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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8 18:25 수정 : 2019.03.28 19:26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이 큰아버지인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 <유일한 정신의 행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료지원재단 제공

[짬] 유일한 박사 조카 유승흠 이사장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이 큰아버지인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 <유일한 정신의 행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료지원재단 제공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극기가 휘날렸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뒤이어, 미국에 있는 한국인 200여 명이 ‘대한 독립’을 외쳤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생명이 남아있는 한, 이를 실행할 것을 신성한 말로 서약합시다.” 해말간 얼굴의 24살 청년이 결의문을 낭독한 뒤에 호소했다. 그는 이른바 ‘필라델피아 선언’이라 불리는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선언하는 결의문’ 작성을 기초하고, 한인을 대표해 낭독했다. 청년의 이름은 유일한. 그는 훗날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가면 결의문이 전시되어 있는데, 참가자 가운데 제일 먼저 서명한 유일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더라고요.” 유일한 박사의 조카인 유승흠(74)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유일한은 윤리경영을 실천했던 기업인이자 시대를 앞서간 교육자이기에 앞서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9살에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그는 14살에 조국 독립을 위한 군사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에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유승흠 이사장은 <유일한 정신의 행로>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유일한에 대한 책은 이미 여러 권이 출판돼있다. 하지만 알려진 사실이 조각조각 전달되다 보니, 간혹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기도 하고 유일한이 강조했던 정신이 올곧게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 조카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유일한의 철학이나 사상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삼 다시 책을 펴낸 까닭이다.

유 이사장이 큰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유일한은 6남3녀의 맏아들, 유 이사장의 아버지는 5남이다. 형제가 24살 띠동갑이다 보니, 유일한과 유승흠은 무려 50살 차이가 난다. 유 이사장이 어릴 때는 큰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유일한은 늘 “너는 조카가 아니라 내 손자”라며 유 이사장을 귀여워했다.

그가 연세대 의대에 합격했을 때는 유한양행 주식과 청진기를 선물했다. “의사로 돈 벌 생각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이런 영향을 받아 유승흠은 예방의학을 전공했다. 2010년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에는 한국의료지원재단 설립을 주도하여 이사장을 맡는 등 공익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재단은 국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차상위계층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준다. “큰아버지의 사상과 철학을 닮기 위한 노력”이다.

최근 ‘유일한 정신의 행로’ 내
백부 사상 올곧게 전달할 의도
미공개 희귀 사료·사진도 포함

“‘넌 내 손자’ 애정 각별하셨죠
백부 영향으로 예방 의학 전공”
연세대 퇴임 뒤 의료 공익활동

유 이사장은 1981년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에, 유한양행과 유한재단 이사, 유한학원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유 이사장의 사촌 누나이자 유일한 박사의 딸인 유재라씨와도 각별한 사이였다. 유재라씨는 20여년 동안 유한재단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1991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처럼 유재라씨도 200억원의 재산을 재단에 기부했다. 유일한 박사는 1971년 세상을 떠나면서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사례다. “상공인으로서, 항일운동 서북 지역 재정책임자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북간도 연길에 길신여학교와 한인교회 설립을 주도했던 할아버지(유일한 박사 부친)의 영향이 컸다.”

책에는 지금까지 유일한과 관련해 소개되지 않았던 각종 사료와 사진을 실었다. 오랫동안 열과 성을 다해 모은 결과다. 유일한 박사가 1928년에 미국 보스턴의 어느 출판사 요청으로 기고해 책으로도 나온 자전 에세이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도 번역해 처음 소개했다.

지난 2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유한대 졸업식에 참석했다. 유한대는 유일한 박사가 세운 전문대로,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된 유한공업고등학교가 뿌리다. 문 대통령은 유 박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기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것, 사원들의 것”이라고 했던 고인의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큰아버지는 국민보건운동 차원에서 국민에게 좋은 약을 공급해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기생충, 영양결핍, 결핵약을 차례로 만들었던 건 단기적인 이익 추구보다 지금 국민을 위해 필요한 약이 뭘까를 먼저 생각했던 겁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기업을 경영한다는 의식이 강했죠. 이런 유일한 정신을 기업이나 학교, 경영자들이 잘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황예랑 기자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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