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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9 17:50 수정 : 2006.02.28 15:14

“마음만은 절대 굳지 않습니다” 피가 잘 굳지 않는 혈우병으로 팔, 다리 관절의 장애까지 입었지만 박상호씨는 이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 혈우병 환자 박상호씨

병 다스리며 내면의 ‘신’ 봤다…고학끝 신학대학 나와
장애인 봉사활동 땀 뻘뻘…“세상에 대해 겸손해졌죠”

 “어릴 때 혈우병인지 몰라 팔, 다리에 장애까지 생겼지만, 지금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답니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호(43·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씨는 혈우병 환자다. 지체장애도 겪고 있다. 혈우병은 피가 굳는데 필요한 응고인자가 선천적으로 부족해 쉽게 출혈이 생기는 유전병이다. 특히 팔, 다리의 관절에서 출혈이 잘 일어난다.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팔, 다리의 관절이 자주 아팠지만 원인을 알지 못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결국 팔, 다리의 관절이 변형돼 제대로 펴지지 않는 장애를 입게 됐다.

요즘은 한달에 5~6차례 정도 혈액 응고인자를 정맥에 주사하면서 스스로 출혈을 조절하는 ‘자가 치료자’가 됐다. 혈액응고인자를 보충해야 할 시점까지도 예측해 약물치료를 할 정도로 ‘전문가’가 됐지만 혈우병으로 진단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팔, 다리가 자주 아팠다.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다 먹어도 통증은 잡히지 않았다. 이곳저곳 병원을 다녔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한의원에도 다녔다. 뜸을 뜨고 침을 맞고 보약도 먹었지만 이 또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팔다리가 자주 아파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몸이 아파 밥 먹듯이 학교 수업을 빼먹을 수 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는 팔, 다리 관절이 너무 아파서 휴학을 거듭했고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처음에는 학교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즐거웠는데 나중에는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 나이에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리가 아파 나다니지 못해 무척이나 외로웠던 그때가 제 삶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지 않았나 싶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동안 박씨는 주로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우연히 백과사전을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혈우병의 증상이 자신과 똑같았다. 그는 수소문 끝에 관련 전문의를 만나 진단을 받게 됐다. 그러나 당장 치료를 받지는 못했다. 치료비나 약값이 너무 비쌌다. 약물 치료를 해도 당장 낫는 것도 아니어서 참고 지냈다. 약물치료는 1990년께 혈우병 관련 재단이 생겨 환자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 뒤부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박씨는 자신의 병명을 알면서부터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검정고시 등을 통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동병상련의 마음에 다른 이들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 의과대학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지만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앙 생활을 통해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게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학대학을 택했다. 대학에 다닐 때도 몸이 아파 두 번이나 휴학을 해야 했지만 그는 잘 이겨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자신이 느끼는 장애인의 아픔, 불편 등을 해결하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장애인을 위한 선교단에 들어가, 아동에서 노인까지 힘들고 외로운 이들을 대상으로 상담, 교육, 여가 복지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수년 간의 봉사활동 경험은 그를 안산에 새로 생긴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이끌었다. 그는 올해로 6년째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평생 지니고 가야 할 유전병인 혈우병을 앓고 있지만 그는 10여년 전에 결혼도 했다. 혈우병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적인 편견으로 아예 결혼도 꿈꾸지 않는다.

“평생 환자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결혼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활동하던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처가에서 반대하기는 했지만 질병과 장애에 대해 있는 그대로 다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함께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지요.”

병으로 걷기가 불편하지만 박씨는 그런 장애를 통해 오히려 세상에 대해 겸손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자신의 삶이 봉사하는 길로 인도됐다고 여기고 있다.

“난치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낙인찍기보다 이를 다양함으로 수용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가 돼야죠. 작은 힘이지만 저의 노력이 그런 사회를 앞당기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안산/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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