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21 20:52
수정 : 2018.01.21 21:39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빈손 종료
병원협회 “동네의원에 입원실 안돼”
동네의원쪽 “수술하는 곳선 필요”
시민단체 “밥그릇 싸움에 논의 무산”
지난해 10월부터 다리 마비 증상을 보여 한의원에서 치료받았던 김아무개(64·여)씨는 증상이 계속돼 이달 초 근처 종합병원을 찾았다. 컴퓨터단층촬영(CT·시티)을 해보니 결과는 뇌종양 의심이었다. 곧바로 큰 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빅5’(삼성서울·서울대·서울아산·서울성모·세브란스) 병원을 찾았으나 입원하려면 3~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아무개(65·여)씨는 10여년 전부터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다. 대학병원이 더 믿을 만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씨는 “진료비가 좀더 비싸고 외래 진료를 받아도 오래 기다리는 단점이 있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약만 처방해주는 건 동네의원도 마찬가지라 이왕이면 믿을 만한 대형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벼운 질환이라도 너나 할 것 없이 큰 병원을 찾는 탓에, 정작 큰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가 대형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는 모습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2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가 환자의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시민단체와 함께 만든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이하 협의체)가 지난 18일 회의를 끝으로 별 소득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16년 1월 출범한 이 협의체는 지난 2년간 모두 14차례 회의를 열었다.
주된 걸림돌은 동네의원에 대한 입원 병상 허가 문제였다. 병원협회는 수술을 하는 동네의원이라도 입원 병상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였고, 동네의원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쪽은 수술을 하는 의원이 있다며 입원실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종합병원 이상은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를, 동네의원 등 의원급에서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 치료 및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의는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 복지부는 “의사협회나 병원협회 등 공급자 단체,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 학회, 전문가, 정부 및 관련기관 등이 모여 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차례 회의를 했지만, 최종 개선 권고문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빅5’가 건강보험에서 받는 진료비는 2010년 1조9791억원에서 2016년 3조838억원으로 56% 늘었지만, 같은 기간 전체 의료기관에 지급된 진료비는 32조4968억원에서 48조3239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게(49%) 늘었다. 빅5가 43개 전체 상급종합병원에서 차지하는 진료비 비율도 35.4%(2016년 기준)나 된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 단체들은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2년 동안의 논의가 무위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한국환자단체협의회 등은 지난 19일 성명을 내어 “이해관계가 다른 의료계 내부의 ‘밥그릇’ 논쟁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료계는 권고문 채택 불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의료계에서 절충안을 마련해 올 경우에는 이달 말까지는 협의체에서 재논의할 방침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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