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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2 08:13 수정 : 2018.01.22 08:13

수련, 지금 여기서/천,지,인 동작

무예의 어느 한 동작을 오랜 기간 반복하다보면 그 속에 담겨있던 기질이 몸에 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견고하게 맺어지는 동작에서는 결연한 마음가짐이 따라 오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몸짓 속에서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심성이 길러지며, 예리한 검결에 몸을 싣다보면 망설임 없이 사물의 핵심에 다가서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생존을 다투는 격투기술에서 시작된 무예가 점차 문화의 단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수련의 목표 또한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른 힘쓰기를 통해 양질의 기운을 끌어 모아 내면의 빛을 가다듬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다. 육체적 실천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중시되는 만큼 동작에 내재된 기운의 성질을 구별하는 방법도 함께 발달하였는데, 우리 정신문화에서는 기운의 속성을 크게 천(天), 지(地), 인(人)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보는 전통이 있다.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부드럽고 기교적이고 변화무쌍한 성질을 ‘천’이라 하고 도형으로는 동그라미를 대응시킨다. 천의 대표적인 무술로는 기천과 아이키도, 태극권을 들 수 있는데, 천의 동작은 대체로 움직임의 고급문법에 해당한다. 무한한 변주가 이어지는 프리재즈와 같은 현묘한 흐름을 경험하고 나면 몸짓 전반을 이해하는 눈이 열리게 되고 어떤 것이라도 능히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기교에 탐닉하면서 간결한 동작을 하등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우월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변화와 응용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전승의 표준형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천의 수련은 마력(馬力)을 키우기 보다는 연비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동작이 숙련될수록 점점 힘을 빼면서 허(虛)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한편 ‘지’의 세계는 간결하고 직선적이면서 견고하다. 사각형 혹은 가로와 세로가 교차된 십자선이 그 상징이다. 힘을 북돋는 데에는 주먹을 쥐면서 강단 있게 맺어주는 동작 즉, 태권도나 오키나와테의 방법론이 최상이다. 지의 수련은 서예에서 말하는 중봉(中鋒)을 익히는 것과 같아서 무술의 보편 기본으로 삼을 만하다. 획 하나를 제대로 긋지 못하면서 초서를 쓸 수 없듯이 지의 견고한 바탕 없이 화려한 수법을 얹어봤자 제 멋을 낼 수 없다. 지의 수련자가 유념할 것은 힘의 충만감이 살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껏 차오른 힘이 그 다음에 갈 곳을 찾지 못하면 결국 힘자랑이나 싸움박질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옹골지게 집중된 힘이 깨끗한 정신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지나친 엄숙함은 사고의 경직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틈틈이 부드럽고 넉넉한 기운을 섞어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무술 시범 보이는 육장근씨

  삼각형으로 표현되는 ‘인’은 섬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강기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검 수련법은 인의 담지체이다. 본래 인은 다양하게 번져나가기 보다는 본질을 향해 소급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천과 지에 비해서 몸집이 작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의 집합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인의 진면목을 놓치기가 쉽다. 마치 철학이 학문의 여러 갈래 중 하나임과 동시에 모든 분야의 분모가 되는 것처럼 인은 셋 중의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각각의 영역이 진일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천과 지의 관계는 사실상 상극이어서 한 쪽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가 녹록치 않다. 태권도를 오래 수련한 사람이 태극권을 배우려고 할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작이 낯선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련을 통해 다져 온 기운의 성격을 다른데서 오는 어려움이 크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이 천과 지의 간극을 좁히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천의 흐름에 중심을 부여하고, 지의 단단함이 탁해지지 않도록 숨통을 열어주면서 두 가지 상이한 기질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의 규범과 천의 자유로움을 화해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글 사진 동영상/육장근(전통무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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