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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3 20:42 수정 : 2019.01.13 21:51

지난 8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강서구 씨제이대한통운의 동작에이터미널. 택배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르포] 4일 숨진 택배 기사 성아무개씨 동료 20명 만나
“지병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노동조합 “과로사”, 회사 “허위사실”… 평행선 긋지만
현장에선 “장시간 노동 여전하다” 목소리 높아

지난 8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강서구 씨제이대한통운의 동작에이터미널. 택배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아침 7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씨제이(CJ)대한통운 동작에이(A)터미널. 거대한 화물차가 상자를 쏟아냈다. 상자를 택배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레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았다. 기계의 속도에 맞춰 20여명의 손과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택배 노동자들 사이에서 ‘까데기’라고 불리는 분류 작업이다. 레일에서 자신이 배송할 물품을 골라내 차에 실었다. 몇몇은 바코드 기계로 물건을 스캔한 뒤 펜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이들은 대부분 씨제이대한통운 로고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최저 기온 영하 7도의 날씨에 몇몇 택배 노동자들은 전기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기도 했다. ‘까데기’를 마무리된 뒤 배송 차량이 떠나기 시작한 것은 낮 12시30분부터였다. 분류 작업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한푼도 벌지 못한다. 돈은 오로지 배송한 물건의 수수료로만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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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건강한 사람도 확 망가지는데…”

여느 날과 같은 아침이지만, 여느 날과는 또 달랐다. 지난 4일 이곳에서 일하던 택배 노동자 성아무개(59)씨가 목숨을 잃었다. 성씨는 퇴근하고 집에서 잠이 든 뒤 일어나지 못했다.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며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아침 7시부터 저녁 8~9시까지 하루 평균 14시간가량 일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밝힌 성씨의 지난달 평균 주당 노동시간도 성탄절이 낀 주(48.5시간)를 제외하면 63.3시간이다. 주당 60시간 넘지만, 회사는 장시간 노동 강요와 과로사 등은 ‘허위사실’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쪽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한겨레>는 8일과 9일, 성씨가 일했던 이곳을 찾아 택배 노동자 20명을 만났다.

ㄱ씨는 숨진 성씨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했다.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문 호인이었죠. 덩치도 좋고, 주먹 한번 맞으면 뭐든 깨질 것 같은…. 지병은 없었던 거로 알아요.” 그는 그렇게 풍채가 좋고 건강했던 고인의 돌연사가 믿기지 않는다. ㄱ씨는 최근 자신의 건강도 염려한다. “그만한 사람도 확 망가지는데… 이발소에 가면 ‘아저씨 전에는 머리카락이 좋았었는데 요즘엔 왜 이렇게 푸석푸석하냐’고 그래요.” 동료의 죽음은 ㄱ씨에게 경고음처럼 작동했다.

택배 노동자로 10년을 일했다는 윤아무개(55)씨는 “수익 내려고 회사가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온다”고 말했다. “회사는 친절한 서비스를 요구하죠. 고객에게 잘 맞춰야 하는데 그게 다 노동이거든요. 그만큼 몸이 힘들어요. 하지만 대가는 없죠. (성씨 죽음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걱정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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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달 물량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성씨의 죽음 뒤 회사 쪽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배달 물량을 정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물량을 정할 수 있으니 노동시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해명에 택배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백번 양보해 어떤 택배꾼이 ‘나는 하루에 100개만 하겠다’고 결정했다고 합시다. 아침 7시부터 낮 12시 넘어서까지 자기 (배송 지역) 물건이 다 나오기를 기다려야 해요. 이 물건들을 3시간 안에 배달해도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9시간 일하는 셈이에요. 그렇게 하루에 100개 배달하면 월 100만원 벌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9시간씩 중노동해도 월 100만원 번다는 겁니다. 누구든 하루 250개 밑으로는 안 해요. 몸, 마음, 가정이 다 망가집니다.” ㄱ씨의 말이다. ㄱ씨가 스스로 꼽아본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75시간 안팎이다. 그는 물량이 적은 날에는 하루 7시간을 일했지만 물량이 많은 날은 하루 16시간 일했다. 고용노동부 고시에는 근로시간이 주 60시간을 넘으면 과로와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사이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돼 있다.

