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2 19:05
수정 : 2018.05.02 21:19
[짬] 대학병원 21년 근무 김현아 간호사
|
지난달 24일 화성시 병점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현아 간호사.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
김현아 간호사는 지난해 7월 21년2개월 동안 일하던 대학병원을 사직했다. 간호사란 직업이 너무 좋고 자랑스러워 단 한 번도 간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만둔 이유는? “환자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한 후배 간호사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병원 관계자는 피해를 당한 간호사에게 개인 자격으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단다. “절망과 자괴감이 자라면서 더 이상 환자를 보살필 자신이 없었어요.”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내 환자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간호사의 편지’로 세상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1면에 크게 실린 김 간호사의 글에 국민은 감동했다. 메르스 첫 사망자가 나와 사면초가에 몰려 있던 병원은 반색했다. 그에게 승진까지 제안했단다. “제가 승진 대신 간호사 처우 개선을 해달라고 얘기했죠. (병원 쪽은) 제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최근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쌤앤파커스)란 책을 펴낸 김 간호사를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 병점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책을 쓴 이유를 물었다. “퇴직 뒤 3개월 동안 썼어요. 간호사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환자 중엔 제 인생의 가치관을 세워준 분도 계셨죠. 한 사람의 환자를 돌보며 얻는 게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더 크죠.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았어요.”
책엔 그가 19년 이상 머문 중환자실 간호사의 일상도 생생히 담겼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나오는 드라마 속 간호사의 모습으론 상상하기 힘든 광경들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중환자 다섯의 고통을 감당하려면 제때 끼니를 챙기기 힘들다. 배가 너무 고파 중환자실 문 뒤에 숨어 삶은 달걀을 입안에 쑤셔 넣기도 했단다. 그가 교육을 맡았던 신규 간호사는 배고픔 때문에 환자 입으로 향해야 할 음식을 제 입에 넣기도 했다. “거구의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다 허리를 다친 뒤에도 대체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한동안 복대를 차고 일했죠.” 병상 청소까지 해야 했던 날엔 무너진 자존감에 환자 얼굴을 외면해야 했다.
중환자실만 19년…지난해 그만두고 집필
“폭행당한 후배한테 해줄 게 없다는
자괴감에 환자 보살필 자신 없어져”
최근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펴내
메르스 때 ‘간호사 편지’로 주목받아
“신규 간호사 최소 6개월 임상교육을”
|
김현아 간호사가 쓴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표지.
|
한동안 드라마 작가를 꿈꿨다. “간호사 얘기를 드라마로 쓰고 싶었어요. 티브이 속 간호사 모습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죠.” 드라마 작가 교육원을 2년 다녔고 그가 쓴 글이 한 방송사의 대본 공모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일간지 두 곳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메르스 사태로 중환자들과 2주간 격리되어 있을 때 신문사 청탁을 받았던 것도 이런 이력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승진 대신 말했다는 처우 개선은? “초과 근무와 행사 참석 부담을 줄여달라고 했어요. 행정직과 견줘 열악한 승진 체계 개선도 요구했죠.” 그는 입사 17년 만인 2013년 책임간호사가 됐다. 첫 승진이었다.
3교대 8시간 근무라고 하지만 보통 10~11시간을 일했단다. 퇴직 전 월 급여는 350만원(세후) 정도였다. “대면 인수인계에 2~3시간이 걸립니다. 중환자들은 사소한 상태까지 전해야 하거든요. 수백개나 되는 의료 물품도 점검해야죠. 인수인계 시간에 심폐소생술이라도 있으면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집니다. 심폐소생술은 중환자실에선 흔한 일입니다.” 퇴직할 때까지 점심은 중환자실 탈의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단다. “자리를 비우는 시간에 내 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당을 가지 못합니다.” 몸이 아파도 연·월차를 쓰기 어렵다. “한달 근무 일정표가 나온 뒤에 제가 쉬면 다른 간호사에게 부담이 가죠. 중환자실 간호사는 고도의 집중훈련이 필요해 단기 대체가 어려워요.”
정부 자료를 보면 한국 간호사의 평균 근무 연수는 5.4년이다.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도 33.9%나 된다.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노동강도는 센 반면 보수는 박해서다. 이런 이유로 전체 간호사의 49.6%만이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다(2017년).
그는 간호사 인력 확충은 병원에만 맡겨선 안 된다고 했다. “병원은 간호사가 많으면 손해라고 봐요. 국가에서 엄격하게 간호사 인력 확보 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신규 간호사를 괴롭히는 이른바 ‘태움’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가 중환자 5명을 봅니다. 신규 간호사 1명 교육까지 맡으면 제 일이 늘어요.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 모두 힘듭니다. 지금처럼 신규 간호사에게 바로 환자를 맡기지 말고 6개월가량 체계적인 임상교육을 해야 합니다.”
병원 입사 때 중환자실 근무를 자원했단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분들을 위해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일이란? “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죽음으로 기운 분들은 정성껏 배웅하는 것이죠.” 그는 중환자실에서 사망한 환자들의 양치와 면도도 직접 해줬다. “인간에 대한 예의이죠. 가족들이 속상하지 않고 편하게 환자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도록 해야죠.”
그가 청춘을 바쳤던 병원에 최근 노조가 생겼다. “간호사 2500명 가운데 2400명이 가입했다고 해요. 그 뒤로 병원이 출퇴근 시간도 맞추려 하고 회의도 없앤다고 들었어요.”
책엔 간호사로서 그의 헌신이 환자의 마음과 이어지는 장면도 여럿 담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엄마와 동갑인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저를 보고 싶어 하셨어요. 제 모습에 반응하고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어주셨죠. 저를 믿어주고 죽음을 앞두고 웃어주셨어요.”
제주 출신인 그가 간호대를 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의료보험증이 없어 병원을 갈 수 없었던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간호사가 되면 제가 웬만한 치료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는 ‘백의 천사’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무조건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다. “간호사도 똑같이 슬픔을 느끼고 상처를 받습니다. 약한, 한 인간이란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획은? “퇴직하면서 1년 동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죠. 여행도 다니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두번 째 책도 쓰고 싶어요. 어려서 대학 때까지 쓴 일기가 20권이나 됩니다.” 간호학과 교수도 꿈꿨지만 지금의 간호사 근무 여건을 보면 가르침의 보람이 클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는 얘기도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