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보자” 독한결심…운동으로 술생각 날려 지금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지만 최씨의 알코올 중독은 경제적 어려움과 택시 기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에서 시작됐다. 1996년 이전에는 서울의 한 상가에서 지방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업을 하고 있어 ‘잘 나가는 사장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외환 위기가 닥쳐 오면서 경기는 땅에 떨어졌고, 결국 그도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시작한 일이 택시기사였다. 그러나 택시 기사 수입으로는 친동생의 학비도 대기 힘들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셔도 술값을 한 번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들도 피하게 됐다. 대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혼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안주도 거의 사지 못해 매일 깡소주를 마셨습니다. 혼자 술 마시다 보니까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고 점차 술독에 빠져 들었지요.” 술에 취하다 보니, 갈수록 택시 기사 일도 힘들어졌다. 게다가 체력도 망가져, 교대 근무를 못 채우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은 더 떨어지고, 그럴수록 술을 더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환청이 들리기도 했으며, 헛것이 보일 때도 있었다. 목포 앞 바닷가에 뛰어드는 자살도 시도했지만, 119구조대에 구조되는 사건도 겪었다. 술 때문에 최씨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됐다. 기억할 수 없었지만 취해서 동생들한테 폭력을 쓰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도 폭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5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도 술 때문에 떠나갔으며, 조카도 술 냄새 난다며 멀리 피했다. 이 정도 되자 결국 술 끊을 결심을 하게 됐고, 주변의 권유대로 광주에 있는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을 찾았다. “병원의 치료와 개인적인 결심으로 술을 끊었습니다. 병원에서 알코올 관련교육을 받으면서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었죠. 병원에서 다른 환우들과 단주 모임 활동도 같이 했고요. 퇴원 뒤에도 같이 축구를 하면서 서로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퇴원 뒤부터 지금까지 아예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최씨는 스트레스 등을 받아 술 생각이 나면 운동으로 풀었다. 택시기사를 다시 하면서도 회사의 양해를 얻어, 오후 3시에 단주 모임 회원들과 축구를 했다. 땀을 흘리고 나면 술 생각도 멀리 사라졌다. 이 동아리 활동으로 병원과 이어지다보니 지난해 10월 현재의 보호사로 오게 됐다. 요즘도 최씨가 알코올을 멀리 하는 방법으로 가장 즐기는 것이 축구 같은 운동이다. 그 덕분에 예전 체력도 거의 회복했다. 중독 시절 식사 등도 못해 60㎏ 정도로 매우 말랐는데, 요즘에는 67~68㎏으로 좋아졌다. 남들은 술을 마시는 병원의 회식에 참가해도 사이다 같은 음료수를 마신다. 그는 또 소주 먹는 자리에서는 콜라를, 맥주 마시는 자리에서는 사이다를 마셔 색깔의 차이를 두면서 술을 끊었음을 분명히 보인다. 최씨는 “알코올 중독도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에서 암과 같은 질병으로 생각한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바뀌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양의 술은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의왕/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의료·건강 |
5년간 술독서 허우적…이젠 남의 삶 건져냅니다 |
■ 알코올질환 전문병원 보호사 최정재씨
“제 경험이 힘이 된다니까 아예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술독에 푹 빠져 있었던 사람들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는 모습 보면서 보람 찾고 있어요.”
최정재(39·광주시 양산동)씨는 현재 보건복지부 선정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 기숙사에 살면서 이 병원 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환자들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 상담을 나누기도 하며, 환자의 의식주나 이동 등을 돕고 있다. 또 이 병원에 입원한 알코올 중독 환자들과 같이 족구, 축구, 배구 등을 하면서 운동도 시키고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환자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운동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5년 정도 술에 푹 빠져 있었던 환자였던 그가 이제는 알코올 중독 환자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최씨에 대해 이호영 다사랑병원 원장은 “본인의 결심과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긍정적인 사고로 단주를 매우 잘 유지하고 있다”며 “알코올 의존증 환자 경험이 이곳 병원의 질병 치료에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사 접고 택시 몰며 깡소주에 폐인같은 삶
“끊어보자” 독한결심…운동으로 술생각 날려 지금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지만 최씨의 알코올 중독은 경제적 어려움과 택시 기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에서 시작됐다. 1996년 이전에는 서울의 한 상가에서 지방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업을 하고 있어 ‘잘 나가는 사장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외환 위기가 닥쳐 오면서 경기는 땅에 떨어졌고, 결국 그도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시작한 일이 택시기사였다. 그러나 택시 기사 수입으로는 친동생의 학비도 대기 힘들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셔도 술값을 한 번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들도 피하게 됐다. 대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혼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안주도 거의 사지 못해 매일 깡소주를 마셨습니다. 