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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4 05:00 수정 : 2019.06.24 10:14

지난달 22일 새벽 5~6시께 경북 포항시 형산강변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2고로. 고로 위에 설치된 안전밸브를 통해 대기오염물질인 고로 내 잔류가스가 수증기와 함께 배출되고 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제공

제철소 대기오염물질 배출 논란
철강업계 주장 타당성 따져보니

지난달 22일 새벽 5~6시께 경북 포항시 형산강변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2고로. 고로 위에 설치된 안전밸브를 통해 대기오염물질인 고로 내 잔류가스가 수증기와 함께 배출되고 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제공
국내 제철소들이 고로(용광로) 정기점검 때마다 안전밸브(블리더)를 열어 대기오염물질인 고로 안의 잔류가스를 배출해온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제철소들이 관련 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제재에 들어갔지만, 철강업계는 “무리한 규제로 수조원대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보수 매체와 경제지 등이 철강업계의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전하면서 논의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 위법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 4~5월이다. 전남도와 충남도, 경북도가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상대로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내리면서다. 이 가운데 충남도의 처분은 확정돼 오는 7월15일 집행된다. 이에 철강업계는 “10일 조업정지를 하면 고로를 정상 가동하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다”며 “수조원대 손실이 발생하고 연관 산업 역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환경부는 대안을 찾기위해 지난 19일 민관협의체를 발족했지만, 논란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밸브 통한 잔류가스 배출은 불법인가? 지방정부가 행정 처분을 내린 것은 제철소들이 대기환경보전법 31조를 위반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을 가동할 때 대기오염물질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지시설을 가동하지 않거나, 오염도를 낮추려고 공기를 섞어 배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배출 허용 기준치 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다.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는 배출관 설치도 금지돼 있다. 예외가 있다면 화재나 폭발 같은 사고(이상공정) 예방 목적으로, 시·도지사가 인정한 경우다.

핵심 쟁점은 정기점검 때마다 철광석을 녹이기 위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작업을 멈추고(휴풍), 안전밸브를 열어 고로 내 잔류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이 예외에 해당하는지다. 철강업계는 “고로의 안전밸브 개방은 폭발방지와 노동자 안전 확보를 위한 절차”라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이 공정이 1년에 6~8차례 이뤄지기 때문에 ‘폭발, 화재,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이상공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태도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철소들이 지자체에 시설 인허가를 받을 때 휴풍 공정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스스로 먼저 밝히기 전엔, 바깥에서 알 수 없는 공정인데도 제철소들이 `이상공정’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해 넘어가버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 동안 지속돼 온 인허가 과정에서 철강업계가 휴풍 공정의 문제를 미리 밝혔다면, 법제도 개정을 통한 사전 반영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업정지하면 수조원대 손실 발생하나? 업계의 조업정지로 인한 손실 주장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철소에 조업정지의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처음 관련 불법 사실이 적발되면 지방정부의 조업정지 처분 예고 뒤 해당 업체가 지방정부의 장에게 조업정지 대신 과징금을 낼 수 있도록 ‘전환 신청’을 받고 있다. 조업정지로 인한 손실이 크다면 과징금을 내고 개선계획서를 제출해 시간을 벌 수 있지만,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그러면 불법을 인정하는 꼴”이라며 과징금 전환 신청을 하지 않은 채 규제 당국과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제철소가 휴풍 공정 때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문제가 공개된 건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 직원의 내부고발이 시작이었다. 전남도는 지난 3월 이 고발을 접수해 지역 방송사와 함께 현장을 찾아 관련 사실을 적발했다. 환경단체 고발은 이 내부고발 뒤 뒤늦게 이뤄진 것이다. 전남도에 이어 현대제철의 고로 잔류가스 배출을 적발한 충남도 관계자는 “일각에서 ‘수십년 동안 가만히 있다 왜 이제야 문제 삼느냐’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도 그동안 몰랐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고로 가스는 해마다 집계되는 국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산정에서도 빠져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해마다 오염원별 배출량을 조사·산정해 발표하고 이를 참고해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수립하는데,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코크스 가스 등 부생가스는 인력과 연구비 부족 등의 이유로 환경과학원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감사원은 지난 3월 낸 ‘산업시설 대기오염물질 배출 관리실태’ 공개문에서 이렇게 누락된 오염물질 가운데 질소산화물은 2015년 기준 10만7천t가량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그해 국가배출량의 9.2%를 차지하며, 누락된 오염물질을 모두 합하면 파악된 배출량의 20%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로 가스 역시 이 누락된 오염물질에 속한다.

고로에서 배출된 가스, 문제없나? “고로 가스 대부분은 수증기이고 잔류가스 양은 미미해 문제가 없다”는 철강업계 주장도 문제로 꼽힌다. 가스 성분이 제대로 확인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고로와 연결된 ‘가스 저장소’의 성분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제철이 충남도에 신고한 고로 부생가스 저장시설의 배출 대기오염물질을 보면, 먼지·철·알루미늄·망간·구리·아연 등 일반적인 대기오염물질 뿐 아니라 니켈·크롬·카드뮴·비소·납·수은 같은 특정대기유해물질도 있었다. 특정대기유해물질은 저농도에서도 사람의 건강이나 동식물의 생육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물질로, 대부분 발암물질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특정대기유해물질의 경우 아무리 미량이라도 배출되는 즉시 지방정부에 신고하고 기준치 이하로 관리하도록 규정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환경기준 초과와 별도로 (배출된) 오염물질은 주변 지역에 얼마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던 배경이다.

게다가 현행 제도는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이 기준 이하면 방지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해준다. 업계 주장대로 잔류가스가 미량이라면, 인·허가 때 이를 신고해 방지시설 설치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제철소들은 이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은 채 발암물질이 포함된 대기오염물질을 수십년 동안 새벽 2∼6시에 몰래 배출해온 것이다.

기술력의 한계? 사회적 책임 회피? 철강업계는 “고로의 안전밸브를 통해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을 저감하는 기술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업종의 특성과 방지기술의 유무가 ‘기업이 대기오염물질을 마음대로 배출할 권리’가 될 순 없다고 지적한다. 방지시설 설치가 어렵더라도 정기적으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면 이런 사실을 환경 당국에 미리 알려 배출부담금을 내는 등 현실에 맞는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배출부과금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자에게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정용 환경부 대기관리과장은 “지금까지는 굴뚝을 통한 배출에만 부과금을 산정했기 때문에 안전밸브를 통한 배출에도 부과가 가능할지 검토할 생각”이라며 “문제가 드러나기 전 업체가 미리 이런 사실을 당국에 알렸다면 현실에 부합한 제도 마련을 위한 협의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배출했다고 신고한 대기오염물질은 각각 2만3200여t, 3만7천여t에 이른다. 배보람 녹색연합 전환사회팀장은 “실제 산업계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은 매우 여러 단계에서 이뤄지지만, 측정장치를 단 일부 굴뚝만 관리되고 있다. 이번 논란을 제철소를 비롯한 산업계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규제 전반의 개선과 정비 쪽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고로 내 잔류가스를 새벽에 몰래 배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주간 시간대 정비를 위해 새벽에 사전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지 몰래 배출한 것이 아니며, 이를 관행이라 주장한 적도 없다”고 알려왔다. 과징금 전환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불법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추가 처분이 이어지면 결국 다시 조업정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기용 최예린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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