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을 막 시작했을 무렵 고속도로에서 굽잇길을 통과할 때마다 운전대를 어느 정도 로 꺾어야할지를 몰라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계속해서 달려들 듯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도로표면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차선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고민을 일거에 털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멀리 보고 움직여라”라는 조언 덕분이었는데, 시야를 넓혀 먼 곳을 바라보면서 전체 흐름을 읽어내니 자연스럽게 적절한 각도를 찾아내면서 안정적으로 굽은 도로를 지날 수 있었다. 때로는 당면한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저 너머를 바라보았을 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상상력과 영감을 얻게 된다. 조금 다른 측면의 이야기지만, 자연 속에 고립되거나 포로수용소에 갇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이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지향점을 가짐으로써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신념, 대의, 절대자와 같은 초월적 개념은 현실에게 돌파구를 제공해주고, 그로부터 얻어진 구체적 변화들은 다시금 보이지 않는 ‘바깥의 존재’를 증명한다.
맨손 검술
무예의 영역에서도 ‘너머의 지향점’에 해당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오늘의 주제인 맨손검술이다. 맨손검술은 말 그대로 검 없이 맨손으로 검을 연마하는 방법인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손을 칼처럼 단련하여 무기화한다는 뜻은 아니고 검술을 한차례 추상화한 동작을 통해 검기를 몸 안에 배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간단한 동작을 통해 맨손검술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손가락을 곧게 펴서 가지런히 모은 다음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접는다. (새끼손가락을 굽히는 것은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므로 생략해도 좋다) 이 손모양을 ‘고드기’라고 한다. 반대편 손(뒷손)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펴서 먼저 뻗은 팔의 안쪽에 대어 찌르는 힘을 보태준다. 이렇게 검을 잡은 모습으로 두 손이 모아졌으면 손끝을 명치 높이에 두어 중단을 겨누는데, 이 때 팔꿈치가 옆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갈비뼈 앞쪽에 둔다. 하체는 편안하게 팔자로 벌려 서거나 앞손과 같은쪽 발을 한걸음 내딛은 자세를 취한다. 혹은 반가부좌 자세도 가능하다. 억지로 하단전에 힘을 모을 필요 없이 무심하게 겨눈 손을 통해 기운이 뻗어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히 의식의 개입이 필요한 대목이다. 검기를 충분히 뿜어내었으면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손뼉을 모았다가 손을 바꾸어 내리며 다시 중단 겨누기로 돌아온다. 몸을 잊고 마음으로 검기를 세운다.
맨손 검술
대개의 무술적 움직임은 운동역학의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지만 맨손검술은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힘의 출처가 보이지 않는다. 동력을 생성하고 전달하는 장치가 없다고나 할까. 조그마한 돌멩이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자력으로 만들어낸 힘이 공중에 방사(放射)될 뿐이다. 근육의 부하를 거치지 않고 발생하는 이 힘 앞에서 우리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히려 몸에 힘을 빼고 신체를 정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만 남겼을 때 검기가 손실 없이 흐르게 되며, 검을 들었을 때 보다도 맨손검술의 경우가 몸 안에서 느껴지는 검기의 양은 더 많다.
맨손검술
맨손검술은 보편적 무술동작의 범주 바깥에 위치하면서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열어주고 개개의 무술 기법들의 질적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맨손검술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보다도 다른 보편적 무술기법에 스며들어 어떤 작용을 할 때 그 존재가 더욱 빛난다. 작은 성과로는, 꾸준히 맨손검술을 수련하였을 때 중심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발달되어 타격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힘의 교착상태에서 빈틈을 타고 들어가는 능력이 길러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운의 질을 높여주고 살법의 어두움을 밝은 기운으로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다른 노력으로는 얻어내기 힘든, 맨손검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변화이다.
고급스런 요리나 잘 만든 전자제품을 보면 아주 작은 마무리 단계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맨손검술이 갖는 의미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마지막 완결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시라도 늦은 오후에 툇마루에 앉아 석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잊지 말고 맨손으로 반듯한 검기를 겨누어보기를!
글 사진 동영상/육장근(전통무예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