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언론에 투병기 공개 충남 금산에 살고 있는 신원목(61)씨는 지난 22일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5년째 접어든 자신의 폐암 투병기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30여명의 기자들에게 들려줬다. 하루 전에 비행기로 6시간30분, 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걸려 콸라룸푸르에 도착한 신씨는 이날 “(장시간)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왔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 마음만 환자지 몸은 아무 문제 없다”며 건강한 모습을 과시했다. 그와 함께 한국에서 날아온 폐암환자 최윤희(53·서울 강서구)씨 또한 스스로 암환자라고 공개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으로 자신의 암투병기를 ‘간증’했다. 신개념 폐암치료제인 ‘이레사’를 복용중인 두 환자는 이날 이레사 제조·판매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초청으로 아시아 지역 폐암환자로서는 유일하게 이레사를 주제로 한 ‘아시아 미디어 워크샵’에 참석했다. 두 환자가 아시아 지역 언론에 공개한 폐암 투병기는 “폐암 진단은 결코 사형 선고가 아니다”는 국립암센터의 세계적인 폐암 전문가 이진수 박사의 지론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흔히 췌장암과 함께 생존률과 예후가 가장 좋지 않은 암으로 꼽히는 폐암에 걸린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정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신씨는 사흘에 두 갑 정도 30년간 담배를 피우다 금연한지 6년만인 지난 2000년 11월20일 폐암 진단을 받을 당시 좌·우 폐에 찬 물을 각각 1천㏄ 가량 빼낼 정도로 예후가 안좋았다.
콸라룸푸르 워크샵 참석
“암환자들에 희망 줬으면” 그는 3~4개월 시한부 삶이라는 말을 듣고 절망하기도 했으나 온 몸에서 솜털 조차 한오라기 안남긴 채 빠지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 화학요법에 의한 항암치료를 무려 24차례(사이클)나 받은 데 이어 2003년 3월부터 25개월간 이레사를 복용중이다. 그는 “이레사 시판 1년 전부터 일부 폐암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동정적 사용승인 프로그램에 운좋게 등록되어 이레사를 복용하기 시작했다”며 “(항암제) 부작용이 크지 않아 밥도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새벽 5시에 일어나 고향 마을 밑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속보로 10바퀴, 달리기로 5바퀴 돈 뒤 산책을 하다 오전 7시께 집으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한 뒤 약간 휴식을 취한 뒤 평균 6시간 가량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건설업체에서 기계 조작 일을 한 경험을 살려 이웃집 양수기 같은 것이 고장나면 고쳐주기도 하고, 일이 없을 때면 금산읍까지 11㎞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갔다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최씨는 교회 선교 활동차 해외 오지를 수차례 다녀올만큼 건강했으나 어느날 갑자기 기침이 심하게 나고 가슴 전체가 쪼개지는듯한 통증이 엄습해 병원을 방문한 결과 2003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4개월간 독한 항암 주사를 맞는 동안 누군가 날 칼로 난도질해 짓이기는 듯한 통증으로 몸서리를 쳤다”며 “그런 고통이 계속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레사를 복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화학요법 항암치료를 1차에 한해서만 받아 2차 이상 실시한 환자한테만 주어지는 이레사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월 20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약값을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신씨의 경우 건보 적용을 받아 한달에 40만원의 부담으로 이레사를 복용하고 있다. 최씨는 “6개월간 이레사를 복용한 뒤 증상이 크게 호전된 것 같고 약값도 부담이 되어 3개월간 약을 끊었으나 다시 호흡이 힘들어지고 기침이 나 지난 3월25일부터 다시 복용을 재개하자 증상이 다시 호전됐다”고 말했다. 미디어 워크샵에 참석한 아시아 지역 기자들은 한국에서 온 두 폐암환자의 이런 암투병기를 듣고 큰 관심을 표시했다. 어떤 종류의 화학요법 항암치료를 받았는지, 이레사의 부작용은 없는지, 약값은 비싸지 않은지, 최씨는 왜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지 등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답변에 나선 두 환자는 “우리들의 투병기가 폐암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며 “암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각국의 정부가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콸라룸푸르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 폐암치료제 ‘이레사’ 는
‘기적의 항암제’ 는 과장
항암효과는 기존과 비슷 부작용 거의 없는게 장점 신원목씨와 최윤희씨, 두 폐암 환자에게 최장 25개월간 복용하는 동안 정상인과 다름 없는 생활이 가능토록 한 ‘이레사’는 기적의 항암 치료제인가? 국립암센터 이진수 박사는 “암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레사의 항암 효과는 전체 환자의 20% 정도에서 나타나 기존의 화학요법 항암제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레사의 경우 글리벡 처럼 이른바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분자 수준의 표적을 겨냥한 ‘표적 항암제’로 분류되지만, 글리벡 처럼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70% 이상에서 치료 효과를 보이는 ‘기적의 항암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탈모, 구토 등과 같은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이 거의 없어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점이 글리벡과 비슷하다. 이 박사는 또 “이레사는 특이하게도 서양인에서는 효과가 10% 정도로 낮게 나타나는 반면에 아시아 사람들에서는 갑절 이상인 20% 이상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레사는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 표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 돌연변이 보유자, 선암 형태의 폐암환자 등에 더 큰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는다. 아시아 폐암환자들에서 이런 유형의 폐암 비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레사가 동양인한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아이셀(ICEL) 임상시험 결과 형태로 지난 16~20일 미국암학회(AACR) 회의와 22일 아시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아스트라제네카 주최 ‘아시아 미디어 워크샵’에서 공식 발표되기도 했다. 이번 아이셀 임상에서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타이 등지의 동양인 말기 폐암환자 342명을 이레사와 위약을 복용시킨 뒤 평균 생존기간을 분석한 결과 235명의 이레사 투약그룹이 9.5개월로 나머지 위약 투약그룹의 5.5개월 보다 4개월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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