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0 16:21
수정 : 2005.05.10 16:21
흔히 ‘충수돌기염(맹장염)도 진단 못하는 의사’를 실력 없는 의사의 대표적인 예로 말한다. 그러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충수돌기염이야말로 진단하기 매우 어려운 질병이다. 최근에는 시티(CT·컴퓨터 단층촬영)와 초음파의 발달로 진단이 바로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진단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분쟁이 많은 질환이다. 이유는 충수돌기염의 증상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충수돌기염의 증상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명치끝이라고 하는 윗배가 아프다가 메스꺼움이 생긴 뒤에 오른쪽 아랫배가 아파 온다. 충수돌기염을 진단하려면 오른쪽 아랫배를 진찰해야 알 수 있다. 윗배만 아픈 단계에서는 진단을 못하고 몇 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기도 한다. 환자들은 처음 배가 아플 때부터 충수돌기염을 진단하지 못한 의사를 의심하기 쉽다. 게다가 충수돌기염이 터져 복막염으로 번지면 환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경제적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이 때문에 복통으로 생기는 의료분쟁에서 가장 흔한 질병이 되고 말았다.
충수돌기염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와 같이 전형적인 경과는 전체 충수돌기염의 55%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 45%는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또 오른쪽 아랫배가 아플 때 어린이라면 장간막 림프절에 염증이 생긴 경우와 증상이나 진찰 소견이 거의 똑같다. 콩팥에 문제가 생긴 경우나, 여성의 경우 난소의 질병도 충수돌기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이런 이유들로 충수돌기염을 잘 진찰할 수 있으면, 복통 진단을 다 잘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복통이 수술이 필요한 응급 복통일까?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충수돌기염과 같이 아픈 부위가 옮겨 다니는 증상이 있다면 일단 응급이다. 배가 아프면서 걸을 때나 기침을 할 때 심하게 울리는 느낌이 나도 응급이다. 이는 가슴도 마찬가지여서 가슴에서 통증이 있으면서 다른 곳으로 뻗치거나, 등, 배, 가슴이 모두 아프면 응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면 심장마비의 대표적인 원인인 심근경색증은 목, 어깨, 턱 등으로 뻗치는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응급 복통의 원인으로 췌장염 및 담낭염도 있는데 이런 질병에서도 어깨 등으로 뻗치는 통증이 있을 수 있다. 또 여성의 경우 자궁외임신 파열도 흔히 아랫배와 뒤 허리가 같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응급 복통을 일으키는 질환에는 위장에 구멍이 나는 위 천공도 있다. 이 때는 조금씩 배가 아프다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갑자기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그 뒤 최고조의 통증보다는 덜 아픈 증상이 계속된다. 참고로 곪거나 염증으로 나타나는 통증은 염증 부위가 터지면 오히려 그 세기가 덜해진다. 이는 충수돌기염이나 중이염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심한 통증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응급 복통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정리하면 통증이 다른 부위로 뻗칠 때, 배나 가슴이 앞뒤로 아플 때, 가슴과 배가 같이 아플 때, 걸을 때 울리는 복통 등은 응급일 가능성이 높다.
김승열 안동성소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notwh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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