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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2 16:14 수정 : 2006.02.28 15:12

황문준 김숙자 부부는 규칙적인 운동과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라고 말한다.

■ 황문준·김숙자씨 부부

황문준(70) 김숙자(71·여)씨 부부는 병원이 낯설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몸이 조금만 찌뿌드드하면 병원부터 찾는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도 이 병원 저 한의원을 다닌다. 하지만 황씨 부부는 건강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황씨가 운동을 하다 발목을 삐어 치료받은 것을 빼면 두 사람은 병원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노환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맞고 있다. 병도 삶의 일부라고 여긴다. 다만 건강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정성껏 한다. 꾸준한 운동, 채식 위주의 식사,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기 등이다.

두 사람의 건강법이 똑같지는 않다. 황씨는 매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손바닥과 주먹으로 아랫배를 1천 번 두드린다. 아들이 가르쳐준 운동이다. 소화가 되지 않아 3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안방에는 숫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1부터 10까지 숫자를 써붙여 놓았다. 100번까지는 1을 쳐다보고, 101번부터는 2를 바라보며 배를 두드린다.

“처음에는 배에 멍이 들었습니다. 사흘 째 멍이 사라지고 지금은 소화에 문제가 없어요.”6시부터는 불경을 읽는다.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기도도 한다. ‘만사가 잘된다. 좋아진다. 건강해진다.’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아령, 팔굽혀펴기, 목운동 등도 틈나는 대로 한다.

“집에서 죽겠다” 퇴원한 뒤 맘놓으니 암 극복한 아내
독학으로 디스크 고친 남편…“즐겁게 살자” 생각이 보약

김씨는 5시쯤 일어나 부근 석관고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걷기를 마친 뒤에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을 한다. 친구들 모임에도 가고 등산도 자주 한다. 장보기는 운동과 나들이를 겸해 경동시장까지 간다. 가능하면 집에 있지 않으려 한다. 운동보다 “마음 편히 대범하게 생각하는 것”을 건강의 비결로 든다. 식사는 콩, 좁쌀, 수수 등 잡곡을 섞은 밥과 야채를 많이 먹는다. 반찬은 싱겁게 하고 된장과 청국장을 자주 먹는다. 생선은 먹지만 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

두 사람이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병을 앓고 난 뒤부터다. 부인 김씨는 암을 앓았다. 1991년이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다 자궁에서 피가 나와 동네 병원을 거쳐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자궁암 4기. 담담 의사는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여서 방사선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입원 뒤 1개월 동안 3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뒤 올라오지가 않았다. 임파선이 붓고 입안이 바짝 말라 말도 제대로 못했다.

“자고 나면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겁니다. 죽은 거지요. 죽어도 집에서 살다 죽고 싶었습니다.”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퇴원했다. 임파선이 부은 것은 몸이 외부 자극에 반응을 할 정도로 아직 몸에 생명력이 남아있다는 뜻이니 집에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아들의 말도 힘이 됐다.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말과 달리 김씨는 지금도 건강하다. 퇴원한 지 1년 뒤 죽기 전에 이민간 딸이 사는 하와이에 놀러갔다 사돈의 권유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 암세포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돌아와서도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처음 종합검사를 받을 때 힘들었던 기억 탓에 “그냥 이대로 살다 죽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그도 모른다. 추측할 뿐이다.

그는 22살에 시집와 젊어서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 아래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 시어머니가 당뇨를 앓자 병구완도 그의 차지였다. 좋다는 데가 있으면 어디든지 모시고 갔다. 그런 힘든 생활을 말대꾸 한마디 못하고 살았다. 남편과 자녀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자궁암을 진단 받은 뒤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저는 평생 어머니께 사랑만 드리고 살았는데 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에 걸렸어요.”라고 대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남편, 자녀 모두 그런 그를 보듬어주고 지난날에 잘못한 일을 빌었다.

“아프니까 가족들의 사랑도 받고, 그 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상처가 병이 됐고, 아플 때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병이 나은 것 같습니다.”

황씨도 목 디스크로 고생을 했다. 붓글씨를 써서 가족을 부양해 온 그는 15년 전쯤 오른쪽 어깨와 목에 마비가 왔다. 혈압도 높았다. 붓글씨를 쓰면서 한쪽 팔을 혹사시킨 탓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붓글씨를 배워 박정희에서 노태우까지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 초청장과 정부 기관의 각종 담화 그리고 각급 기관의 상장과 초청장 등을 붓글씨로 썼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고 나을 기약도 없자 퇴원해 집에서 혼자 치료를 했다. 책을 뒤져 침과 부항도 스스로 놓고 언론에 보도되는 치료법 가운데 혼자 할 수 있는 방법은 대부분 시도해보면서 병을 고쳤다. 지금도 언론에 나오는 건강법은 꼼꼼히 챙겨 직접 해본다.

“사는 동안은 쓸 데 없이 근심걱정하지 않고 즐겁게 살자고 생각합니다.” 두 부부의 건강비결이다.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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