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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5 09:55 수정 : 2005.02.15 09:55

‘혈액형 성격학’의 인기를 탄 영화 ‘B형 남자친구’의 홈페이지 화면. ‘B형 남자친구’ 공략법 등이 소개돼 있다.


[분석] 전문가들은 ‘혈액형 성격학’을 어떻게 보나

“사랑마저도 제멋대로인 초절정 왕싸가지!” 설 연휴 개봉된 영화 〈B형 남자친구〉 광고 속의 B형 남자다. 그의 여자친구는 “신중한 척 왕 소심한 A형 여자”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기적인 B형 남자와 소심한 A형 여자의 엽기 데이트”다.

지금 ‘혈액형 성격(인간)학’을 꺼내기는 한참이나 뒷북이다. 영화〈B형 남자친구〉는 가수 김현정의 노래 〈B형 남자〉 논란을 지나, 혈액형 신드롬의 꼭대기에 이른 셈이다. 지난해 말께부터 〈B형 남자와 연애하기〉 <혈액형 사랑학> <내 혈액형에 꼭 맞는 즐거운 다이어트> <혈액형 비지니스 파워>……등 혈액형 관련 책들이 이어졌다. 교육전문 채널인 JEI 스스로방송에서는 이미 지난해 7월 일본의 혈액연구가 노미 도시타카의 <혈액형으로 아이 성적 100% 끌어 올리기> 6회 연속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서울의 한 백화점은 최근 혈액형 궁합 와인전을 열었다. “관습과 규칙을 존중하고 조용한 성격이 많은 A형에게는 정통 제조기법으로 제조한 미국산 ‘헤스 콜렉션’ 와인을 20% 할인하고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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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포털 조사 결과, “B형남자는 연애할 때 여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남자”

영화〈B형 남자친구〉속 이동건이 그렇듯, 혈액형 인간학에 따르자면 B형 남자는 연예상대로 기피대상이다. 지난해 한 여성 포털사이트에서 2230명의 여성에게 조사한 결과, B형 남자는 “연애할 때 여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남자”로 꼽혔다. 혈액형 관련한 책은 B형 남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하늘을 찌른다”, “누구의 말이건 일단 무시하고 본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언제나 행동이 앞선다”, “감정기복이나 변덕이 여자보다 더하다” …등등. 김현정의 노래 ‘B형 남자’의 가사는 이렇다.

“…욱하는 성격에 금방 또 반성도 잘해/예민해 밤잠은 설치고 존심도 강해/황당한 사고에 sometime 진실은 보여/많이 좋아만 하기엔 내 맘만 다치고 있어/…오늘은 그만해 정말로 피곤해 그만 좀 들이대 내가 무슨 네 샌드백/이제는 네 억지에 줬다 뺏어가는…/가슴에 한여자 담기가 힘든 그 마음을 어찌 믿겠니/야? 너 삐~~형이지?

B형 남자들, ‘B형 남자’ 부른 가수 김현정에게 항의해 사과받기도

B형 남자들은 “억울하다”며 가수 김현정에게 항의했고, 김씨는 사과문까지 냈다. 하지만, 혈액형 성격학에 대한 믿음은 응고되는 혈액처럼 끈적끈적하다. 지난 12월 한 의료전문채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5.9%가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가 “밀접하다”고 답했다. 이성교제 등에도 혈액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응답자도 20.3%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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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혈액형과 성격이 “밀접하다”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선 혈액형 구분부터 따져보자.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는 ABO식 혈액형은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에 A, B, O라는 세가지 혈액형의 존재를 처음 밝혀냈다. ABO식 혈액형은 적혈구에 붙어 있는 당분 사슬의 형태에 따라 나눠지며, ABO 혈액형을 결정하는 9번 염색체에 따라 유전적으로 정해진다. 혈액형 분류방식은 RH형을 비롯해 15가지 정도가 있다.

