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7 18:17
수정 : 2005.06.07 18:17
“어느 날 ‘웃찾사’나 ‘개콘’이 끝나버리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한겨레>를 광고하는 인터넷 배너에서 이런 구절을 보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이 우리의 말과 생각, 관심사는 물론 먹을거리, 놀이 문화에까지 큰 영향을 주는 현재 상황을 확인시켜줬다는 생각에서다. 현장감을 이유로 잔인한 장면을 내보내는 뉴스, 재미를 위해 더 노골적으로 공격성을 뿜어내는 오락 프로그램이 방송의 주요 시간대를 장악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텔레비전이나 영화, 컴퓨터게임 등에서 보여주는 폭력은 청소년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로 이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동영상 매체의 폭력 장면에 저항력이 특히 약한 사람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영국 버밍엄대학의 두 학자가 폭력과 어린이 정신건강의 관계에 대해 북미 지역에서 진행된 여러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가 최근 <랜싯>지에 발표됐다. 이 결과에서도 텔레비전, 영화, 게임 등에 나오는 폭력이 어린이의 사고와 감정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결론이 나왔다. 폭력 이미지는 어린이, 특히 남자 어린이가 공격적이거나 두려워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영상 매체의 폭력 장면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는 성별 외에 성격, 가정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이가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자라거나 직접 폭력의 희생자 또는 목격자라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동영상 매체의 폭력이 공격성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두려움의 감정도 함께 자극한다. 폭력 장면에 많이 노출될수록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진다. 또 폭력으로 나타난 비참한 결과와 희생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것도 문제다. 컴퓨터게임의 가상세계가 점점 더 정교하게 돼 게임 캐릭터와의 일체감이 높아지면서 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몇몇 사안에 대해 한정된 시각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폭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정신 질환자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일쑤지만, 몇몇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 정신 질환자가 보통 사람에 비해 덜 폭력적이라는 증거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런 동영상 매체의 폭력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려면 부모들이 부지런해야 한다. 아이들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하루 한두 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아이가 본 프로그램이나 게임의 종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폭력 장면을 봤다면 아이의 눈높이에서 올바른 인간관계나 정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칫 세상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환경과건강 대표(
www.enh21.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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