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안쪽으로 말아 쥔 주먹을 활줌이라고 한다. 우리 활을 쏠 때 엄지로 활시위를 걸어 당기는 데서 비롯된 이름인 듯하다. 혹은 그것을 애기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갓 태어난 아기를 관찰해보면 엄지를 안쪽으로 감싸 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손을 보고 있노라면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생명력을 머금고 있는 본능적 의지가 느껴진다. 태어나서 한번씩 이 주먹을 쥐어보아서일까?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나 불안감을 느낄 때 애기줌을 쥐고 있으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같은 손모양을 불교 수인(手印)에서는 금강권(金剛拳)이라 한다. 가장 견고하다는 의미일텐데, 아무리 봐도 이건 강한 타격을 하기에 적합한 주먹은 아니다. 샌드백이라도 친다면 당장 엄지손가락부터 다치게 될 것이 뻔하다. 여기서의 견고함이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굳건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어떤 번뇌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을 침착한 마음의 결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금강권, 활줌이다.
활줌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대개 맺음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탁해지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데 활줌을 통한 집중은 강하되 딱딱하지 않고 온화하되 유약하지 않은, 맑고도 산뜻한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에 이르는 실마리를 활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활줌 쥐는 모습
활줌 쥐는 모습
①활줌 쥐었다 펴기: 의자에 걸터앉거나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두 손을 무릎 위에 둔다. 이 때 손등을 얹어놓는 것이 아니라 손날을 무릎에 대는 것이 비법이다. 손등을 올려놓게 되면 상체가 이완이 되면서 안쪽으로 둥글게 구부러지는 경향을 띠게 되고 설령 의식적으로 허리를 세운다 하여도 이미 형성된 기운의 성질과 다투는 형국이 되고 만다. 반면에 손날을 무릎에 대어 가볍게 안쪽으로 모으는 형태가 되면(그렇다고 억지 힘을 주어서는 안된다) 무형의 골조가 형성되면서 반듯한 자세가 뒤따라오고 마치 산줄기가 뻗어나가듯 바깥을 향해 열려있는 기운을 담을 수 있다. 손날을 붙이고 있을 때도 손바닥은 어느 정도 위를 바라보아야 하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의 윗면이 아니라 옆면으로 넘어가는 모서리 일대가 손날과의 접촉점이 된다.
준비자세를 갖췄으면 활줌을 쥐어보자. 중지와 약지가 갈라지는 골짜기의 시작점에 엄지손끝을 두고 네 손가락을 덮는다. 주먹을 꽉 쥐지 말고 근육의 힘은 최소한으로 쓰면서 살포시 말아 쥐는데, 주먹이나 팔뚝에만 머물지 말고 의식의 시선을 몸 깊숙한 곳으로 돌려보자. 한번 기운이 모여들어 중심까지 스며들었다 싶으면 다시 손을 펴준다.
활줌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②활줌 관자붙이기: 팔을 곧게 펴고 아랫배 앞쪽에서 손뼉을 모은 상태로 준비한다. 활줌을 쥐면서 두 주먹을 관자놀이 근처로 당겨 올리는데 손바닥 쪽이 정면을 향하도록 한껏 팔을 뒤집어 챈다. 그러면 가슴이 열리고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 상태로 3~5초 정도 머물렀다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손뼉을 모은다. 당기는 손의 높이를 낮추어 관자놀이가 아닌 어깨 앞에 둘 수도 있으며 가슴을 여는 운동으로는 이것이 더 낫다. 어깨 앞으로 당겼을 때는 합장으로 복귀하지 말고 팔뚝을 회외(回外)운동하여 아랫배 앞에서 두 주먹을 마주 모으면 된다.
활줌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어느 정도 활줌 고유의 느낌을 파악했다면 적용대상을 넓혀 여러 가지 무술동작을 활줌으로 변환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 이를테면 보편적인 정권지르기를 활줌을 쥐고 느린 호흡으로 해보면 기운이 바깥으로 발출되지 않고 안으로 축적되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동적 명상, 무선(武禪)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지 하나를 어느 쪽에 두느냐에 따라서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차이는 엄청나다. 오랜기간 축적되어온 무술수련의 방법론, 그 지혜를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향유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에, 활줌이 그 나아갈 길을 넌지시 일러주는 듯하다.
글·사진 동영상/ 육장근(전통무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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