 농장 파티를 열어 도시 조합원들과 함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도 했죠. 중학생들이 농촌 활동도 옵니다. 행사를 하면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치를 때마다 공동체가 한 뼘 성장하는 걸 느껴요. 이런 교류가 없다면 한살림도 특별할 게 없지요.” 하지만 근래 공동체성이 조금씩 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개인적으로 조합원 대상 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주말 다섯 시간씩 연간 여섯번 정도 합니다. 올해는 여섯 가구가 참여하고 있죠. 체험논에서 논농사 전 과정을 가르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어주는 매개로 이것만큼 좋은 게 없어요.”

지난해 논학교에 참여한 한 조합원 자녀가 나기창 농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액자를 만들어 선물했다. “너무 감동했죠.” 나기창씨 제공

초정공동체 회원들과 도시 조합원들이 함께 추수한 뒤 사진을 찍었다. 나기창씨 제공

그는 인터뷰 내내 젊은 유기농부가 늘면 좋겠다는 갈망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살림 안에서 공동체 활동에 대한 열정이 유지됩니다. 이전에 열정을 보였던 생산자들도 세월이 흐르면 열정이 줄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까. “2030들이 전문성을 키우고 자립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있어요. 사실 처음 유기농사를 하면 잘 안 됩니다. 약을 뿌리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데 사람을 사서 풀을 뽑아야 하거든요. 전환 과정이죠. 2년 정도 해야 땅심(지력)이 오릅니다. 이 시기를 못 버티고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초정공동체도 다섯 가구나 초기에 그만뒀어요. 우선 지역공동체에서 2030들을 챙겨야죠. 기반 없이 빚으로 시작하는 2030들에게 한살림 공급 약정량을 우선 배분하는 것도 방법이죠.”

설립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한살림은 지난해 매출이 현상 유지에 그쳤다. 위기란 말까지 나온다. “이삼년 새 한살림 발주가 줄고 있는 걸 체감해요. 1인이나 2인으로 가족 구성이 바뀌고 ‘총알 배송’ 같은 편의성을 선호하는 요인들이 작용한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더 적극 알려야겠죠.”

이 시대 ‘유기농부’의 가치는? “유기란 살아있는 것이죠.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죠.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생태적 사고와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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