혼자 술 마시다 보니까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고 점차 술독에 빠져 들었지요.” 술에 취하다 보니, 갈수록 택시 기사 일도 힘들어졌다. 게다가 체력도 망가져, 교대 근무를 못 채우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은 더 떨어지고, 그럴수록 술을 더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환청이 들리기도 했으며, 헛것이 보일 때도 있었다. 목포 앞 바닷가에 뛰어드는 자살도 시도했지만, 119구조대에 구조되는 사건도 겪었다. 술 때문에 최씨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됐다. 기억할 수 없었지만 취해서 동생들한테 폭력을 쓰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도 폭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5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도 술 때문에 떠나갔으며, 조카도 술 냄새 난다며 멀리 피했다. 이 정도 되자 결국 술 끊을 결심을 하게 됐고, 주변의 권유대로 광주에 있는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을 찾았다. “병원의 치료와 개인적인 결심으로 술을 끊었습니다. 병원에서 알코올 관련교육을 받으면서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었죠. 병원에서 다른 환우들과 단주 모임 활동도 같이 했고요. 퇴원 뒤에도 같이 축구를 하면서 서로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퇴원 뒤부터 지금까지 아예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최씨는 스트레스 등을 받아 술 생각이 나면 운동으로 풀었다. 택시기사를 다시 하면서도 회사의 양해를 얻어, 오후 3시에 단주 모임 회원들과 축구를 했다. 땀을 흘리고 나면 술 생각도 멀리 사라졌다. 이 동아리 활동으로 병원과 이어지다보니 지난해 10월 현재의 보호사로 오게 됐다. 요즘도 최씨가 알코올을 멀리 하는 방법으로 가장 즐기는 것이 축구 같은 운동이다. 그 덕분에 예전 체력도 거의 회복했다. 중독 시절 식사 등도 못해 60㎏ 정도로 매우 말랐는데, 요즘에는 67~68㎏으로 좋아졌다. 남들은 술을 마시는 병원의 회식에 참가해도 사이다 같은 음료수를 마신다. 그는 또 소주 먹는 자리에서는 콜라를, 맥주 마시는 자리에서는 사이다를 마셔 색깔의 차이를 두면서 술을 끊었음을 분명히 보인다. 최씨는 “알코올 중독도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에서 암과 같은 질병으로 생각한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바뀌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양의 술은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의왕/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끊어보자” 독한결심…운동으로 술생각 날려 지금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지만 최씨의 알코올 중독은 경제적 어려움과 택시 기사라는 직업적 특수성에서 시작됐다. 1996년 이전에는 서울의 한 상가에서 지방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업을 하고 있어 ‘잘 나가는 사장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외환 위기가 닥쳐 오면서 경기는 땅에 떨어졌고, 결국 그도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시작한 일이 택시기사였다. 그러나 택시 기사 수입으로는 친동생의 학비도 대기 힘들었다. 게다가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셔도 술값을 한 번 낼 형편도 되지 않아 친구들도 피하게 됐다. 대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혼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안주도 거의 사지 못해 매일 깡소주를 마셨습니다. 혼자 술 마시다 보니까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고 점차 술독에 빠져 들었지요.” 술에 취하다 보니, 갈수록 택시 기사 일도 힘들어졌다. 게다가 체력도 망가져, 교대 근무를 못 채우는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은 더 떨어지고, 그럴수록 술을 더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환청이 들리기도 했으며, 헛것이 보일 때도 있었다. 목포 앞 바닷가에 뛰어드는 자살도 시도했지만, 119구조대에 구조되는 사건도 겪었다. 술 때문에 최씨는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됐다. 기억할 수 없었지만 취해서 동생들한테 폭력을 쓰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도 폭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5년 동안 사귀던 여자 친구도 술 때문에 떠나갔으며, 조카도 술 냄새 난다며 멀리 피했다. 이 정도 되자 결국 술 끊을 결심을 하게 됐고, 주변의 권유대로 광주에 있는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을 찾았다. “병원의 치료와 개인적인 결심으로 술을 끊었습니다. 병원에서 알코올 관련교육을 받으면서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이었죠. 병원에서 다른 환우들과 단주 모임 활동도 같이 했고요. 퇴원 뒤에도 같이 축구를 하면서 서로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퇴원 뒤부터 지금까지 아예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최씨는 스트레스 등을 받아 술 생각이 나면 운동으로 풀었다. 택시기사를 다시 하면서도 회사의 양해를 얻어, 오후 3시에 단주 모임 회원들과 축구를 했다. 땀을 흘리고 나면 술 생각도 멀리 사라졌다. 이 동아리 활동으로 병원과 이어지다보니 지난해 10월 현재의 보호사로 오게 됐다. 요즘도 최씨가 알코올을 멀리 하는 방법으로 가장 즐기는 것이 축구 같은 운동이다. 그 덕분에 예전 체력도 거의 회복했다. 중독 시절 식사 등도 못해 60㎏ 정도로 매우 말랐는데, 요즘에는 67~68㎏으로 좋아졌다. 남들은 술을 마시는 병원의 회식에 참가해도 사이다 같은 음료수를 마신다. 그는 또 소주 먹는 자리에서는 콜라를, 맥주 마시는 자리에서는 사이다를 마셔 색깔의 차이를 두면서 술을 끊었음을 분명히 보인다. 최씨는 “알코올 중독도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에서 암과 같은 질병으로 생각한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사회의 문화도 바뀌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양의 술은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의왕/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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