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06 10:42
수정 : 2019.01.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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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복(54) 책방 풀무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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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앞 사회과학서점 ‘책방 풀무질’ 이르면 2월 폐업
은종복 대표 “책방 정신 계승할 인수자 찾는다”
“대학가 사회과학서점 실종되면 대학 인문학 기능도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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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복(54) 책방 풀무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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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에서 34년째 명맥을 이어온 사회과학서점 ‘책방 풀무질’이 이르면 오는 2월 폐업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풀무질 대표는 “책방을 보존하려는 이가 나온다면 10원 한 푼 못 받아도 이 사업을 이어나가게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풀무질 은종복(54) 대표는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나 “10년 전께부터 적자가 쌓여 현재까지 출판사에 지급하지 못한 돈만 1억원 가까이 된다”며 “4년 전께부터는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빚이 늘어, 어렵게 지켜온 책방 풀무질을 그만 운영하려 한다.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르면 올해 2월께 늦으면 5월께 문을 닫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학에도 산학협력과 같은 신자유주의 풍토가 들어와 인문학책을 읽으려는 욕구도 꺾인 것 같다”며 “그래도 풀무질은 뒷심이 있어 버텼는데 대형서점의 할인 경쟁에 치여 결국 무너졌다”고 덧붙였다.
풀무질은 1985년 학생운동의 열기 속에서 성균관대 인근에 둥지를 튼 사회과학서점이다. ‘풀무질’이란 이름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학회지의 명칭을 빌린 것으로 “전두환 정권에 불바람을 일으켜 맞선다”는 저항의 뜻을 담고 있다. 풀무질은 대장간에서 낫이나 칼 만들 때 센 바람을 불어넣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은 대표는 1993년 4월1일부터 풀무질의
네 번째 대표로 일하며 26년 가량 서점을 운영해왔다. 그는 “1993년엔 김귀정 열사 추모집회에 가는 학생들의 책가방 수백개를 맡아주기도 했고, 1997년엔 <전태일 평전>이나 <월간 말> 등을 판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은 대표는 지난해 7월2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생맥주 미팅’에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책방은 수입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오아시스가 돼야 한다”며 “프랑스에서는 동네 책방을 열면 1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준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운영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폐업을 결심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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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대표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나는 은행 빚이 쌓여 더는 이곳을 운영할 수 없게 됐지만, 인문학 책방이라는 전통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며 “책방을 보존하려는 이가 나온다면 10원 한 푼 못 받아도 이 사업을 이어나가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 대표는 인수자에 대한 희망 사항도 드러냈다. 그는 “시인 김수영을 찾는 손님에게 신동엽을 추천할 정도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며 “책방 운영이 생각보다 노동 강도가 높으니 젊은 청년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풀무질을 지키려는 이유를 두고 은 대표는 “우리 서점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과 함께 서울에 단 두 곳뿐인 사회과학서점이다. 사회과학서점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사회에 인문학을 공급해 시민의 사회참여를 돕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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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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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학생과 시민들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생 한재하(27)씨는 “학부 때도 학교 앞 사회과학서점들이 오래 못 버티고 망하는 것을 보며 속상했다”며 “풀무질은 대학원에 올 때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인문학 책방이었는데 이곳마저 사라진다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도 “풀무질은 ‘그날이 오면’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었고 은 대표도 나처럼 1993년께부터 운영을 해온 사람”이라며 “인문학 서적을 찾지 않는 흐름은 이미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것이라 해도 (책방이 문을 닫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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