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2 17:55
수정 : 2005.09.23 07:32
서민들은 따라할 수 없는 부자들의 건보료 무임승차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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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는 주식 배당소득으로 76억여원을 벌었지만,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남편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 사례 2: 이아무개(38)씨는 연간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으나 아버지가 가입한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올라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이씨의 아버지는 월 소득 28만원에 불과한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로 월 보험료는 6030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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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라면 매월 세금처럼 꼬박꼬박 떼이는 건강보험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년내 특별히 아플 일이 없는 ‘무쇠’ 체질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깝지만 그렇다고 국가적 건강보험시스템에 무임승차할 수는 없다. 건강보험의 성실한 참여는 사회와 개인의 건강을 위한 필수적 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월급쟁이나 자영업자가 ‘의무’로부터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얄팍한 월급봉투의 서민들도 예외없이 ‘원천징수’당하는 건강보험료가 일부 부자들에게 더없이 관대했다.
홍라희씨 같은 거액의 배당소득자나 이씨 같은 고소득 피부양자는 물론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들도 건강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법을 어기고 형제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려 보험료 납부를 회피한 얌체 부자들도 있었다. 매달 월급에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한 월급쟁이들이 보면 기막힐 노릇이다.
전재희 한나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부자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의원은 2005년 7월말 현재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1천7백만명의 소득과 재산현황을 2003년 국세청 신고소득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를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무임승차형’…사업·임대소득만 없으면 수백억재산가도 ‘OK’
주식 배당이나 부동산 임대로 연간 수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도 건강보험료는 한푼도 내지 않는 경우다. 홍라희씨는 배당소득만 75억9629억원이었으나 이건희 회장이 가입한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리고 따로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홍씨처럼 소득을 신고하고도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80만231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1억원 이상 고소득자는 총 1701명이다. 10억원 이상도 29명이나 된다.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는 부자들 중에는 수백억대의 자산가도 많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과세표준 3억원(시가기준 1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한 피부양자는 1만8712명이고, 이 가운데 10억 이상을 보유한 피부양자는 758명, 100억 이상의 거액 자산가도 3명이나 끼어 있었다. 유아무개(81)씨는 과세표준 기준으로 102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지만,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려 자녀가 보험료를 월 4만2660원 낸다. 유씨가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면 최고 등급인 100등급에 해당돼, 월 200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처럼 고소득자들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현행 법의 빈틈 탓이다. 현행 법은 국세청에 신고하는 사업·임대소득만 없으면 수백억원대의 소득과 자산있는 사람이라도 가족중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제도 자체의 헛점으로 부자들의 양심만 탓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얌체형’…저소득 가입자를 등에 업어라
억대의 소득이 있지만 소득이 적은 가족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려 보험료 납부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모두 2만983세대가 가입자보다 피부양자의 재산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신고한 이아무개(38)씨는 월소득 28만원인 아버지의 직장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려 가족이 월 6030원의 보험료만 냈다. 연간 소득 12억7118만원인 곽아무개(55)씨는 월평균 53만원인 자식 명의의 직장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려 1만1420원의 보험료를 납부했다.
‘법 위반형’…고소득자가 형제들의 피부양자에 올라
아예 법을 어기고 형제, 자매들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리는 수법도 있다. 연소득이 8억5940만원인 강아무개(29)씨는 형이 가입한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올렸다. 강씨의 형은 월 2만5000원대의 보험료를 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보면 형제·자매가 피부양자로 등재되기 위해선 ‘소득이 없고, 가입자가 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연간 수억원 수익을 올려 건강보험료를 낼 능력이 충분한 형제를 피부양자로 등재한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다. 이번 조사에서 강씨와 같은 얌체형 법 위반자 29명이 발각되었다.
서민들만 억울하다.
이처럼 부자들이 법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위반을 통해 건강보험료 납부의무를 피해가는 동안 저소득층 서민들은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고소득 피부양자들의 무임승차와 달리 올 3월 연소득 500만원 미만인 8만6883명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행 법은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사람은 소득이 1만원이라도 발생하면 피부양자에서 탈락시키도록 하고 있다.
또, 억대 자산가가 직장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려 고액의 보험료 납부를 회피한 것과 달리 지역보험 가입자 중 소득은 없으나, 재산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세대는 모두 516만9956세대로 전체 지역가입자의 60.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는 저소득 전·월세 세대로 추정되는 1천만원 이하의 재산을 보유한 세대가 177만7951세대로 전체의 20.8%를 차지한다.
사회의 건강부터 챙겨라
“고소득·자산가 보험료 거둬 저소득층 보험료 면제해야”
이처럼 고소득·자산가에겐 허술하고, 저소득층에겐 냉정한 건강보험은 소득에 따라 적정한 보험료를 거둬 사회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보험제도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 문제가 명확한 만큼 대안도 간단하다. 고소득·자산가들의 보험료를 거둬 저소득 가입자의 보험료를 덜어주면 된다. 전재희 의원실의 분석을 보면 500만원 이상의 이자, 배당 소득을 올리고 있는 피부양자 12만2455명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면 연간 최소 300억~400억원의 보험료 수입이 예상된다. 이 돈이면 7만여 미성년 세대와 1천만원 이하 전·월세 세대 가운데 소득 없이 재산으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세대 등 최소 20만명 이상 저소득층의 보험료를 면제해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재희 의원은 “이번 조사에서 근로소득에는 가혹하고, 불로소득에는 보험료 납부를 면제해온 반국민적인 건강보험제도의 실태가 드러났다”며 “고액의 금융소득을 올리고 있는 피부양자에 대해 보험료를 징수해 수십만의 저소득층에게 보험료 면제혜택을 부여하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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