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6 12:24
수정 : 2017.07.16 12:24
보건사회연구원 “한국 사람들, 자살로 도덕성 판단”
치료 받은 이 15%뿐…‘특정 사람들의 문제’ 시각 버려야
한국에선 30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2016 통계청). 전체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5위를 차지하지만, 높은 자살률에 견줘 이를 예방하는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낮다. 한국 사회가 자살하는 사람을 부도덕하고 이기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자살 예방을 가로막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6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 최근호에 실린 ‘자살 시도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 척도 개발을 위한 탐색적 연구’(이화여대 안순태·이하나)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자살 시도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많은 낙인(부정적 인식)은 ’부도덕성’이었다. ‘자살하는 사람은 비난받을 행동을 한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 ‘죄를 짓는 사람이다’,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인식이 이 낙인에 포함돼 있다.
연구자들은 일반 성인남녀 100여명을 골라 주관식 심층면접을 통해 자살 시도자에 대한 의견을 물어 답변을 얻은 뒤, 이를 일정하게 분류해 객관식 설문으로 만들어 다시 500여명의 의견을 물어 결과를 얻었다. 연구자들은 “한국 사람들에겐 자살이 치료와 도움이 필요한 문제라기보다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부도덕성 다음으로 많았던 낙인은 ‘이기주의’였다. ‘자살하는 사람은 불효를 저지르는 사람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모진 사람이다’ 같은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연구자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자살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개인적 일탈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2015년 조사를 보면, 실제 자살로 사망한 한국인 가운데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한 경우는 전체의 15%밖에 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자살 예방을 위해선 정신건강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살을 ‘나와 상관없는 일’, ‘특정 사람들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들은 자살에 관한 사회적 낙인을 개선해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손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이 덕분에 자살률이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한국 사회가 자살하는 사람을 부도덕적이고, 무능력하고, 이기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함을 보여주었다”면서 “자살을 개인적 자질과 능력으로 연결시키는 잘못된 관점을 개선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자살 낙인 개선을 위한 첫 번째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당신이 스스로 포기 한다면 모두의 희망도 함께 가져갈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와 같은 국내 자살 예방 슬로건이 오히려 자살하는 사람의 무능력함과 이기적인 면을 강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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