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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0 17:51 수정 : 2005.05.10 17:51

⑫ 청소년 음주·흡연의 해악

한때 캐나다에서는 청소년 흡연을 줄이기 위해 전체 물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담배 포장지에 무시무시한 해적 표시를 그려 넣고 판매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청소년들은 오히려 해적 표시가 그려진 담배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해적 표시가 청소년들의 무모한 도전 욕구를 자극해서 역효과가 난 것이다. 어떤 녀석들은 ‘해적 표시가 굉장히 멋있어서’ 그 담배를 골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소년 흡연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다.

지난 주 통계청이 발표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 고교생 중 16%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이들 흡연자 가운데 20% 정도가 하루에 반 갑 이상을 피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음주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무려 60%에 달했으며, 월 3회 이상 술을 마시는 청소년도 2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고교생 여섯 명 중 한 명은 담배를 피우고, 네 명 중 한 명이 술을 마신다는 얘기다.

2년동안 매일 2잔 술
또래 보다 기억력 10% 감소

청소년 음주와 흡연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미국의 경우, 하루 평균 6천 명의 청소년들이 새로이 담배를 피기 시작하며, 흡연 청소년의 수가 무려 45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고스란히 성인 흡연자로 성장해서 결국 각종 질병을 앓게 된다. 국가가 감당해야할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손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소년 흡연과 음주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담배와 술이 그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2년 동안 하루 평균 2잔씩 술을 마신 청소년은 술을 마시지 않은 또래에 비해 기억력이 10% 정도 줄어든다. ‘10%의 기억력 상실’이라고 하면 얼핏 들어서는 대단한 수치가 아닌 것 같지만, ‘A학점과 F학점을 가를 수도 있는 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소년 흡연과 음주가 일으킨 뇌 손상은 그 후 아무리 술과 담배를 끊는다고 해도 완전히 회복되긴 어렵다는 데 있다.

청소년 음주와 흡연은 때론 심각한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십대 시절에 골초였던 사람은 나중에 공황장애를 일으킬 확률이 15배나 높아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청소년 시절부터 담배를 피우면 쉽게 불안해지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병적인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들 불안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생각하지만, 이 연구는 담배가 오히려 흡연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십대 시절 ‘골초’ 였다면
공황자아애 일을킬 확률 15배


청소년 시기에 술과 담배를 배우면, 잘못된 습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훨씬 더 커진다. 15살 이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할 경우 성인이 되어 과음할 확률이 다섯 배나 더 높으며, 폭력에 휘말릴 가능성은 무려 열배나 더 증가한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킬 확률도 일곱 배나 더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통계청 조사에서도 청소년 음주자들은 술을 먹은 뒤 36.1%가 외박을 한 적이 있으며, 기물 파손이나 절도, 성관계 등으로 이어진 경우도 자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이토록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청소년 음주·흡연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금연·금주 캠페인을 더욱 늘려야 할까? 미국의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금연 캠페인은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한다.

청소년 흡연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회의 성인 흡연율을 줄이는 방법이다. 청소년 흡연율은 성인 흡연율이 증가하면 따라 증가하고, 줄어들면 따라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한다고 해서 성인 흡연율은 그대로인데, 청소년 흡연율만 줄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담배회사에서 청소년 금연 캠페인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도 회사 이미지에 도움을 주면서도 실질적인 금연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연구자들도 있다.

금연·금주 캠페인보다
어른들 ‘솔선수범’ 효과 커

청소년은 어른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담배를 배우고, 술 먹는 모습에서 술 먹는 태도를 배운다. 어른이 담배 피는 모습을 덜 보여주고 술을 제대로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청소년 흡연과 음주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할 것은 ‘청소년은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끝>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및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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