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이 따져보면 보장성 구멍 숭숭…소송·분쟁 잇따라
민영의료보험이 주춤하는 데는 보험사들이 암 보험 등에 가입한 소비자들과 보상을 놓고 끊임없는 분쟁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센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보험 관련 민원은 4만5401건으로 2003년 3만3144건보다 37%나 늘었다. 가입자들이 시간이 흘러 암이나 중증질환 등 보험에서 보상해야 할 질환을 얻는 일이 많아지면서 보험 관련 민원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중증질환의 대표적 예인 뇌졸중을 둘러싸고 많은 분쟁 사례가 보험소비자협회에 접수되고 있다. 김영순(66·여)씨는 1998년 00보험사에 가입해, 달마다 6만원 가량의 보험료를 냈다. 2002년 8월 머리가 아프고, 의식이 흐려지는 등의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더니 ‘열공성 뇌경색증’으로 진단됐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경황이 없어 2004년 6월에야 해당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에서는 가벼운 뇌졸중이므로 좀 더 심해지면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보험소비자협회는 “해당 보험의 약관을 확인해 보니, 열공성 뇌경색증도 보험금을 주도록 돼 있다”며 “즉각 다시 청구하고, 안 되면 분쟁조정 신청 등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협회는 또 “요즘 상당수 민영보험에서는 아예 뇌경색증을 급여 항목에서 뺀 경우도 많다”며 “설계사들이 중풍에 대해 보장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뇌출혈만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흔히 중풍이라 불리는 뇌졸중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그 원인이 뇌경색인 경우가 뇌출혈인 경우보다 많아졌으며,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건보공단의 2003년 급여실적 자료를 보면 한해 동안 뇌출혈은 7만560명이 발생했지만, 뇌경색증은 그보다 4배 가량 많은 28만4810명에게서 발생했다. 관련 전문의들은 서구식 생활 습관에 따라 뇌출혈보다 뇌경색증의 차이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 민영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미래에 뇌졸중이 생기면 보상 받을 가능성이 더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병마와 씨름하는 암 환자들이 보험금 관련 소송으로 이중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다. 급성백혈병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고 있는 김창영(35·남)씨는 1992년 00생명의 암 보험에 3구좌를 가입해 매달 보험료를 17만원씩 냈다. 2000년에 급성백혈병을 진단받았으며, 진단금과 치료비를 계속 받았다. 그러던 중 항암제 치료에 꼭 필요한 중심정맥관 수술이 치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판결을 받아,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중심정맥관수술은 가는 정맥에 항암제를 투입할 수 없어 가슴 근처 큰 정맥에 항암제를 투여하기 위해 하는 수술이다. 김씨는 “처음부터 이 수술에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면 그나마 이해하겠지만 5차례나 보상해주다가 중단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암 치료에 꼭 필요한 수술을 직접적인 치료가 아니라고 보상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아파트 등을 모두 팔았으며, 현재는 3천만 가량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권성기 한국백혈병환우회 회장은 “김씨 같은 처지의 백혈병 환자가 10명 남짓 된다”며 “이들과 함께 소송을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험 관련 민원이나 분쟁이 많은 이유는 보험 약관이 매우 어려워서 소비자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가입하는데 있다. 대부분 주변의 친척이나 지인인 보험설계사로부터 권유를 받아 이들만 믿고 가입하기 때문이다.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회장은 “보험회사들이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일단 소비자들을 가입시키기에만 급급하고 있어 이런 민원이 많아지고 있다”며 “실제 보험설계사도 보험 약관의 질병을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진석 충북의대 교수는 “의료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질병에 대한 지식 차이”라며 “이는 보험에도 똑같이 적용돼 질병의 발생율, 치료 과정, 예상 치료비 등을 잘 모르는 소비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을 선택하기 무척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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