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9 16:10
수정 : 2005.04.19 16:10
최근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린이집에 맡겨졌다가 몰매를 맞은 자매 소식을 듣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응급실에서 경험한 아동학대의 한 사례를 살펴보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경련을 일으킨 일곱 살 남자 아이가 온 적이 있다. 같이 온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니 3살 때부터 경련이 시작됐으나,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의 부모는 혼인신고 없이 지내고 있었고, 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심한 가난으로 아이의 경련에 대한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제공하지 않은 의료적 방임상태였다.
신체 검사를 해 본 결과 이 아이는 일곱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고, 영양 불균형도 매우 심했다. 아동학대를 의심해 찍어 본 방사선 사진에서는 어깨 및 옆구리 쪽에 뼈가 부러져 있어 신체 학대를 받은 것이 의심됐다. 경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의뢰한 결과, 아이의 경련은 조절됐고, 안전한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학대받으며 생긴 정신적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을 보면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어른에 의해 아동의 건강 및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 또는 가혹 행위로 정의돼 있다. 또 아동의 보호자에 의해 이뤄지는 유기와 방임 역시 아동학대에 범주에 명확히 포함돼 있다.
실제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의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신고 현황을 보면 1997년에 907건, 1998년 1238건을 시작으로 신고 체계가 확립돼 아동학대 신고전화(국번 없이 1391)가 점차 알려짐에 따라 2003년에는 모두 4983건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신고 현황이라는 말 그대로 이 숫자는 신고 된 숫자일 뿐, 아동학대 전체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고 사례 분석 결과를 보면 아동학대의 가해자로는 친아버지가 가장 많아 50% 이상이며, 친어머니가 20% 정도 됐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할 가정에서 오히려 친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아동학대는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육체적 손상과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므로 예방 및 주위의 빠른 신고가 매우 중요하다. 일단 부모들에게는 아동학대의 충동이 일어나면 속으로 숫자를 세거나 자리를 피하는 방법들이 권장된다. 또 많은 경우 주위의 친척이나 친구들과 상의하면 아이에 대한 부적절한 기대 심리들을 깨닫기도 한다.
신고가 적은 이유는 이웃의 아이가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더라도 다른 집 가정사에 참견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또 신고자의 신분이 드러나 보복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돼서라고 한다. 그러나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는 신고자의 신분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 신고가 된 경우 훈련받은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하므로 주저 없이 신고해야 한다.
아동학대 신고가 고통 받는 어린이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신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신고는 직접 방문, 편지, 전자우편 등 어느 것이라도 가능하다.
서길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suhgi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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