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7 13:53
수정 : 2019.01.17 14:03
‘426일 고공농성’ 마친 홍기탁·박준호씨와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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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 홍기탁(왼쪽), 박준호씨가 16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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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가 지난 11일, 426일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굴뚝에서 내려왔습니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는, 이들을 맞이하려는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가득했습니다. 저 역시 취재진 사이에서 두 사람이 굴뚝 아래로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선배가 왜 없나 했어요. 눈물 나지 않아요?” 홍기탁, 박준호의 고공농성을 기록했던 제 사진을 기억하는 한 후배가 제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니, 전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6차 교섭까지 이어지는 릴레이협상 속 기대반, 걱정반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일 타결 소식을 접하고 찾아간 굴뚝 아래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도와 축하, 걱정 등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물론 제 표정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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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 박준호(왼쪽), 홍기탁씨가 땅으로 내려왔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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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을 내려오는 두 사람의 한걸음 한걸음에 환호와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단식으로 걸어서 내려오지 못할 거라던 우려와 달리 홍기탁, 박준호씨는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굴뚝의 사다리와 나선 계단을 두발로 내려왔습니다.
환영인파와 취재진 앞에서 선 이 둘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망원렌즈로, 전화통화를 통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의 얼굴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고, 목소리는 단단하게 들려왔습니다. 단식으로 얼굴은 수척했지만, 표정은 밝았습니다.
이들과 눈 마주치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환영 나온 이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이라 안부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입원한 녹색병원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안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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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탁, 박준호씨가 땅으로 내려온 뒤 75m 빈 굴뚝에는 펼침막만이 펄럭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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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일을 굴뚝에서 버틴 이들이 도리어 제게 “박동지, 너무 고생했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굴뚝 아래에서 카메라를 든 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사건이 되어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지켜보는 사진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것일 겁니다.
“퇴원하면 약속한대로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합시다.” 병실을 나서는 제게 홍기탁, 박준호씨가 단식으로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웃어 보였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회를 끝으로 <굴뚝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마음 모아주신 독자님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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