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28 18:53 수정 : 2006.02.28 15:15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 이용우씨

심할 땐 하루 수십번 경련…직장대신 아들 ‘다시 찾아’
“사회네 필요한 존재로 남은 인생 살겠다”

“온몸이 아픈데 병원에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고….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아내 덕분에 삶의 의지를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병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나의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죠.”

이용우(36·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씨는 2002년부터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보기 드문 질병을 앓고 있다. 이 병은 교통 사고와 같은 큰 외상이나 수술 뒤 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주된 증상이다. 한 번에 10~20분 가량, 심할 때는 30분 이상 지속되는 통증이 하루에 수십번 오기도 한다. 뇌의 이상 신호로 증상이 나타나는 간질과 증상이 일부 비슷해 진단도 쉽지 않다.

이씨는 2002년 3월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나뒹굴었고, 얼마 뒤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냈다. 그 뒤로 이씨는 온몸에서 심한 근육통을 느꼈다. 경련도 종종 나타났다. 여러 병·의원을 찾았지만 속시원히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동차보험회사에서 꾀병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이름난 종합병원과 대학병원들은 거의 다 찾아 다닌 끝에 그해 10월 서울대병원에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미국으로 날아갔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메디컬센터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치료를 시작했다. 현재 목의 척수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줄이는 기계를 왼쪽 위 가슴에 이식한 상태이고, 통증 및 근육의 강직을 조절하는 약을 먹고 있다. 통증은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었으나, 요즘도 가끔 온몸이 아프고 쉬이 피로해진다. 직장은 그만뒀고, 가끔 들어오는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아르바이트와 집안 일을 하고 있다.

“진단을 위해 병원을 찾아다니고 치료를 하느라 재산을 모두 날렸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저는 집에서 아이를 돌봅니다.”

이씨는 병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을 위로로 삼는다. 그는 1996년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개인 사업을 시작해 한달에 1000만~2000만원을 벌었다.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은 물론 없었고,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4년동안 정신없이 번 돈은 병으로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40만원의 월세가 낀 전셋집에서 산다. 이제는 가정의 주된 수입원도 아내다. 서울의 한 개인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가 한달에 200만원 정도를 벌며, 이씨의 약값 및 살림 비용을 댄다. 그래도 이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병으로 참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이씨는 아들과 함께 놀 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개인 사업을 할 때 아이와 논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아버지처럼 아이를 업거나 안아주지 못하지만 이씨는 함께 산책하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보살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이씨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유전될 가능성은 없어, 아들에게 대물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고 했다.

병명을 알게 되기까지 육체적,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이씨는 다른 환자들이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50여명의 환자를 모아 환우회를 만들었고 인터넷(crps.co.kr) 사이트를 통해 영국, 미국, 덴마크, 뉴질랜드 등 외국 환우회와 교류도 한다. 자동차 사고와 관련이 있는 질병이므로 자동차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회원을 지원하는 일도 맡고 있다. 이씨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자신을 포함한 환우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다.

“힘쓰는 일을 하지 못할 뿐이지, 두뇌 활동 등은 다 멀쩡한 상태입니다. 주장해야 할 것도 많지만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남은 인생을 살 계획입니다.”

안양/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병과 친구하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