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5 17:00
수정 : 2005.03.15 17:00
의사들의 세계에는 ‘술 취한 환자는 신경외과 환자다’라는 말이 있다. 원칙적으로 술 때문에 생긴 질병은 내과나 정신과에서 담당한다. 그런데도 이 말이 있는 이유는 응급실에서 보는 뇌출혈 환자의 초기 증상이 술 취한 사람의 증상과 비슷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응급실에서 경험한 사례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입소해 노역을 하고 있는 환자였다. 입소한 다음날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컴퓨터 단층촬영(시티)을 한 결과 뇌에 출혈이 있었다. 교도관을 상대로 몇 가지를 물어보니 이 환자는 교도소에 입소한 첫날 술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신체 검사를 해 본 결과 온몸과 머리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었다. 교도관은 이 환자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만 생각하고 뇌출혈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와 더불어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술에 취해 있어, 뇌출혈을 미리 발견하지 못한 사례도 종종 있다. 이런 환자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응급’ 혹은 ‘감춰진 응급’에 속하는 환자이다.
보이지 않는 응급은 알코올 중독만이 아니다. 의사들은 일반적인 증상과 진찰, 검사로는 진단하기 어려운 질병을 흔히 ‘미리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 증상이 약하거나 보통의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질병 가운데에서도 생명이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을 보이지 않는 응급이라 할 수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폐의 혈관들을 막히는 폐색전이나 폐경색, 장을 받쳐주는 조직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는 장간막 경색 등이 보이지 않는 응급의 대표 질병이다. 일반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응급이 더욱 많다. 두통, 복통, 가슴 통증은 가장 흔한 증상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증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증상이 바뀌면 주의해야 한다. 평소에 편두통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전의 증상과 달리 정도가 심하거나 아픈 부위가 달라지면 응급일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증상이면서 일반적인 치료로 낫지 않는 두통, 복통, 가슴 통증도 보이지 않는 응급일 가능성이 많다.
셋째, 방사통, 즉 어떤 부위가 아프면서 통증이 다른 곳으로 뻗치는 증상이 있으면 위험한 질병일 가능성이 많다. 췌장염, 급성 심근 경색증 등 많은 응급질환에서 방사통이 있다. 특히 가슴이나 배 부위가 아프면서 등 쪽으로 뻗친다면 이는 보이지 않는 응급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참고로 극심한 통증이 있다면 당연히 응급실을 찾겠지만, 노인이나 소아는 정상 성인보다 증상이 미약하거나 참기도 하므로 응급 질환이 무시되기 쉽다. 따라서 특히 노인이나 소아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환자나 주위 사람 모두 주의해야 할 경우이다. 물론 이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 응급의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 이 정도는 귀중한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상식이다.
김승열 안동성소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notwh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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