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9 16:09
수정 : 2005.03.29 16:09
잘못된 응급처치 때문에 나중에 크게 나빠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얼마 전에 응급 진료 중에 겪은 사례다. 세 살이 조금 넘은 남자 아이였는데, 젓가락이 입천장에 박히는 상처를 입었다. 집에서 젓가락을 가지고 놀다가 젓가락을 문 채 앞으로 넘어져, 젓가락이 입천장에 박힌 경우였다.
사고 자체도 끔찍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 할머니의 잘못된 처치였다. 아이의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박혀 있는 젓가락을 당겨 빼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던 것이다. 응급 검사 결과 젓가락은 입천장과 두개골 바닥을 이루는 뼈를 통과해 부분적인 뇌 손상을 일으킨 것으로 판명됐다. 다행히 이 아이의 경우 중요한 혈관이나 조직을 다치지는 않아 적절한 조치 뒤 상처가 치료돼 퇴원했다. 만약 출혈이 있었는데 젓가락을 뺐을 경우에는 출혈이 심해져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 수도 있었다.
위의 예와 같이 뾰족한 물체가 몸에 박혔을 때는 일단 병원으로 이송 뒤에, 가능하면 수술로 제거 수술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는 박힌 이물질을 주변 조직이 누르는 탐폰 효과로 어느 정도의 지혈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아무렇게나 물체를 빼 버리면 지혈이 매우 힘든 출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물질을 빼 버린 뒤에는 손상된 조직이 부어 손상이 얼마나 심한지 정확하게 평가하기 힘들고, 이에 따라 수술의 필요성 판단도 어려워지고 수술 자체도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길고 뾰족한 물체가 가슴과 배 부위에 박혔다면 함부로 제거하다가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다만 팔다리의 끝 부위나 피부에만 살짝 박혀 있어 출혈의 위협이 심각하지 않은 경우라면 현장에서 즉각 제거해도 무방하다. 또 매우 길거나 고정된 기계 및 물체에 찔려 함께 이동이 힘든 경우에는 현장에서 부분적으로 제거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보다 전문적인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찔린 물체 등을 빼지 않고 병원으로 옮길 때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찔린 물체가 밖으로 나와 있다면 그 모양에 따라 거즈, 타월, 패드, 종이 상자, 종이컵으로 덮어서 이송해야 한다. 이동하는 도중 환자가 움직이거나 부주의 때문에 건드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차량이 흔들려 접촉이 생긴 경우에도 추가의 손상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 조처는 꼭 필요하다. 특히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는 이런 조치와 함께 반대 쪽 눈도 함께 감고 있도록 안대나 거즈로 가려 줘야 한다. 정상인 쪽의 눈이 움직이면 다친 쪽 눈도 함께 움직여 손상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사극 드라마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중국의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하후돈의 고사를 인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전쟁터에서 적군의 화살에 한쪽 눈을 잃게 된 장수가 화살이 박힌 안구를 뽑아 차마 버릴 수 없다며 스스로 먹는다는 가히 엽기적인 것이었다. 무협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종종 섣부른 응급 처치로 더 큰 위험에 처하는 환자들을 경험하는 의사로서 마음 한 편이 섬뜩해졌던 사실이 기억난다.
서길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suhgil@snu.ac.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