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3 17:16
수정 : 2005.08.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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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일한 치과의사 보건소장인 유영아씨. 저소득층 및 장애인 치과 진료를 하다가 이 길로 들어선 그는 요즘 무엇보다도 치아 건강을 위한 예방 사업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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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유일 치과 보건소장 유영아씨
개업의 길 들었다가 보건소 인연 12년째…법규 바꾸며 소장까지
“돈이 없어 치과에 가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다보니 보건소장의 자리에서 충치 예방 등 구강보건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유영아(51·대구시 범어동)씨는 치과의사 출신 보건소장이다. 벌써 6년째 대구 남구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 240여개 보건소에서 의사가 보건소장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치과의사 출신 보건소장은 그가 최초이며 유일하다. 치과 의사지만 생활이 어려운 계층의 진료 및 방문간호사업, 고혈압 및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관리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남구 보건소 사업 및 주변 사정은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 또한 전문 분야인 치과 쪽으로는 산모의 충치 균이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 사업, 장애인 치과 진료 사업, 초등학교 등의 아이들 대상 구강보건사업 등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 등 여러 차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가 ‘돈되는’ 개업 치과의사라는 길을 버리고 보건소장으로서 일한 데에는 이전 수성구 보건소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유 소장이 치과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개업의 길을 시작했던 1970년대 말만 해도 당시 대구에는 치과의사가 많지 않았다. ‘갈고리로 돈을 긁어 모은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일 정도였다. 이런 그에게 당시 수성구 보건소에서 치과의사를 찾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보건소에 치과 장비는 다 갖춰졌는데, 의사가 없어 8년째 놀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보건소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에게 일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당시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저소득층은 일반 치과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살림 형편이 못 돼 보건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현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후임이 정해지면 그만 두겠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했지만 결국 12년 동안이나 일하게 됐다. 그 동안 하루 평균 5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혼자 진료하기에 버거운 숫자였지만 생활보호대상자가 소문을 듣고 밀려오는 데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저소득층 치과진료 예방사업 절실
“한 번 망가지면 비용 막대…보건소서 기초부처 튼튼히”
“보건소에 근무하는 치과 의사가 한 명이라 휴가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생활보호대상자 같은 저소득층은 치아 건강이 더 좋지 않거든요. 아이가 둘인 엄마인데도, 아이들 소풍 같은 학교 행사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어요.”
이런 저소득층 치과 진료를 통해 유 소장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예방 사업이었다. 어릴 적 간니 등이 한참 자랄 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거나, 치석 등을 적절히 제거하지 못해 생긴 치과 질환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질병이 생긴 뒤에는 치료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예방 사업만 제대로 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지요.”
그는 보건소장이 돼 지역 사회에서 구강보건사업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시 보건소 관련법으로는 치과의사는 보건소장을 할 수 없었다. 1994년부터 여러 차례 보건복지부에 문의했고, 1998년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러 차례 방문 끝에 결국 1999년 관련법이 개정됐다. 치과의사는 물론, 한의사 등도 보건소장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그 뒤에도 일부 의사 단체의 반대와 치과 의사가 일반 진료 및 건강증진 사업을 제대로 해내겠느냐는 행정기관의 편견으로 보건소장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치과의사 출신인 대구 남구청장의 ‘결심’으로 1999년부터 이곳 보건소에서 일하게 됐다.
보건소장이 된 뒤에는 마음껏 구강보건사업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 충치의 주범은 산모의 입 안에 있는 균이 옮겨가기 때문이라는 보고서들이 나온 뒤에는 이를 교육하기 위해 임신부 구강보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평소 알고 지냈던 치과의사 및 치위생사를 동원해 어린이집 및 관내 11개 초등학교에서 치아 검사, 불소용액양치사업, 치아홈메우기 등을 해주고 있으며, 그 결과를 일일이 가정에 알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가정이 함께 나서야만 치아 건강이 제대로 지켜지기 때문이다. 이미 치아 건강이 망가진 저소득층 및 장애인 치과 진료 사업도 펼치고 있으며, 무료틀니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번 망가지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치아 건강, 우리 보건소에서 기초부터 튼튼하게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치과의사의 길이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 갈 것입니다.”
대구/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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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동안 피웠던 담배도 끊었심더”
금연클리닉 성공사례 여럿…노인 건강증진사업도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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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동안 담배를 피웠던 곽재욱씨가 금연클리닉을 통해 담배를 끊었다며, 금연상담사(사진 중앙)와 보건소장(사진 오른쪽)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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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소, 보건소 덕분에 55년 동안이나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아입니꺼? 바쁘다카는 보건소장 식사 대접 할라꼬 내 이리 왔심더. ”
18일 남구 보건소는 곽재욱(74·대구시 봉덕동)씨의 목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별 짓을 다 해도 끊을 수 없는 담배를 보건소장과 금연 상담사 덕분에 끊었다며 식사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왜 빨리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곽씨는 “그동안 보건소는 저소득층만 이용하는 곳인 줄 알아 한번도 찾지 않았는데, 이번 금연클리닉 이용 덕분에 벌써 석 달째 담배를 끊고 있다”며 “금연상담사 권효정씨가 전화해서 매일 용기를 주고, 보건소에서 주는 약과 패치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 보건소 이명숙 건강증진 담당은 “지난 3월에 시작한 사업인데 40~50년 흡연자가 가운데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여럿 돼 곽씨처럼 보건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벌써 1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금연클리닉 사업뿐만 아니라 남구보건소는 노인들을 위한 건강증진사업을 많이 펼치고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10%를 넘어 대구의 다른 구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곳 보건소를 찾은 환자 진료는 기본이고, 고혈압 및 당뇨 환자 관리 사업도 진행하고 있으며, 움직이기가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서는 방문진료 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시 7개 보건소 평가에서도 6년 동안 1등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유 소장은 “의사나 일반 공무원 출신 소장 못지않게 치과 외 분야에서도 욕심껏 보건소를 운영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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