6년째 택배 일을 하는 임아무개(45)씨도 “아파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한번 물량을 포기하면 그 배송 지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요. 다들 먹고살아야 하는데 포기 못 하죠. 하루에 200개 하면 한달에 200만원 정도 받아요.”

자동분류기가 생겼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물건을 직접 골라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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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만날 수 있는 주 70시간 이상 노동

성씨의 죽음 이후 씨제이대한통운의 <한겨레>에 알려온 해명은 또 하나 더 있었다. “고인이 근무했던 (동작A)터미널은 자동분류기가 갖춰져 있고, 분류 도우미가 업무를 지원해줘 업무강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택배 노동자들도 기계 덕분에 “분류 작업이 수월해졌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했다. 한아무개(37)씨는 “저희는 분류작업 알바가 따로 있어서 출근시간이 오전 8시 30분, 9시 30분으로 바뀌었다”며 “2회전 배송(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배송을 나가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퇴근 시간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박아무개(33)씨는 자동분류기가 도입된 이후로 ‘아이를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끼리 이야기로 ‘죽이는 시간’이 없어졌다”며 “과거에는 무조건 아침 7시까지 전부 나와서 물건을 챙겨야 했는데 이제는 여유시간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자동분류기가 모두를 만족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6년째 택배 일을 하고 있다는 김아무개(56)씨는 “분류기가 생기면서 교대로 7시 출근을 하기 때문에 출근 시간이 조금 늦춰진 건 맞다”면서도 “그렇다고 일을 적게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식사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 매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배달한다고 했다. “밥먹는데 보통 한 30분 걸리잖아요. 음식 주문하고, 먹고. 그러니까 그 시간을 줄이려면 그냥 김밥으로 대충 때워야죠. 보통 오후 9시30분이나 10시쯤 퇴근해요.” 이곳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했다는 20대 ㄴ씨는 “예전보다 분류 작업이 많이 빨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을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침 5시 50분쯤 일어나 씻고 아침 7시까지 와서, 화요일 같은 경우는 오후 9시나 10시에 퇴근해요. 연세 드신 분들은 아마 자정이나 새벽 1시까지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게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거예요. 제가 예전에는 자정에 퇴근을 했어요.” 오후 9시까지 일한다고 해도,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 2시간을 빼면 하루 12시간 노동이다. 물론 점심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그렇게 주 6일 일하면 72시간 노동이 된다.

차량들이 배송할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서 터미널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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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하나당 700원 받는다

사실상 노동자로 일하는데,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 신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특수고용 신분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해도 회사가 책임을 회피한다는 얘기였다.

“시스템을 교묘하게 만들었어요. 개인 사업자이고, 내 차로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죠. 논리적으로, 문서적으로 (회사가) 책임질 게 없게 만들어놨어요.” ‘아파도 나와서 일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임씨의 목소리다. 그는 과거 씨제이대한통운에서 있었던 사고들을 언급하면서 “회사가 책임회피에 가깝게 행동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노동자지 우린 완전 노동자지”라고 답했다.

하나 배달해서 몇백원 남는 “박리다매”의 현실도 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11년째 택배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아무개(40)씨는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데, 오른 만큼 수수료를 더 받고 싶다”며 “1500원까지는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씨는 “한개 배송하는데, 떼야 할 수수료 다 떼고 나면 칠백몇십원이 남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오후 취재를 마치고 터미널을 나설 때쯤 문자메시지가 하나 왔다. “주문하신 상품을 금일 20∼22시 사이에 배송할 예정.” 배송 업체는 공교롭게 씨제이대한통운이었다. 어느 택배 노동자는 내가 주문한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그때까지 일해야 한다. 돌아서 본 터미널에는 아직 차에 싣지 못한 택배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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