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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3 18:40 수정 : 2006.02.27 15:17

뇌졸중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말을 할 수도 없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홍순본씨.

■ ‘뇌졸중 화가’ 홍순본 씨

“멀쩡하던 사람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도 잘 못하고 팔다리가 마비됐다면 스스로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다행히 그림을 그리면서 몸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답답함도 녹이고 뇌졸중의 여러 증상도 많이 좋아졌어요.”

뇌졸중 후유증을 겪으면서 현재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는 홍순본(66·서울 은평구 응암동)씨에 대해 부인 정호희(61)씨는 이렇게 말했다.

홍씨는 10여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쓰러지기 전에는 아픈 곳 하나 없어 병원을 찾은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당시 홍씨는 건축 설계 관련 일을 한참 하고 있었다. 홍씨 부부는 홍씨가 새로운 공사 등 여러 업무를 맡게 돼 과로한 날이 많았으며, 게다가 부인 정씨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는 등 여러 스트레스로 뇌졸중이 생긴 것으로 설명했다. 의식이 회복된 뒤 홍씨는 말을 하지 못했으며 오른쪽 팔다리의 마비 증상을 겪게 됐다. 국립재활원 등 여러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서 팔다리 마비 증상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부터 10까지 숫자를 써도 4와 7은 빼놓고 쓰는 등 기억력도 나빠지고 논리적인 사고도 못하게 됐다.

정씨는 “건축 설계 일을 하던 남편이라 그렇게 세심하고 빈틈이 없었는데, 숫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먹는 것만 찾아 마음 아프기 그지 없었다”고 말했다. 재활 치료 뒤 정씨는 4년 넘게 한글을 다시 가르쳤다. 그러나 말은 여전히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글쓰기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때문에 홍씨 부부는 간단한 그림으로 의사표현을 하곤 했다. 홍씨는 그림으로 먹고 싶은 것 등 필요한 것을 요구하곤 했다. 그러다가 그림 그리기가 점차 익숙해졌으며, 취미 활동처럼 집에 있는 달력 사진 등을 보면서 따라 그리기도 했다. 이에 정씨는 그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게 하려고 5년 전부터 미술학원에 다닐 것을 권하게 됐다.

처음에는 부인이 학원까지 함께 다녔지만, 지금은 버스 등을 이용해 홍씨 혼자 혜화동에 있는 미술학원에 일주일에 두번씩 다니고 있다. 오른손이 움직이기 불편해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 동안 그림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사단법인 서화아카데미 등이 여는 여러 전시회에 출품해 수많은 수상도 했다. 그림 주제는 주로 새나 개 같은 동물이나 사진에 나오는 풍경화이었고, 하루에 3~4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홍씨의 짜증은 매우 줄어들었다.

정씨는 “남편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희망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뇌졸중을 겪은 뒤 양장점 일을 나가는 정씨는 퇴근 뒤 남편의 그림을 보면서 항상 칭찬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정씨는 “남편이 과일 등을 그렸으면 ‘정말 먹음직하다’는 말 등으로 그림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며 “남편이 그림 평을 들으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다…말도 기억도, 움직임도 잊었다
아내의 권유로 잡게 된 붓…집안 가득 메운 그림을 보며
다시 ‘희망’ 을 품는다

결혼 30주년 때는 아내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다. 정씨는 “남들은 결혼 30주년이라면서 여행도 가고 그러니까, 저에게도 선물 하나 해 달라고 했더니 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려 주더라고요. 그 그림을 서화아카데미에 출품해 금상을 받기도 했답니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홍씨의 뇌졸중 관리 및 재발 예방법은 꾸준한 약물 복용, 규칙적인 운동, 식사 요법에도 있다. 요즘도 강북삼성병원을 다니면서 콜레스테롤, 고혈압 등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고 있다. 운동도 꾸준히 했다.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기 했지만 동네 뒷산으로 등산을 다녔으며, 학원과 동네 시장을 다니는 등 걷기 운동도 계속 했다. 식사 요법은 양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져 활동량이 줄었고, 짜증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다보니 몸무게가 12㎏가 늘었다. 이에 콜레스테롤, 고혈압 관리가 힘들었다. 그래서 식사량을 3분의 1로 줄였다. 반찬도 주로 야채 종류로 바꿨다. 특히 콩을 갈은 것과 우유를 섞어먹는 것을 좋아했다.

아내의 도움과 함께 그림 그리기가 뇌졸중을 겪은 홍씨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정씨는 “남편이 그린 그림이 집안 가득히 걸려 있어요. 남편 이름으로 전시회 한 번 열어 주는 것이 소원이랍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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