ABO식 혈액형은 오스트리아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 규명

“밀접하다”는 믿음은 지난 1970년대 일본의 언론인 출신 노미 마사히코가 쓴 <혈액형 인간학>이 인기를 끌면서 크게 퍼졌다. 그의 아들 노미 도시타가도 <혈액형이 당신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책을 쓰면서 이런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1927년 일본의 다케지 후루카와라는 철학강사가 <혈액형을 통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혈액형과 인간의 성격을 다뤘다. “B형 남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는 믿음은 이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 응고된 것이다.

과연, 혈액형과 성격과는 관계는 “밀접하다”는 믿음은 옳을까?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친다. “우연의 일치일 뿐으로 과학적으로 공인된 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생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두고 혈액형 한가지 기준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8만여개의 인간 염기서열 가운데 혈액형을 결정하는 염기서열은 1천여 안팎이고, A형과 B형의 차이는 기껏 7개밖에 안된다거나, 인종마다 혈액형의 비율이 다른 것도 혈액형과 성격이 “밀접하지 않다”는 증거다.

%%990004%%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김은정과장 “혈액형 성격관련 주장 전혀 검증된 바 없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김은정 과장(진단검사의학·의사)은 “적혈구 세포막의 항원의 따라 나누는 혈액형이 성격과 연관에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검증돼 학계에서 공인된 적이 없다”며 “‘어떤 혈액형은 어떻다더라’는 식의 맞는 말은 잘 받아들이고, 틀린 것은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이영애 교수도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어떻게 3~4가지 혈액형에 따라 사람을 나눌 수가 있느냐”며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분류하고자 할 뿐으로 혈액형과 성격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심리학 등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도 “관련 데이터를 모아봤지만,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자료는 없다”며 “한국과 일본에서만 인기를 끌고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혈액형 성격학 “한국과 일본서만 인기, 다른 나라에선 불통”
전문가들 “혈액형은 성격보다 질병과 진짜 밀접”

전문가들은 혈액형이 성격이 아니라 질병과 더 “밀접하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서울 아산병원이 환자 1만명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질병과의 관련성을 조사한 결과, A형은 위암과 류마티스 관절염, B형은 유방암, O형은 십이지장 궤양, AB형은 패혈증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직장인 350여명의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도 조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영국 런던대 연구팀도 B형은 바이러스성 질병, A와 B형은 세균성 질병에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과학적 근거도 없이 사람들은 혈액형과 성격이 “밀접하다”고 믿는 것일까? 단순히 잘못 알려진 ‘혈액형 성격학’ 탓일까? 전문가들은 A·B·O·AB형 네가지처럼 단순하지 않는 현대사회에 그 원인을 찾는다. 서로가 서로를 구분하고, 그 짜여진 틀 안에서 서로를 해석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은국 교수 “한국·일본에서만 인기 있는 이유는 대인관계 복잡성과 연관”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혈액형 성격학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인기가 높은데, 대인관계가 복잡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서 서로에 대해 진단하고 그룹화하는 실마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누군가 ‘바보다, 바보다’라고 자꾸 얘기를 들으면 스스로 바보처럼 느끼게 되는 것처럼, 혈액형 성격학도 스스로를 특정한 스테레오타입에 맞춰가는 암시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 칼럼리스트는 박성준씨의 분석은 선혈처럼 뚜렷하다. “점성술이나 사주운명학처럼 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론 역시 ‘사이비 과학’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잠재성들을 무시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둬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혈액형 성격학에 가려진 ‘문화 자본주의’의 상술에 덩달아 춤추지 않을 일이다. 혈액형 성격학에서 말하는 “규율이나 규칙, 속박을 싫어하고, 생각이 유연”한 B형이나, “머리회전이 빠르고 냉철하며 통찰력도 예리”한 A형이라면 더욱 더.

▶바로가기 : 서울대병원 혈액형클리닉 (blood.snuh.org)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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