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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6 16:54 수정 : 2006.02.28 15:13

자신도 간 이식 수술을 받았던 홍영희(오른쪽)씨가 10살 딸 아이의 간 이식 수술을 앞둔 아버지와 병원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간이식받고
새 삶찾은
홍영희씨

 “아빠 살린다고 딸이 간을 내놨어요. 자식의 간을 받고 더 살고픈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차마 수술장에 들어갈 수가 없어 얼마나 버티고 버텼는지…. 그 때를 돌아보며 간 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의 고통을 상담을 통해 함께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홍영희(53·성남시 이매동)씨는 2002년 3월 딸의 간을 이식받았다. 1996년 진단받았던 간경화가 그해 들어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배 안에 물이 차기도 했으며, 식도 혈관이 터져 피를 토하거나 생명이 위급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담당 의사는 간 이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상 간은 20~30% 이상만 남으면 대부분 정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생체 간 이식이 가능하다. 그는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간을 찾기 시작했다. 간을 떼 주는 수술을 받을 사람은 역시 가족밖에 없었다.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적다. 두 딸 가운데 첫째가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인생에서 한창인 건강한 20대 딸이 15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 홍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가족들 설득으로 결국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 뒤 3~4달이 지나자 웬만큼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매일 아침 일찍 빨리 걷기나 자전거 타기 같은 운동도 한 시간 가량 한다. 다행히 딸도 아무런 부작용없이 잘 회복됐다. 몸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삼성서울병원에서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상담 봉사활동을 한다. 딸의 간을 받는 아버지의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속앓이를 했던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다. 이제 매주 금요일이면 상담을 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상담실 앞에서 그를 미리 기다리고 있다. 그를 찾는 사람들도 하루 5~6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병원 9~10층에 입원한 간 질환 환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희망과 위로를 건넨다.

생과 사 갈림길 몸부림…사람 살리는 ‘사람의 소중함’
상담하며 깨달음 나누고 환자·가족 마음 치료한다

홍씨가 상담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람의 소중함’이다. 뇌사자보다는 거의 대부분 살아있는 사람이 간을 내주고 있어, 수술마다 그 자체로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요 소설이었다. 며느리한테 간 이식을 받을 예정인 시어머니와 이들을 바라보며 수술을 말리지도 권하지도 못했던 아들도 그를 찾았다.

 “뭐라 위로할 수 없는 사연이어서 묵묵히 들어주며 손을 잡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간 질환으로 치료를 받으며 재산을 모두 날려 부인이 집을 나간 환자도 있었다. 그도 결국 가까운 친척에게 간 이식을 받아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한 살짜리 아이가 이식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과 불안도 치료가 필요하다. 그는 상담을 통해 그런 이들의 마음을 치료해준다.

 “면역학적으로 거부반응이 없는 조직을 못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을 떼어 줄 사람은 구했는데 수술비가 없는 사람도 있어요. 몇 푼 안 되지만 제가 가진 돈을 조용히 건네 주기도 한답니다.”

간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홍씨는 청각장애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월남전에서 대포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 청각 장애를 얻었다고 한다. 보청기도 벌써 25년째 쓰고 있다. 평생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임한 뒤에는 아예 보청기 회사를 차렸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6년 밖에 안 된 청각학을 대학원을 다니며 배우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두 딸도 모두 청각학 박사들이며 대학에서 사회복지 관련 강의도 하고 있다.

회사를 차렸지만 홍씨는 무료 보청기 전달 사업이 더 의미 있고 기쁘다고 했다.

 “보청기를 들고 전국을 다녔어요. 소록도 주민들에게도 보청기를 드렸고요. 보청기를 끼고서 부인 말을 알아듣게 됐다며 좋아하던 한 시골마을의 할아버지와 동네 마실 다닐 수 있어 좋다는 할머니 등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이 많습니다.”

현재 홍씨는 간 이식 수술과 보청기로 두 번이나 새 삶을 살게 됐다. “남은 삶은 남들에게 도움 되라고 신이 남겨 주신 것 같아요. 이미 그럴만한 은혜를 받았고요. 작은 힘이지만 청각 장애,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들 곁에서 살아 가렵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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