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걱정되는 것은-이것이 이명박이라는 사람의 사회인식이 아니라 보수화되고 공동체의식이 흐려진, 그래서 무한경쟁 속에 나만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어 버린 이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의식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누구라도, 장삼이사가 내뱉을만한 말을 이명박씨가 내뱉은 것뿐. 그래서 더 무섭다. 나까지도 가끔 이명박씨 같은 생각을 하게되는 것. 나도 우리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나 뇌성마비라면 낙태를 해버렸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만삭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혈액종양내과 전임의사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혈액내과병동에 입원한 20주 임산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피와 질출혈, 몸 여기저기에 든 멍으로 입원하게 된 그의 병명은 급성전골수구성백혈병. (APL, acute promyelocytic leukemia) 치료할 경우 백혈병 중 가장 예후가 좋지만, 수일만에 진단하고 바로 치료에 들어가지 못하면 치명적인 출혈로 환자를 잃을 수도 있는 병이었다. 문제는 그 치료제가, '아트라'(ATRA, all-trans-retinoic acid)가 기형아를 유발시킬 수 있는, 미국 FDA 카테고리 D에 해당하는 물질이라는 것이었고, 임신 초기도 후기도 아닌 20주라는 어중간한 주수 때문에, 산모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도, 또는 아이가 충분히 성숙해서 기형이 생길 단계는 지나고 유산을 시키기도 어려워서 그냥 치료를 감행하기에도 불안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다. 증례보고들은 대부분 20~30주의 산모가 APL을 진단받았을 때 과감히 ATRA와 항암화학치료를 감행해서 산모와 아이를 모두 살린 성공사례들이었다. 적어도 출산전후의 문제, 그리고 아이가 1-2세가 될때까지 치명적인 문제점은 한 아이에서 심폐장애가 있었던가, 어쨌든 한 경우를 빼놓고는 4~5개의 증례보고에서 다 괜찮았다고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이 임상시험도 아니고, 잘된 경우만 보고한 것일테니 결과에 대해 장담은 결코 못하는 상태이긴 했다. 우리는 임신을 유지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았지만 꼭 기형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유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으로 산모가 아이를 선택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우리 아이는 이미 30주 넘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지만 같은 산모로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우리 아기를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하니 많이 우울해졌다. 산모는, 유산을 선택했다. 의외로 그는 담담했고 사실 애초부터 아이를 살리는 것은 포기한듯이 보였다. 사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가 너무 가엽고 산모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것은 나의 감상에 불과했던가보다. 출혈의 위험이 너무 많아 일단 ATRA를 쓰고 웬만큼 혈액수치가 호전되고 질출혈이 멎은 후 인공유산을 시행하기 위해 분만장에 보냈다. 의무기록에는 분만유도제를 쓴 후 1kg 남짓 되는 태아가 사산되었고 육안적으로 보기에 기형은 없었다고, 시술한 산부인과 전공의의 기록이 남겨졌다. 물론 그때 기형이 없더라도 계속 뱃속에 품고 치료를 받았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장애가 있더라도 사회가 책임져주는, 기쁜 마음으로 아가를 키울 수 있는 나라였다면 그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나라였다면 그 아가는 힘든 병마와의 싸움을 그래도 살아서 엄마와 해 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태어났더라면 우리 아기랑 동갑이었을 그 조그만 아가, 분만장의 적출물 폐기통에 버려졌을 그 아가의 명복을, 약 1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뭉클한 마음과 함께 빌어본다. 아가야, 하늘나라에 잘 있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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